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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호사 파독50주년을 축하하며 한국간호요원 독일 진출 개척기 회고 1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60~1968년까지 1.300명 한국간호요원 독일에 초청


1959년 4월 나는 DAAD장학생으로 Düsseldorf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나의 독일 도착은 1959년 3월 29일이였다.


1960년 4월부터 1961년 3월까지 일 년간 나의 간질환 치료차  입원, 유학 온지 1년 후인 1960년 4월, 나는 B형간염에 걸려 그 해 5월 Düsseldorf 대학병원 제 2 내과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주는 식사가 너무 불편하여 1960년 6월, 간 검사치가 정상으로 되지 않았는데도 조기 퇴원을 원했다.


1960년 7월, 간 검사치가 예상밖으로 올라가 같은 병동에 다시 입원했다. 간 검사치를 보고 병원측과 장학재단 DAAD는 공부를 중단하고 집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눈 앞이 깜깜했다. 이 시점의 건강상태는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정도가 못 되어 나는 우선 치료를 받기로 했다. 병명은 [치명적  B형간염] 이고, 사망율은 당시 80~90% 였다. 그 후 근 일 년간 절망속에서 치료를 받고 1961년 3월에 다행히 완치되어 퇴원 하였다. 나는 일 년간 간수없는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눈물과 고독속에서 한 셈이다. 이어서1961년 4월에 남독 도나우강가에 있는  Niederaltei 수도원에서 4주간 요양을 하도록 의료보험에서 보내주었다. 


그 사이 건강상태가 양호해저1961여름학기부터 독일에서 공부를 계속하여도 좋다고 DAAD가 허락했다.




1960.7 병상에서 고아들 교육을 하나님께 약속


1960년 7월, 재차 입원했을 때 한국에서 어렵게 여권수속을 하여 온 독일유학을 DAAD에서 중단하라는 소식을 듣고 이런 상태로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병상에 누어 매일 밤을 지새워 가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 제에게 건강을 주신다면 한국의 고아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회 봉사하겠습니다"하며 거듭 기도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7월 어느날 저녁 입원환자를 돌보고 있던 병동수간호사 엘리사벨 여사가 세계 2차대전 중에 동부전선의 종군경험담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 도중 우연히 독일의 간호사교육은 학비가 전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국에서 전쟁고아들에게 독일에서 간호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그들은 세계각지에서 병자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순간 내 머리속에 떠올랐다. 동시에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 내 병을 완치시켜 주시기를 기대했다 .




이종수 2.jpg


파독간호 역사의 산 증인,
이종수 박사



1960.8 입원중 Frankfurt감리교선교회장 방문


1960년 8월 저의 병세가 아주 심각한 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병실을 빠져나와 기차로 Frankfurt 있는 독일감리교 선교회회장을 방문하였다. 그의 집앞 나무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 분은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좋은 경험를 갖지 못했다고 하면서 나를   문전박대했다.
나는 - 한국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한국전쟁에서 고아가 된 2명만 독일에서 간호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세요 -  하는 말을 서투른 독일어로 반복했다. 낙담을 하며 Düsseldorf의 병실에 돌아왔는데 다음 날 간검사치는 더 악화되었다. 절망적인 나날이 계속되었다.
몇주 후 나는찾아갔던 독일 감리교선교회장에게 나의 현재의 상태, 한국에 있는 전쟁고아의 현황, 한국의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긴 사연과 그리고 전쟁고아 2명의 독일간호사교육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여러 달 답장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소식은 없었다.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




1960.12 베르린에 있는 감리교부녀회장의 편지


나는 독일에서 두 번째 맞이하는 성탄절을 병원 병실에서 보내야 했다. 전부 고향에 가고 중환자 몇 사람만 병동에 남아있으니 너무나 적적했다. 나는 병실에서 몇 개의 성탄절 축하편지와 함께 아래 분으로 부터 한장의 편지를 받았다.


독일감리교부녀회장 루이세. 숄쓰부인
Pauliner 가 30, Berlin-Lichterfeld


나는 이 편지를 병상에 누어 읽었다. 숄쓰부인은 한국 광주에 있는 전쟁고아와 빈곤층자녀를 위해 설립한 고등학교에서 2명을 독일에서 간호사교육을 시키기 위해 초대하겠으며 그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해 주겠다는 내용이였다. 감리교선교회장 방문 4개월 후 였다. 나의 기쁨은 말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제게 건강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1962. 한국간호학교학생 2명, 독일에 첫 도착


한국과 독일에서 여권을 수속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1962년의 늦은 여름 간호학교학생 2명이 독일에 도착하여 Frankfurt의 감리교병원(Diakonischen Krankenhaus Bethanien)에서 교육이 시작됐다. 이 것이 독일에 [한국간호요원 정착의 역사적 순간이다] 하겠다.


간호학교학생 교육을 시작한 6개월 후에 Frankfurt지역에서 이 두 간호학생에 대한 호평이 들렸다. 한국 여성은 부지런하고 영리하며 환자에 대해 천사와 같이 친절하다. Nürnberg 와 Hamburg에 있는 감리교병원에서 한국간호학교학생에게 흥미가 있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독일감리교 부녀회는 그 두 병원을 위해서도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여권수속을 하는데 열심히 도왔다.




1962. 나의 독일의사 면허 국가시험 합격
1963. 주야  병원근무


1962년에 나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어도 예정보다 1년 늦게 독일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1963년 1월에 외과의사로서 Duisburg시에 있는 Bethesda 병원에서 근무을 시작했다. 150병상의 외과에 과장 1명, 상의(Oberarzt) 2명, 의사 4명이 근무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건강을 주실 것을 믿었다. 의사가 말 할 수없이 부족하여 나는 내 몸을 보살필 여유없이 무척 많은 수술을 해야했다.



감리교 병원에서  간호학생  53명 교육


그 후  한국간호학교 학생교육은 다음과 같이 감리교 산하의 3 병원에서 이루워졌다,


● Frankfut 의 감리교 병원에서
     1962년 2명 / 1964년 11명 / 1967년 6명
● Nürnberg의 감리교 병원에서
     1963년 4명과 6명 / 1964년 9명
● Hamburg의 감리교 병원에서
     1964년 9명 / 1965년 6명


이와 같이하여 독일에 있는 감리교병원에 53명의 한국간호학교학생이 교육을 받게 되었다. 오로지 독일감리교 부녀회의 도움에 의한 것이다.



44- 1.jpg



1964. 독일연방정부 초청으로  독일루터교 병원
14명 간호학생 도착, 루터교병원과 첫 접촉


독일 Essen시에 있는 루터교병원 Huyssens-Stiftung이 감리교병원으로 부터 [한국간호학생교육에 만족한 경험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1964년초에 연락이 왔다. 이 병원의 간호학교교장 Sommer여사가 자기 병원  간호학교에서 한국인 간호학생교육을 실시하고 싶은데 이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독일연방경제협력부(당시 후진국원조부)에 신청하겠다고 나에게 제안했다. 1964년 가을, 14명의 간호학교학생이 독일정부의 후원으로 독일에 왔다. 독일연방정부 초청이라 사증수속이 아주 빨리 진행됐다.



제가 너무 고단해요 하나님! 
이 프로그램을 중단하면 않될까요?


1963년에 나는 아직 완전히 건강하지 않았다. 내게 아주 고단했든 한 해였다. 아침 8시부터 18시까지 수술해야 했고, 겸하여 부상한 환자의  외래진료, 45병상의 병동일, 밤 당직 그리고 주말 당직을 하면서 한국간호학교 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너무 고단하여 한국인간호학교 학생들의 보살피는 일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내가 간염으로 오랜기간 병치료 받으면서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지 않으시면 내 건강은 악화되어 간염이 간경화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의사라는 내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  1963년과 1964년에 당직이 없는 일요일에 Nürnberg나 Hamburg 병원의 간호학생을 보살피고 돌아오는 경우 차 안에서 졸거나  길가에 차를 멈추고 잤든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였다.




1964.12 한국의 졸업간호사를 요구
(달리는 차안에서 그만하게 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


Hamburg의 감리교병원의 간호원장의 요청으로  나는 1964년 12월초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 어두움 속에서 Hamburg로 차를 몰았다. 당시 독일 병원에 의사가 대단히 부족하여 나는 쉬는 일요일만 한국간호학생들을 보살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새로 한국에서 Hamburg에 도착한 간호학교 학생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유였다. 이 날 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Hamburg병원에서 학생들과 점심을 같이하고 15시경 Hannover로 떠났다. 


저녁 6시 (18시) 경  Hannover에서 독일루터교회 그리고 루터교병원협회 관계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회의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회의 안건에 대해서는 통지를 못 받았다. 나는 여기서도 한국 간호학교학생에 대한 토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Hamburg에서Hannover로 가는 고속도로는 이 날 따라 눈이 많이 내려 매우 미끄럽고 여기 저기 교통사고가 나서 나는 거북이 거름으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연속되는 과로 때문에 몹씨 피곤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하나님께
"이제까지의 한국간호요원 초청이 제가 아팠을 때 했든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해 충분하지 않을까요? 한국간호학교학생를 보살피는 일을 이만 끝 내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중지하도록 인도해 주세요!" 기도했다.


저녁 8시경 Hannover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오후 6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론안건은: 루터교병원들이 한국에서 200명의 졸업간호사를 원한다.


- 1964년 여름에 Essen루터교병원에 도착한 한국간호학생들이 병실에서 일 처리하는 능력으로 봐서 한국 졸업간호사는  독일에서 교육기간없이 바로 독일병원에 배치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


루터교병원협회 대표자들과 고용계약조건을 협상하고 이 계약조건으로 한국정부의 허가를 받는 일을 날더러 하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나는  한국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여 아무런 의견을 제출할 수 없었다. 눈 속에서 차를 몰며 월요일 새벽에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 하나님 저에게 건강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꼭 Hannover의 루터교에서 부탁한 일을 해야만 할까요?  너무 피곤하네요  >




1965 정월부터 1966년 4월까지 
독일과 한국사이의  지루한 협상


1965년 봄 나는 일방으로는 독일루터교병원협회 대표자들과 노동계약 (노동시간, 언어교육, 필요에 따라 한국에 돌려 보낼 일, 3년의 계약기간보장, 독일연방고용인 봉급규정에 의한 봉급지급 등등)에 관하여 협상했다. 루터교병원협회 산하에는 신교 수녀님들이 경영하는 병원이 많아 협상이 아주 까다로웠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한국의 보건사회부에 이 곳에서 협상한 노동계약을 제시하며 200명의 졸업간호사를 부탁했다. 1965년 중반 (여름)에 보건사회부는 한국에도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 협상은 내가 당시 Wuppertal-Barmen시립병원의 외과에 근무 중이라 주어진 많은 병원 일을 하면서 해야하기에 아주 서서히 진행됐다 (의사가 부족한 시기였으니). 이에 관한 독일루터교병원협회와 협상은 내가 쉬는 날에 Wuppertal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Bonn에 있는 한국대사관의 어드바이스로 대한민국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200명 졸업간호사 독일 취업 허가를 부탁했다. 얼마 안되어 한국보사부에서 간호사들의 독일 취업에 대한 노동계약을 보사부 한상태국장과 협상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당시에는 한국과 전화통화는 불가능하여 모든 것을 우편으로 연락했다. 또한 나는 한국에 나갈 항공요금도 없었다. 그 당시는 항공요금이 아주 비쌌다.


(다음주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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