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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호사 파독50주년을 축하하며

한국간호요원 독일 진출 개척기 회고 2



<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 >

협상에서 다음 3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1) 루터교병원협회는 한국간호사가 독일어도, 독일병원의 실태도 모르니 첫 해의 봉급을 30% 삭감해야겠다는 의견에 한국 보사부측은 첫 달부터 100%봉급을 주장했다.


2) 독일이 2차대전 후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고 초대한 모든 외국인에게 적용한 것 처럼 왕복항공요금은 독일병원이 선불하고 한국간호사의 노년보험의 고용주분을 3년간 적립하여 상환한다.


3) 3년간의 고용계약을 내가 보장하고, 간호사가 3년 이내에 해약 할  때는 병원이 선불한 항공료금 및 기타 부채를 내가 책임지고 병원에 상환한다.



한국 보건사회부 및 독일 루터교병원협회와 3가지 합의사항

1) 루터교 사회사업본부와 루터교 병원협회는나에게 개인 자격으로 이 사업전체를 처리하지 말고 루터교병원협회와 공동으로 사단법인체를 설립하고 회원에 한국에서 온 간호요원도 포함하여 모든 일을 루터교 병원협회와 공동으로 처리 또는 해결하라고 권유 함.


2) 한국에서는 오로지 한국보건사회부가 한국해외개발공사와 공동으로 간호요원의 모집, 여권수속, 출국수속등을 담당하고 한국해외개발 공사는 선발된 간호요원의 명단을 우리에게 보내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비는 한국해외개발공사가 부담한다.


3) 독일에서는 독일루터교 병원협회의 대표자로당시 라인지방 루터교 병원협회장 Esser (Bad Kreuznach)씨가 선발되어 독일에 오게될 간호요원의 노동허가 거주허가 및 기타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한국간호사가 근무할 해당 병원과 독일루터교 사회사업본부와 협력하여 해결한다. 그리고 Esser회장은 간호요원의 항공편 예약과 항공요금 지불등을 해당 병원과 상의하여 책임진다. Esser 회장은 루터교 병원협회가 필요로 하는 간호요원의 수를 조사하여 나에게 알려주면 나는 이 를 한국보건사회부와 한국해외개발공사에 통보한다.



1966년 4월 서울에서 한국정부와 계약체결


독일루터교 병원협회대표 Esser회장과 나는 한국보건사회부와 합의사항에 관하여 계약체결을 해야 했다. 한국정부는 우리가 서울에 와서 보사부장관의 입회 하에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통지해 왔다. 당시 항공요금이 비싸서 루터교 병원협회가 부담하는 문제와 내가 Wuppertal 시립병원에서 휴가를 받는 문제로 한국에 가는 시기가 지연됐다.


드디어 1966년 4월 하순에 서울에서 정의섭 보사부장관, 한상태 의정국장 그리고 한국개발공사 사장과 위의 합의사항의 이행에 관하여 계약이 체결됐다. 동시에 200명 졸업간호사의 여권수속, 독일병원 배치 그리고 사증신청 등등이 이루워 졌다. 1966년 6월 제1차 졸업간호사가 Köln/Bonn공항에 도착했다.

그 후 다음과 같이 우리는 한국 간호요원을 독일에 초청했다.

1966년: 간호사 200명 
1967년: 간호사 200명, 간호보조사 600명
1968년: 간호보조사 200명
1967~1968년: 간호학교학생 및 기타 50명 (독일감리교병원으로 온 53명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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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명을 보살피는 어려움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시련


우리는 이상과 같이 한국간호요원을 1960년부터 1968년까지 총 1,300명을 독일에 초대하여  독일루터교 사회사업본부 및 독일루터교 병원협회와 공동으로 보살폈다. 1968년에 도착한 간호요원의 3년 계약이 완료되는 1971년 까지 보살펴야 했다. 1,300명이라는 많은 간호요원들이 언어, 생활습관이 다른 독일에 왔으니 어쩔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어려운 문제들은 나를  너무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시련이라고 믿고 처리했다.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800명의 한국간호보조사 초청


당시에는 한국에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간호보조사라는 직업이 없었다. Esser 회장과 내가 1966년 4월 한국 보건사회부와 계약체결차 서울에 갔는데 눈이 불편하여 진료차 안과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 개업의의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보조간호원을 만났는데 이 때 보조간호원이 “우리 같은 사람도 독일에 가서 일 할 수 없겠어요 ?”하며 “의원에서 일하는 보조간호원은 전혀 간호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고 대부분이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개업의원에서 배우고 일하면서 개업의를 돕고 있다. 동시에 부모의 생활이 어려워 적은 봉급이나마 부모님의 생활을 위해 보내고  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 말에 감동한 나는 독일에 돌아와  독일루터교 사회사업본부 총재와 이 보조간호원을 구제할 것을 상의했다. 한국보사부는 갑자기 의료법을 개정할 수 없으니 도와주고 싶으나 보조간호사 자격증을 발행하지 못 한다고 연락해 왔다.


나는 루터교사회사업본부및 독일정부와 협상하여 3년 이상 한국의 의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 한국해외개발공사에서 내과, 외과, 간호학과를 각각 1개월씩 3개월 교육받은 사람을 독일에서 간호보조사로 인정해 주겠다는 독일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초청한 간호보조사는  800명에 달한다.


나는 루터교병원협회와 절충하여 이와같이 독일에 온 한국간호보조사가 간호보조사의 봉급을 받고 근무하면서 동시에 간호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어 독일간호사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의사다
의사로서의 직업에서 성공해야 한다


나의 치명적인 간염에서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와 같은 한국간호요원 독일초청문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지만 의사인 나는 내 직업에 평생 충실하여 나의 전공 분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1966년 나는 Wuppertal-Barmen의 시립병원 외과에 근무하면서 1967년부터 Bonn대학병원으로 옮겨 세계의학계에서 활약해 보려고 결심하고 그 준비차 학술논문 2편을 독일의학지에 발표했다.

1967년 4월 Bonn 대학병원 외과로 옮겨와 혼자서 30병상을 맡았다. 이 해에 800명의 간호요원(전년까지 합하면 1,100명)이 독일에 도착했는데 나는 대학병원에서 병동일 외에 종일토록 수술을 해야하고 밤당직을 서고, 당직이 없는 밤에는 의과대학 학생들과 같이 의학연구차 동물실험, 동시에 학술논문을 작성하여 세계의학지에 발표했다.
이 해 말엔 Bonn 대학병원에 신설된 집중치료병동의 병동장직을 맡았다.


겸하여 1,100명의 한국간호요원들이 독일  전국에 분산되어 있으니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옥과 다름없는 내 생활이었다. 잠이 그리운 나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건강을 주셔서 1967년 불철주야로 일 할 수 있었다.


1968년에 한국간호요원 200명이 독일에 추가로 도착하여  1,300명을 보살펴야만 했다. 이 와중에도 1968년 수 개월간 Bonn 대학병원에서 나를 미국에 유학보냈다. 미국 Denver에 있는  Colorado 대학병원 Starzl 교수 아래에서 그리고 LA의 California 대학병원 Terasaki 교수 밑에서 장기이식에 관한 연구를 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Bonn 대학병원 외과의 간이식 팀장직을 맡았다. 1969년 6월에 유럽대륙 최초의 간이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같은 해  Bonn 대학 의학부에 교수자격 인증 하비리타치온(Habilitation) 논문을 제출하여 1970년 통과되었다. 1971년에는 남부독일 Ulum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초빙받았다. 그러나 나는 Bonn에서 일 하기로 결정했다. 외국에서 온 의사인 내게 이와 같은 기회가 부여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오늘까지 감사드리며 살아온다.


1960년 하나님과의 약속을 준수하기 위해 많은 한국간호요원 독일 진출의 길을 개척하는데 어려움과 고생은 형용할 수 없이 많았지만 하나님은 또한 의사로서 세계의학계로 도전하며 성공해 가는 데도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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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하나님은 나와의 약속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셨다


1966/1967년에 독일경제가 악화되어 1968년 독일연방노동청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을 억제했다. 이로 인하여 한국간호요원의 독일 취업은 일시적으로 1969년부터 독일정부가 허가하지 않았다. 1971년부터 한국정부가 직접 이 사업을 진행했다. 나는 훗날 1969년의 독일연방노동청의 외국인취업중지 조치는 1960년 병실에서 하나님께 약속했던 과제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실려는 하나님의 예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뜻밖에도 나의 간이식수술도 1969년에 이루워졌다).


만학도인 나에게 대학병원에서 환자, 연구와 교육을 위해 헌신을 할 수 있는 기회와 현재의 고령에도 일할 수 있는 건강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결실있는 57년을 독일에서 의사로서  또한 의학자로서 보낼 수 있어 감사드린다.


특히, 저와의 인연으로 독일에 오신 한국간호요원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기를 기도한다.




2016년 3월 3일
본대학교 의과대학교수 이 종 수


이종수 2.jpg

 



부탁; 56년전의 일을 기억에서 더듬어 쓰니 숫자에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간호요원의 보살피는 일을 끝낸 1971년까지의 회고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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