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예술칼럼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현대화가

by 편집부 posted Mar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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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예술 칼럼 (246)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현대화가

고갱은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되는 테하아마나라는 소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겼을 때 사실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착하고 밝은 표정을 지닌 것에 매력을 느껴 그녀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관능적인 누드를 수없이 그렸다.

1Paul Gauguin, TEHAMANA HAS MANY PARENTS (THE ANCESTORS OF TEHAMANA), 1893.jpg
Paul Gauguin, TEHAMANA HAS MANY PARENTS (THE ANCESTORS OF TEHAMANA), 1893



1895년에 파리에서 타히티로 다시 돌아온 고갱은 가장 먼저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당시 고갱은 매독에 걸려 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와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갱은 또 다른 여인, 열네 살의 파우라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는 조숙한 그녀를 모델로서 충분히 활용했다. 10년간 같이 살면서 파우라는 고갱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어릴 때 죽었고, 남자아이는 장성하여 어부로 일하면서 어머니를 부양했다. 그들이 고갱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891년 4월 1일, 고갱은 프랑스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타히티의 관습과 풍경을 연구하고 그리기 위해 프랑스 교육부와 미술 부처의 지원을 받고 고국을 떠났었다. 
그는 이 프랑스 식민지에서 살면서, 1887년부터 별거해온 아내 메테와 결혼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랬다. 

사실 고갱은 유럽의 각종 인류학 서적과 국제적인 식민지 전람회 등을 보고 난 후, 열대라는 문화적 형식에 대한 환상을 가기게 되었고, 그래서 직접 그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2Paul Gauguin, What! Are You Jealous, 1892 (Pushkin Museum).jpg
Paul Gauguin, What! Are You Jealous? 1892 (Pushkin Museum)

그는 다른 식민지 국가의 백인 남성과 같이 피식민지 국가의 원주민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들은 성적 모험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완벽한 대상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는 문명, 질서, 제약, 척박, 고통, 권태를 표상하는 반면, 남태평양의 원주민 문화는 자연, 야만, 혼돈, 풍요, 힘, 기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3Paul Gauguin, BATHERS AT TAHITI, 1897.jpg
Paul Gauguin, BATHERS AT TAHITI, 1897

그래서 원주민 여성들은 당시 '자연 그대로의 여성', '다산의 여성' 등 성적이고 육감적인 것의 표상이 되었다. 

3) 서로 다른 원시에 대한 사랑

고갱의 이런 원시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한 그림과 에밀 놀데의 작품은 큰 차이가 있다. 고갱은 원시인들을 원초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기품 있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렸다. 반면에, 놀데는 원시인을 굉장히 본능적이고 야수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4Paul Gauguin, The Seed of the Areoi, 1892.jpg
Paul Gauguin, The Seed of the Areoi, 1892

5Emil Nolde,Indische Tänzerin, 1917.jpg
Emil Nolde, Indische Tänzerin, 1917

놀데의 작품 'Candle Dancers'은 불타오르는 배경 속에서 불붙은 촛불을 바닥에 줄줄히 세워 놓고 두 여자가 광란의 춤을 추는 모습이다.

놀데에게 춤은 곧 원초적인 열정을 표현하는 불과 같은 것이었다. 일렁이는 불꽃 사이에서 뒤틀린 무희들의 육체는 자연의 원시적인 생명력 그 자체를 드러냈다. 

6Emil Nolde, Candle Dancers, 1912.jpg
Emil Nolde, Candle Dancers, 1912

이렇게 고갱과 놀데는 둘다 원시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표현했지만, 놀데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형상은 고갱의 원시에 대한 시각과는 굉장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현대화가

1차 세계 대전 직전, 놀데는 시베리아를 횡단해 뉴기니로 향하던 중 중국, 일본, 필리핀 등지를 방문했다. 

7Emil Nolde,Die Heilige Maria von Aegypten. Im Hafen von Alexandrien,1912.jpg
Emil Nolde,Die Heilige Maria von Aegypten. Im Hafen von Alexandrien,1912

8Emil Nolde,Südseeinsel (South Sea Island), 1915.jpg
Emil Nolde,Südseeinsel (South Sea Island), 1915

그리고 1913년에는 서울을 방문했었다. 그래서 그는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현대화가라고 일컬어진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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