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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관객과 만나다.

제주 4.3의 기억과 함께 잊혀진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이 공식 초청되어 세계 최초로 베를린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봉 전인 영화이고 영화제 팜플렛으로는 정확한 서사를 가늠하기 어려웠던만큼, 정지영감독이 제주 4.3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냈을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이러한 기대를 반영한 듯 일반 관객들을 위한 티켓판매는 시작과 동시에 몇 분만에 바로 매진되었다.

스크린샷 2026-02-22 03.25.56.png

'내 이름은'은 성인이 된 아들 영옥이 4월3일을 맞아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를 추모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오는 현재로 부터 시작하여, 그의 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자 제주 4.3이 조금씩 공론화되기 시작하던 1998년의 학교생활과 엄마와의 일상을 회상으로 보여준다.

9살 이전의 기억을 잃은 엄마 정순은 봄볕에는 선글라스가 필요하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리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곤 한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정순은 기억의 실마리를 따라가며 자신의 어린시절이자 4.3이 발생했던 시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현재, 1998년, 그리고 4.3 당시의 시간, 세 개의 타임라인이 뒤섞이며 그려진다. 

 

제주 4.3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맞서 싸우거나 감정의 대립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엄마 정순이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과정을 일종의 시간 여행처럼 보여주며, 감정을 절제한 채  4.3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그녀의 모든 기억의 퍼즐을 맞춰지고, 학살의 현장인 보리밭에서 정순이 목에 두른 스카프를 가지고 춤을 추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 관객들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동안 눌려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나오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 정순은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가 상처가 되어 기억을 묻어버리게 되고 몸의 병으로 나타나자 무당이 이를 보고 "귀신이 씌어서 그렇다"며 데려가 춤을 가르쳐준다. 이후 정순은 전통춤을 배우고 춤 선생이 된다. 그리고 오래전 부모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기 대신 친구가 죽은 장소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살아남은 그녀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크린샷 2026-02-22 03.26.25.png

 

정지영감독은 영화상영 후에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춤의 의미에 대해 "주인공에게 춤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과거의 혼령과 화해하는 샤머니즘적 의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교과서에서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던 역사이기에, 이 영화는 관객과 함께 4.3을 찾아가 보자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이 영화를 계기로 4.3이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이 연구되고 발굴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영화 제목 '내이름은'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 이름인 '영옥'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 영옥은 엄마에게 개명을 요구한다. 왜 아들 이름을 영옥이라 지었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불현듯 이름이 떠올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4.3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구 정순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었고,, 실은 그녀 자신의 진짜 이름이었다. 

 

이렇게 정순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곧 그녀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과정은 우리가 차마 보지 못했거나 혹은 애써 피하려했던 4.3의 진실을 차츰 찾아가는 과정과 겹쳐진다. 정순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팠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옛 아픈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힘들고 아플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순처럼 그 기억을 찾아 내고, 과거를 직시하며 화해하고 치유해 나가야 한다.

 

4.3은 예전 군사독재 정권 시절엔 폭동이라 불렸고, 그 이후 학살, 항쟁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4.3 사건'이라 불리거나, 제주 4.3이라고만 불리는 등 이름은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정순이 자신의 원래 이름을 찾아가듯, 4.3 역시 '내 이름은'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제대로된 이름을 찾아야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조심스럽게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폭력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듯 어머니가 아이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의 제주 4·3 평화공원 모녀상이 비춰진다. 이 모녀상은 베를린에 있는,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들에게 바쳐진 기념비인 케테 콜비츠의 작품 피에타—전쟁으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를 떠올리게 했다.

정지영감독, 배우 염혜란, 신우빈 등 내 이름은 팀은 베를린 시내의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직접 찾기도 했다.

 

2월 14일에 열린 베를린 동포와의 환담회에서  정지영 감독은 이번에 베를린 한인동포들과 이 영화가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어렸을 때 자기 때문에 죽은 친구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결국 과거를 찾아가 그 친구와 마지막에 만나게 된다. 베를린 한인동포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되찾아와서 설치하게 된 것은 마치 이 영화 속 소녀와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뜻깊은 만남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이 영화를 지원한 1만명 이상의 이름이 차례로 올라간다. 관객들은 그 이름들을 끝까지 지켜보며 또 다른 깊은 울림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전하는 감동과 울림이 한국에서 개봉될 때 많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글. 유로저널 독일 베를린 정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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