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계최고 영재였던 한국 소년 김웅용 소식

by 한인신문 posted Oct 2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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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0 대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하는 인물
천재 소년 김웅용에 대한 소식이 야후 잼난 이야기에 실려있어 이를 전제해 게재합니다 <한인신문 편집부>  


과거 한국에는 수많은 영재들이 있었다.

그중 단연 돋보였던 인물은 IQ 210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세계 최고 천재" 김웅용 씨였다.

김웅용 씨는 1962년 서울에서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인 김수선씨와 이화여대 의대교수인 류명현씨 사이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5살때 4개 국어를 구사하고, 6살 때는 일본 후지 TV에 출연해 미적분을 풀어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IQ 210으로 1980년판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지능지수 보유자로 올랐다.

그는 청강생으로 한양대에서 물리학 공부를 하다가 8살 때 미 우주항공국(NASA)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74년부터 5년동안 NASA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맞이할 십대 초반 나이에 세계적 연구 기관의 연구원으로 활약하던 김웅용은 16세인 1978년 8년여의 미국생활을 접고 NASA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 채 귀국을 한다.

당시 김웅용 씨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지적 능력을 착취당하다시피 했다.

그가 NASA에서 한 일은 오늘날 컴퓨터가 대신하는 기계적인 계측 뿐이었다.

사실상 NASA는 한국의 천재를 데려다가 자신들 목적에 따라 이용한 셈.

김웅용씨는 당시 NASA에서의 연구 생활을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고 회상한다.

김웅용 씨에 대한 지적 능력 착취는 비단 NASA에서 뿐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연일 김웅용 씨의 천재성을 '볼거리'로 삼았고,그는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볼거리' 용으로 착취당해야 했다.

한국에 돌아온 김웅용 씨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모든 학교 정규 과정을 건너뛰었던 그에겐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었다.

결국 검정고시 등으로 정규 과정을 대신한 그는 대학을 일부러 아무 연고가 없는 지방대(충북대)를 택해 들어갔다.

그리고 약 25년이 흐른 지금, 그는 국내 권위있는 토목공학계 연구원의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대학 교수직을 얻는 것은 포기했지만, 현재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위원으로,그리고 연세대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의 90여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국제인명사전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06년 판에도 등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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