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 Carol

by eknews posted Feb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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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Carol>,

토드 헤인즈Todd Haynes, 프랑스 개봉 2016년 1월 13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두 여인의 사랑을 통한 인간의 근본적 존재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미국은 2차 대전 후 고도 경제성장 속의 풍요와 청교도적 도덕이념이 사회기반을 이루고 있다. 과거로 돌아간 헤인즈감독은 안정과 번영의 모습 속에 가려진 개인의 다양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시대분위기 속, 두 여인의 사랑을 수려한 연출로 그려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백화점에 들른 뉴욕 상류층 귀부인 캐롤과 장난감코너 점원 테레즈는 첫만남에 끌림을 느끼면서 두 사람의 위험한( ?) 사랑의 여정은 시작된다. 어린 딸이 있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이혼소송 중인 캐롤이 부딪혀야 할 난관은 녹록하지 않다. 남편은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시대의 청교도적 몰이해로 일관하며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외친다. 사진가가 꿈인 테레즈의 곁에는 그녀와의 정상적인(?) 결혼을 꿈꾸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두 남자 모두 그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성실해 보이는 두 남자는 자신들의 기준으로 그녀들에게 ‘행복’이라는 것을 선사하려고 한다. 사랑이 물질적 풍요나 한 편의 일방적 베풂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그녀들과의 공감이라는 것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누구도 가해자와 피해자, 선악의 대결로 몰아가지 않는다(물론 캐롤에게 ‘도덕 문란’을 이유로 딸의 양육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댁이나 법정의 모습은 차가운 사회적 편견을 상징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캐롤>은 사회적 금기에 대한 의도적 고발형식은 지양한다. 자신들의 선택에 따르는 고통과 외로움은 고립과 좌절이 아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사랑을 좇아 행복해질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두 남자(남편, 남자친구)가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통에 실패하는 과정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욕구의 단면이다(억압적 인물로도 비취질 수 있는 남편역을 맡은 카일 탠들러의 아련한 눈빛은 그의 고통에 동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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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빛의 유려한 조합으로 빚어 낸 영상미는 두 여인의 ‘동성애’를 누구에게나 다가 올 수 있는 치명적인 ‘사랑’으로 그려내는데 힘을 더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이 소통과 공감으로 확장된 멜로드라마 속으로 빠진다. 느리고 흐르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과 웅변보다는 침묵의 교류는 어둡고 무거운 뉴욕의 분위기 속에 인물들의 감정을 잡아내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근접으로 잡힌 캐롤과 테레즈의 모습은 뿌옇고 어두운 공간 속에 갇혀있으며 창과 문을 통해 분할되는 동시에 그녀들의 미세한 감정선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캐롤>의 미덕은 어떠한 교훈적이거나 두 여인의 사랑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하나의 스캔들적 묘사를 거부하는 것에 있다. 첫 눈에 열정적 감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백화점 장난감 매대에 갇혀 있던 테레즈는 캐롤과의 만남을 통해 한 발짝씩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캐롤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사적, 사회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테레즈의 이야기는 <캐롤>을 ‘동성애’영화라는 쟝르에 가두기 보다는 한 사람의 성장영화라고 보는 것에 타당성을 제공한다. 파리로의 낭만적 여행을 망설이는 테레즈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테레즈에게 카메라를 선물하는 캐롤과의 다름은 사랑의 의미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이 영화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거부하지 않는 캐롤과 어쩌면 아주 당황스러웠을 끌림으로 인한 테레즈의 흔한 혼란이나 자기부정의 과정을 걷어 내고 두 사람의 인간적 소통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들의 삶을, 너무도 인간적인 이들의 삶을 피부로 와 닿게 한다. <캐롤>은 서로 공감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담론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소위 다문화, 자유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조차 무척 최근의 일이다. 뿌리 깊은 편견에 저항하는 작은 몸짓들은 가혹한 고립과 소외 속에 고통 받지만 멈추지는 않고 있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0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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