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10. 수채화가 된 도시, 피렌체와 아르노강

by eknews posted Sep 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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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10. 수채화가 된 도시, 피렌체와 아르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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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폰테베키오가 보이는 한 다리에서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3월 21일 여행 제30일, 리아의 집에서 짐을 꾸려 나와야 하는 날이다. 전에 만났을 때 이틀 묵기로 약속했고 그 마지막 날이 오늘이다. 여행을 정비하고 휴식을 취하며 리아가 사는 공동주거형태 아파트의 같은 층에 사는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친구, 비쥬얼 아티스트이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친구도 있었고, 한 명은 자신의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몇 년간 일했었는데 한국 음식이 그렇게 다양하고 맵고 대단하다고 들었다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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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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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 주변 잔디밭에 현지 사람들처럼 나도 편히 들어 누어봤다. 일어나면 이제 피렌체를 향해 달려야 한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더 늦기 전에 텐트 칠 곳을 찾아 나가기로 했다. 리아는 아침부터 학교에 가 집에 없었고 다른 친구들은 하룻밤 더 묵어도 괜찮다며 날 설득하려 애썼다. 어차피 피사에 하룻밤 더 머물 것이기 때문에 머물던 빈 공용 방에 더 머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기존의 약속을 어기기 싫어 결국 짐을 싸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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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도시에 친 텐트. 역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멀지 않은 곳(좌표 43.703415,10.416970)에 텐트를 쳤다. 이제 생각보다 텐트 칠 곳 찾는 게 쉬워진다. 날씨가 너무 좋아 피사의 사탑과 주변을 한 번 더 구경하고서 피사로부터 동쪽으로 80km 떨어진 피렌체로 떠났다.

가는 길 중간에 밀라노에서 자전거를 구입한 데카틀론의 다른 체인지점을 발견하였고, 자전거 앞바퀴가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추가로 필요한 물품도 있어 데카틀론에 들렀다. 자전거 앞바퀴가 이상하다며 봐달라고 자전거 전문 직원에게 부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앞바퀴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뒷바퀴 축 내부에 문제가 있다며 바퀴 통째로를 무료로 교환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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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가는 도중에 하루 국도 옆(좌표 43.663756,10.702046)에서 야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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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와 달리 이탈리아의 공동 묘지는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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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을 보고 피렌체를 따라가면 결국 자전거가 입장할 수 없는 고속도로가 나오고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이렇게 이탈리아는 도로 표지판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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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근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내가 지나간 바로 그 도로에서 차량 두 대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언제나 조심하자.

자전거 정비도 마치고 필요 물품도 구입한 후 결국 총 100km를 달려 하루 야영하고 그 다음날 밤에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사에 있을 적에 카우치서핑 홈페이지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이번엔 직접 호스트 요청을 보냈고 노령의 안드레아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답장을 보내와 그의 집으로 바로 찾아갔다. 

그들은 노령의 부부로 집에서 직접 구운 몇 종류의 빵과 몇 종류의 잼, 자기 친척이 직접 만든 파르미자노 치즈(카르보나라 파스타의 필수 재료이자 우리나라에서 피자에 뿌려 먹는 파마산 치즈의 원조이다) 그리고 역시 집에서 만든 화이트 와인 등으로 날 환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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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의 부인이 만들어 준 대구로 만든 수프

이틀을 안드레아의 집에 머물면서 피렌체를 가볍게 구경하고 안드레아의 집에서 카르보나라, 피자, 대구로 만든 수프, 이탈리아 “향토”의 맛을 즐겼다. 안드레아는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레 수학적 농담을 종종 했는데, 한 번은 우리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손가락으로 숫자 세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나라는 손가락을 모두 핀 상태에서 엄지 손가락부터 하나씩 접어가면서 숫자를 하나, 둘 세는데 반면 이탈리아는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 손가락부터 하나씩 펴가면서 숫자를 하나, 둘 센다. 그러다가 하게 되는 “우리식”의 농담은 결국 이진법의 원리에 의하여 손 하나의 다섯 손가락으로 0부터 31(=25−1)까지 셀 수 있다는 걸 언급하며 새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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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왔던 골목의 작은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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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의 딸 안젤리카와 메테오

어느날 밤에는 동 아파트의 다른 층에 사는 나와 같은 또래의 딸 안젤리카 그리고 그 친구 마테오와 함께 같이 밖에서 피렌체의 밤을 즐기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좋은 아페리티보(aperitivo)를 갖고 있는 피렌체의 바 하나를 소개시켜줬다. 아페리티보는 사전 상 에피타이저와 같은 말로 바에서 즐길 수 있는 특정 음식을 가리키는데, 이탈리아 특유의 방식으로 6~10유로(9,000~15,000원) 정도의 음료를 하나 시키면 바에서 제공하는 작고 간단한 음식 및 과자를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 

어떤 곳은 올리브와 당근만 제공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간 키취 디 피아짜 베카리아(Kitsch di Piazza Beccaria)는 마치 뷔페에 온 것처럼 파스타, 피자, 고기류 등의 음식이 풍부히 있기 때문에 저녁 대신으로 배를 채울 수가 있었다. 안젤리카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 이건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이다. 안젤리카는 역시 꽤나 빨리 한글을 이해했고 한글 자모음 표를 보면 한글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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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영화 관람 후 소피와 영화관에서 만난 박용현씨

안드레아와 헤어지고 피렌체에서 공부 중인 덴마크인 소피(Sofie)를 만났다. 역시 카우치서핑 홈페이지에서 알게 되었고, 나에게 잘 곳은 제공해 주지 못하지만 만나기로 했다. 마침 그 때 피렌체에서 한국영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우리는 같이 한국 영화를 관람하러 갔다. 

영화제 동안 여러 영화를 한 번씩 만, 그리고 한 시간대에 하나의 영화만 상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를 골라 볼 수 없었고 우리가 갔을 때 상영하는 영화인 ‘아저씨’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며칠간의 일정표를 보니 김기덕 감독 등의 여러 좋은 영화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갔을 때 하필 단순한 줄거리에 그저 잔인한 액션 영화 ‘아저씨’라니,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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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구석, 바의 한 야외 테이블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활기차게 대화 중이다.

영화가 끝나 저녁으로 피자를 먹고 소피의 집 근처 광장으로 나갔다. 소피는 나보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도 된다고 허락하였고 우리는 계획보다 더 오랫동안 광장을 즐기기로 했다. 어두운 광장, 삼삼오오 모여 땅바닥이나 계단에 앉아있는 사람들, 바(bar)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잡은 사람들, 사람들 손에는 기타, 맥주, 담배, 와인 등이 있다. 

우리도 맥주 한 잔 마신 후 두 명이 기타를 치는 한 무리에 끼어 땅바닥에 앉았다. 격이 없는 자유로운 이곳, 어느 낯선 자가 오더라도 우선 ‘차오(ciao: 안녕)’라는 말과 함께 앉을 자리를 내어주고 술이나 담배를 권한다. 이 무리는 주로 현지 이탈리아 사람들이었지만 소피를 알아본 다른 두 외국인 친구도 나중에 합류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기타로 반주를 쳐주면 누구 하나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잘 부를 필요도 없고 가사가 정교할 필요도 없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비교 당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모두 웃으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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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성당 근처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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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를 뚫고 기어이 관광명소에서 자전거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잠은 소피의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소피의 아파트는 방 세 개에 부엌과 화장실이 하나로 방 하나당 사람 한 명이 입주해 산다. 다른 방에서 날 위해 매트리스 하나를 빌려와 방 바닥에 놓아줬다. 소피는 당연하다는 듯이 바지를 벗고 팬티와 상의를 입은 채로 잠에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유럽에서는 가능한 일 같다. 나에겐 아직도 어색하지만 유럽 문화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재작년 덴마크 공대(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 친구들 여섯 명이서 노르웨이 오슬로에 놀러 갔을 때 우리는 호스텔의 한 방에 함께 머물렀는데 그 때도 한 벨기에 여자애가 팬티만 입고 자서 놀라운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호스텔의 공용 방에서 팬티만 입고 자는 여성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한 방에 단 둘이 있는 경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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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만난 브라질에서 태어난 교포 2세 윌리엄, 무거운 자전거를 탄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다.

다음날 소피의 집에서 나왔고 점심 때 즈음에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여유롭게 피렌체의 전망을 바라보며 따스한 햇살 아래 산들거리는 봄바람을 친구 삼아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자전거를 보고 신기해 하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피렌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곳, 쾌청한 하늘 아래 조밀한 피렌체의 심장을 관통하는 아르노강과 그 위를 지나는 폰테베키오 다리가 웅장한 두오모 성당과 베키오 궁전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붉은 지붕과 어우러져 익어가는 노을 지는 강에서 카누를 젓는 사람들, 이 곳이 바로 나의 피렌체 최고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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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만난 런던에서 유학 중인 중국 학생들. 우리나라 대중음악과 드라마, 영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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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학생들이 한국 가수그룹 ‘소녀시대’를 아냐고 내게 물어볼 때 뒤에서 갑자기 “나 알아!”라고 외친 미국인 마이클. 한국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국 저녁이 되어버렸고 미켈란젤로 언덕의 무한한 여유를 즐기는 동안 며칠 전에 카우치서핑 호스트 요청을 보냈던 새로운 호스트 키아라(Chiara)로부터 자기 집에서 자고 가도 된다는 답장을 받았다. 생각보다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는 게 쉬워 보인다. 이러다 보면 텐트 안 치고 여행할 수 있겠다. 

또 카우치서핑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생각 보다 자연스럽고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앞으로의 여행이 더욱 기대가 된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키아라와 연락하여 집에 도착할 시각을 약속하고 저녁 거리를 장보고 갔다. 오늘은 첫날부터 내가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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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지는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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