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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놈, 떡 하나 더! (7월4주)

by eknews posted Jul 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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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놈, 떡 하나 더!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통역일 하면서 본의아니게 통역원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많이 듣게된다.  아무개 통역원은 어떻고 또 아무개 통역원이 제대로 통역을 못해서 어쩌고저쩌고, 나도 통역원인데 내 앞에서 이런 고약한 얘기를 하게되면 그다지 마음이 편치는 않다.  내 앞에서 다른 통역원 욕하는 같은 입으로 또 다른 통역원 앞에서는 내 욕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통역원이 그날 주어진 통역을 잘 못하면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본인이 더 잘 안다.  혹 영 둔감하면 또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원래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 알지만, 영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일반진료소에서 간호사와 새 환자 등록을 하는 분들 사이에 통역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일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 이 간호사가 하는 말이, 당신이 통역을 잘해줘서 고맙다, 지난번 만도린(대다수의 중국 본토인들이 쓰는 중국어) 통역원은 통역을 너무 못해서 애먹었는데… 일단 그분에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난 뒤에 이제 그분이 한 말들을 통역을 해야할 차례였다.  그런데 내 칭찬은 자화자찬인듯해서 그렇고 또 나도 모르는 다른 통역원에 대한 비난이 들어있는 이 말까지 여과없이 다 통역을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조금 난감했다.  
하긴 통역원의 기본 자세는 쌍방간에 오고가는 모든 대화 혹은 언어들은 다 통역을 해야 사실 옳다.  그게 설령 듣기에 엄청 거북한 상스러운 욕이라 할지라도.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인 그 젊은 분에게 통역을 하는 대신에, 금방 저분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들었냐고 물었더니, 만도린 통역원이 통역을 잘못했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맞아요, 영어공부 아주 잘 하고 있네요, 로 그 통역은 마감을 했다.  연수때 날 가르친 선생님, ‘실리아’가 아시면 그러면 안된다고 뭐라 하겠지만, 실리아도 우리 한국문화와 정서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나에게 제 일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욕하지만은 않으리라 위안해본 날이었다.  
엄밀히 따져보면 관료주의에 의한 차례를 기다리느라 미처 되지못한 일에도 애꿋은 통역원만 욕을 잔뜩 얻어먹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쩌면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우리 한국인들-남과 북이 이건 공통이다- 에게 이런저런 절차상 일이 좀 더디 해결되는 것이 통역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게 되는 걸로 오해받기가 참 쉽다.  통역일 어설프게 하면 정말 벽에 뭐(?) 바를 때까지 아주 오래 살 것같다, 욕을 많이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니까 말이다.  
통역을 잘 한 거는 마음에 담아두고 못한 거는 못했다고 말이라도 해야 화가 풀리지, 하시는 분이 계셨다.  무슨 일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통역일 역시 잘 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된통 얻어먹는 게 다반사이다.  그래도 통역서비스 받는 분들이 어쩔 때 특히 전문의의 검진이 있을 때 통역원이 지정된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가서 병원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던 요청을 하던 미리 그 분야에 대한 사전지식을 알아서 챙겨듣는, 그렇다고 아무 보상도 없지만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도 기울인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감안해준다면 참 좋겠다.      
“여기 신문 한부 가져왔어요.  원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데, 미운 놈이 떡 아니 신문 하나 가져왔습니다요.”
“우는 놈한테 떡 하나 더 주는 법이지요.”
그럼 나는 미운 놈이고 그분은 우는 놈인가?  어르신 갖고 장난치면 어떡하나?  원래 욕먹는 놈이 미운 놈이고, 또 미운 놈 쪽에선 욕하는 놈이 미운 놈이기 마련이다.  이렇게하면 이론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건가?  
성경에 나오는 말씀중 나를 포함,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실행하기 힘든 게 바로 ‘네 원수를 사랑하라’가 아닐까 싶다.  꼴도 보기싫은 인간을 어떻게 사랑까지 하라구?   사랑은 둘째치고 아예 미워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런데 정말 눈 딱 감고라도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미운 놈에게 뭔가를 나눠주고 미운 놈에게 상냥한 인사라도 건네다보면 그게 오히려 그 미운 놈보다는 내 자신에게 평온함을 준다는 놀라운 역설이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주는 자가 복되도다’는 말씀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이 안믿어지는 분들은 한번 실험해보시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제게서 신문 받아가시는 분들, 자신이 ‘미운 놈’이라고 지레 짐작 착각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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