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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일어권 모국에서 한국어문화교육

by 유로저널 posted Sep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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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독일어권 모국에서 한국어문화교육
-        제 2차 경주 동국대학교 하기 한국어문화연수과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7월 말경 연수생 18명과 인솔자 포함 20 여명이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연수신청자는 독일어권내에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성인, 즉 18세 이상으로 제한되었다. 가끔  Gymnasium자녀들의 참가여부문의가 있었으나 신청을 받을 수가 없엇던 것은 유감이었다. 연수생은 다양해서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 한국학과, 베를린 대학교 한국학 전공자들, 그리고 교민 자녀 대학생로 구성되었다. 벌써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국대학교 전용버스에 짐과 피곤한 몸을 실고  편안하게 눈을 감기도 하고 창밖으로 지나는 무더운 여름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밖에서는 비가 꽤 요란스럽게 창문을  두들겼지만  두시간 후 내린 휴계소 마당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했다. 차들이 밀려 밤에야 도착해서 방배정을 마치고  첫 한국의 밤을 맞았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도 역시 다양했다. 모국에니까, 나를 버린 나라를 미워하다 그 나라의 문화와 ‚도전’해보자는 의도로 신청한 입양자, 한국어전공과 학생은 물론 현지에서 회화와 문화를 피부에 느끼면서 배우려고,  한국 가요에 반한 학생들고, 한국인 어머니의 원의를 무시 못 해 참가한 학생, 그래서 한국어와 문화수업도 전체가 만족할 내용으로 구상해야 했다. 주관 대학 국제언어교육원과 필자의 협상은 대체로 원활했다.

월요일 아침 간단한(!) 한국어실력 수능고사를 마쳤고 다음날 오전에는 정상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크게 두 갈래였다. 우선적은 한국어수업이오전 전체였고 오후에는 태권도, 좌선, 사물노리, 한복과 예절, 유적경학, 포항 산업체 방문 등  한국의 전통문화 입문이었다.
수업시간은 첫날부터  한국어로 진행되니 한국에서의 첫 ‚문화충격’이 어떻을지 상상이 간다.  한국어실력 수준 역시 전공과만큼 다양했다 한글 읽기.쓰기를 전혀 못 하는 연수생, 한글학교에 어느 기간 다녔지만 회화에는 전혀 자신이 없다는 학생들, 수업후 기숙사로 돌아오는 얼굴이 그리 밝지는 않았으니  연수주관자로서 궁리가 많았다. 일단 두 반, 기초 1, 기초 2반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전혀 한글을 읽지 못 하는 몇 학생들이  . 빠른 진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데모’를 했다. 무슨 걱정인가? 방과후 과외수업을 하면 되는데! 며칠이 지나자 과외수업이 필요없다고.
대신 2급반 수업이 너무 지루하다고  몇 학생이 조용히 ‚데모’를 했다. 급히 3급반을 구성하고 수필과 한자교육을 위주로 수업을 했더니 대 환영이었다. 일상생활안에서 한국말로 의사를 밝히는데는 어려움이 없는 학습생 경우  한자단어의 의미를 몰라 중급이상의 문장을 읽을 수 없던  ‚신세’가 이제부터 풀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한국어과정을. 무더위와  ‚투쟁’은 하면서도 노래방, 시장구경, 오후의 다양한 문화연수시간까지도  4 주를 거뜬히 마쳤다. 수료식 연극발표가  연수과정의 대성공을 말 없이 전해줬다.

연수단을 따라나선 다른 일행도 있었다. VOX 텔레비전  ;auf und davon’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작진  세 명이었다. 참것한 한 여학생을 주로 촬영했지만 우리 수업과 대학교정, 경주 문화유적이 배경이 될 수 밖에 없었으니  전체가 하나되어 협조를 했다. (필림제작은 마쳤고 곧 방영날자만 기다린다고 한다. 일정이 알려지면 다시 기사화하겠음)
몇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교민자녀들의 몇 친척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만남이 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조타와 통화를 못 하는 이모도 숙모도, 서촌형도 당황하면서 안타까워 하는 모습, 이리저리 통역까지 맡아야 했다.  어느 외삼촌이 조카를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나타났다. 그러나 삼촌과 조카는 안타깝게 마주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주관자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전화기를 바꾸라면서 조카와 삼촌에게 간단한 의행만 전하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배웠다. 이런 국내 외가와 독일 조카간의 어려움이 어디 여기서 끝나겠는가 만은 한.독일 친척간의 교류도 능한 한국어구사실력이 없이는 ‚얼떠름’ 모양새로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경주 동국대학교의 하기 한국어문화연수는 매년 진행할 계획이다.  교민 독자들의 좋은 제안 으로 더욱 더 효율적인 연수과정을 구상하고 싶다. 조언을 바란다.

겸해서 한 한국인 아내를 가진 연수생의 감사편지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간단한 보고를 마친다.
„…. Vor allem ganz herzlich bedanke fuer alles, was durch Ihre Organisation und Schaffenskraft moeglich wurde. Es ist fuer mich persoenlich eben doch etwas ganz anderers, ob ich als Ehemann nur Anhaengsel in einem fremden Land bin oder aktiv teilnehmen kann beim vielfaeltigen Zusammentreffen mit Verwandten meiner Frau und im Austausch mit Land und Leuten. Letzteres ist mir dank des Kurses gelungen, wenngleich noch viel zu tun bleibt, um erworbenes Wissen nicht zu verlieren, sondern dort anzuknuepfen, wo wir beim Sprach-und Kulturkurss in Gyeongju aufgehoert haben….“  

다음 기사는 연수생들 스스로 어떠한 결과를 얻었는지 알려줄 차례이다.

(beckerskim@hanmail.net베커스 김영자/ 전 레겐스부르그 대학교 한국어문화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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