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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1 09:31

비와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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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비가 내린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 여름의 악몽이 또 다시 시작되는가 싶더니 겨울 옷이라도 다시 꺼내 입어야 할 것처럼 찬바람까지 불어오는 걸 보면 역시 변덕스러운 영국날씨의 기질은 아직 남아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갑자기 돌변한 날씨에 별로 유쾌하지 않은 눈치지만 사실 필자는 이런 날씨가 참 좋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비를 좋아해서 비가 오면 생각난다고 전화까지 걸어주는 친구도 있었다. 촉촉한 흙냄새가 유난히 강하게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비가 오곤 했는데 그렇게 비가 오기 전에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비를 예고(?)하는 냄새가 참 좋았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그다지 많질 않아서 혼자 잘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즈음, 하루는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당시 살고 있던 모래내 골목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 저것을 구경하며 걷던 중 땅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달팽이였다. 솟아있는 눈을 손으로 건드리면 움츠러드는 달팽이는 어린 시절 참 신기한 대상이었고,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달팽이여서 그랬는지 너무나 좋아서 낼름 손으로 집어들고 다시 길을 걷는데 계속해서 여러 마리의 달팽이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평상시에는 눈을 부라리고 찾아봐도 쉽게 발견하기 힘든 달팽이였는데 이 녀석들도 나처럼 비를 좋아했는지 단체로 비 구경을 나온 듯 했다. 그렇게 해서 한 대여섯 마리의 달팽이를 주워들고 너무나 신나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한 동안 비 오는 날 그 길을 걸을 때면 그 때 만났던 달팽이들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임으로 늘 땅바닥을 주시하면서 걸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무엇을 봐도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그런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길을 걸어도 그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것 이상의 행위(?)였던 것 같다. 어린 꼬마의 눈에 비친 세상은 너무나 신기하고, 또 때로는 무서운 것들도 많은 그런 흥미로운 곳이었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 특히나 영화를 좋아했던 필자는 비디오 가게 앞에서 새로 출시된 영화의 포스터와 진열된 비디오 테잎을 한참 동안 쳐다보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갔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경제적으로 어지간히 부유한 가정이 아니면 비디오가 없었던 시절, 물론 필자의 집에도 비디오가 없었고, 그래서 몇 시간씩 비디오 가게 앞에서 진열된 비디오들을 보면서 어떤 영화를 어디에 비치해 두고 있었는지도 외웠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동네, 새로운 장소에 가는 순간은 마치 신대륙을 탐험하는 양 모험정신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꼬마 시절 동네에서 친구와 놀다가 부모님들 몰래 겁 없이 버스를 타고 오직 장난감 총을 구경하기 위해 명동 롯데백화점을 갔던. 당시 살던 성산동에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쉽게 찾는 장소지만 혼자 버스를 타본 적이 없는 꼬마들이 정확한 버스 노선도 모른 채 백원짜리 동전 몇 개 들고 부모님과 다녔던 기억을 더듬어서 찾아갔던 그 길은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대장정이었다. 또, 혼자 외진 길을 걸을 때면 불량배를 만날 까봐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간혹 걸인이나 정신이 조금 불편한 분들이 다가와 말을 걸거나 하면 너무나 무서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던 것 같다. 사실, 이 분들은 나쁜 분들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어린 눈에는 마치 나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무서운 존재로 비쳤으니, 어쨌든 지금 돌아보면 이분들께 조금 죄송하다.

그렇게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날마다 새로운 경험으로 신비롭던 그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가면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는, 아니 어쩌면 그 새로운, 흥미로운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잃어 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비 오는 날에도 달팽이들을 만나볼 수 없었다. 그렇다, 그 달팽이들은 그냥 달팽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티없이 맑은 동심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의 신비로움과 행복이었다. 비록, 어둡고 슬픈 일도, 힘들고 무서운 일도 함께 공존하는 저 세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디선가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있을 그 작지만 아름다운 세상 풍경이 우리 주변 구석 구석에서 우리가 바라봐 주고 함께 느끼며 웃음 짓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비롭고 흥미롭게만 보였던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높게, 빨리 설 수 있을까 하는 데에 모든 생각과 행동을 투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꿈과 상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비록 다시 어린 아이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문이 완전히 닫혀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이면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면서 걸어야겠다, 그 달팽이들을 다시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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