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있어요?”

by 유로저널 posted Jul 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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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한국인들이 내게 말했다, “뉴몰든 말고 한국 음식점들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 그리고, 그 길로 그곳을 찾아갔다. 정말 듣던 바와 같이 생전 보지 못했던 한국 음식점들이 환한 불빛을 밝히며 성업 중이었고, 눈에 보이는 첫 가게에 뛰어들어가 큰 소리로 물었다. “곱창 있어요?”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내 소리에 내가 놀라 바로 잠에서 깨서 혼자 낄낄거리며 잠결에도 한참을 웃었다. 평소 꿈을 꾸다가 흥분하면 꿈속의 대사(?)를 실제로도 잠꼬대처럼 큰 소리로 외쳐대던 버릇이 있는데, 이날 꿈속에서 드디어 곱창을 먹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격에 “곱창 있어요?”라고 실제로 외쳐버린 것이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꿈속에서 내가 벌이는 말과 행동을 실제로도 자면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게 가끔은 무슨 병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직 그럴 만큼 심각한 일이 벌어지진 않았으니 그저 가끔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한 번은 꿈속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침을 뱉었는데 누워 자다가 실제로 침을 뱉었으니, 그 침이 곧바로 내 얼굴로 떨어져 역시 놀라서 깬 적도 있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너무나 먹고 싶은, 그러나 이곳에서는 좀처럼 먹기 힘든 그런 것들에 대한 그리움, 향수… 요즈음 학교일로, 또 에세이 제출하랴, 벌려놓은 일들 진행하랴 정신이 없던 차, 이 시간을 통해서나마 조금 여유를 만끽해보려 한다.

필자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또 몇몇 종목은 거의 집착하리만큼 좋아한다. 보통은 잘 어울리지 않는 부류의 음식들, 가령 느끼해서 한 입만 먹어도 질릴 것 같은 파스타도 좋아하지만 돼지 비린내가 그윽한 순대국이나 내장탕도 즐긴다. 그 중에서도 정말 매 끼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메뉴가 있으니 바로 곱창이다. 분명 곱사모라는 곱창 동호회도 있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이지만 의외로 곱창을 입에도 대지 않는, 심지어는 혐오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다. 친구녀석들 중에도 비위가 상한다며 입에 잘 대지 않는 녀석도 있다. 그나마 부담(?)이 적은 소 곱창구이나 곱창전골은 먹어도 돼지곱창은 속칭 ‘돼지 구린내’ 때문에 종종 외면을 당하는 듯 하나, 이 또한 필자와 같은 매니아들은 그 ‘돼지 구린내’마저도 즐긴다는 사실. 필자는 소, 돼지 가리지 않고 곱창을 좋아한다. 소곱창은 곱창 사이에 그득한 곱과 함께 전해지는 고소한 맛, 겨울에는 얼큰한 전골로 먹어도 일품이다. 이와는 달리 두툼하게 썰어서 철판에 볶은 돼지곱창은 그 자체로 노릿노릿하게 익혀서 소금이나 소스에 찍어 먹거나, 깻잎, 당면을 넣고 때로는 순대도 첨가해서 철판에 고추장 양념으로 볶는 곱창 볶음도 정말 환상적이다. 얼마나 곱창을 좋아했던지 한창 광우병 파동으로 많은 곱창집들이 위기에 처해 있던 시절에도 필자는 의리(?)를 지켜 곱창을 자제하지 않았으니…

널리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 곱창의 메카는 왕십리와 황학동이지만, 일산 신도시에 사는 관계로 곱창 메카지역까지 거리부담도 있고, 그런 메카지역은 워낙 사람들이 붐비고 호객행위가 드센지라 그런 알려진 곳보다는 숨겨져 있는, 그러나 맛은 정말 뛰어난 그런 곱창집들을 개척(?)해서 즐겨 찾곤 했다. 그렇게 개척한 곳이 신촌 먹자골목에 위치한 H곱창과 모래네 시장 이름도 없는 곱창집이었다. H곱창은 소곱창이 전문인데 나보다 몇 살 위일 듯 보이는 젊은 남자 사장이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곱창이 싱싱해서 맛이 좋았다. 모래네 곱창집은 시장 골목에 있는 허름하고 작은 돼지곱창 집이다. 철판에 각종 야채와 함께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져 나오는 곱창은 ‘돼지 구린내’가 입안 가득 퍼지는 전형적인 돼지곱창이었다. 같이 간 친구를 위해 혹시나 순대 반, 곱창 반을 시켰는데 비위가 상한 친구는 순대만 먹었던.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을 오기 4일 전 평소 곱창매니아로 찰떡궁합이었던 사촌동생(‘행복을 주는 사람’ 리메이크 음반을 낸 가수 이상)과 함께 일산 라페스타 먹자골목의 한 곱창집을 처음으로 찾았는데, 정말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곱창이었다. 무슨 비법을 사용했는지 정말 고소하게 구워진데다 특제 소스에 찍어먹는 돼지곱창의 맛은 이제껏 최고였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그 곱창집을 왜 한국을 떠나기 4일 전에야 발견했던지…

그렇게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고, 아직 한 번도 한국에 다녀오질 못했다. 가수 이상이 작년 여름 촬영 차 런던에 와서 만났는데 내가 한국에 오면 같이 가려고 나와 함께 찾은 일산 곱창집에 그 뒤로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말에 어찌나 한국에 가고 싶던지… 그 동안 영국에서 여러 차례 곱창의 행방(?)을 수소문 했지만 영국에서는 법적으로 도살장에서부터 곱창이 차단된다는 얘기를 듣고 대실망. 미국에서는 곱창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는데 왜 영국에서는 곱창이 금지된 것인지…

혹시 필자처럼 곱창이 그리운 분들, 우리 영국 곱사모 만들어서 정부에 탄원서 넣읍시다, 곱창 합법화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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