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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필리핀에 선교 업무 차 가셨다가 교통사고로 별세하셨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답글들을 읽어봤더니 우려했던 것처럼 90% 이상이 악플 일색이다. 어쩌다가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악플을 다는 게, 또 그것을 보는 게 마치 당연한 듯한 세태에 이르렀는지, 너무도 씁쓸하고, 한편으로 다시 한 번 반성과 안타까움에 빠져든다.

한 생명의 죽음에까지도 조롱과 악담을 퍼부을 수 있게 된 것, 더군다나 그것이 흉악한 범죄자라거나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로 미움을 살만한 그런 인물도 아닌, 그저 평범한 소시민일뿐인 그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다름아닌 그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기독교를 통해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교회 다닌다고 하면 일단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간주되던 우리 나라에서 어쩌다가 기독교, 교회, 목사, 예수쟁이라는 단어들이 이토록 미움과 공격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 미움과 조롱의 감정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격해졌는지...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를 조롱하거나 이에 대한 쾌감을 느낄 만큼의 감정은 어지간해서는 인간으로서 갖기 어려운 그것이다. 이러한 감정이 가능한 경우는 그 대상이 절대적인 악(惡)자, 또는 미운털이 박혀있던 절대적인 강(强)자에 대한 것일 게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이번에 별세하신 그 분들 개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의 기독교, 교회이며, 그렇다면 결국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와 교회는 절대적인 악자, 밉기만한 강자의 위치에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절대적인 악자, 밉기만한 강자’, 자신을 해하는 무리들을 놓고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긍휼을 부르짖던 성경 속의 예수님과는 정말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이미지이다.

필자가 이 공간을 통해 결코 다루지 않으려던 주제가 있다면 아마 정치와 종교 얘기일 것이다. 필자의 프로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필자 역시 소위 말하는 예수쟁이다.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한 게 아니라 교회에서 다양한 음악 활동을 했고, 어설프게 신학도 1년 공부했다. 물론, 가끔 글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오랜 친구와 소주잔 기울이는 순간을 사랑하고, 세상과 인생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추구하는, 그래서 흔히 우리 사회에서 정형화된 예수쟁이와는 다른 면모들을 다수 갖추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무리 종교 얘기를 피하려 했지만, 필자의 프로필에도 “나 예수쟁이요”라고 하고 있으니, 요즘 세태에 대한 책임 의식도 있어야 하고, 이 공간을 통해 어떤 목소리라도 내야 할 것 같은 괜한 의무감에, 이 즈음에서 그렇게 피해 왔던 종교 얘기를 조금 해보련다.

미리 말하자면, 필자의 이야기는 예수쟁이로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옹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쟁이가 아닌 입장에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공격도 아니다. 말 그대로 21세기에 예수쟁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같은 예수쟁이들과는 함께 고민해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함께 노력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예수쟁이가 아닌 이들에게는 예수쟁이도 이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는 위로와 사과를 전하고 싶다.

일단, 개인적으로 필자는 교회나 목사님(사실 이 ‘님’자가 필요한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지만)에 대한 100%의 신뢰와 충성도를 갖고 있지 않고, 대신 예수님과 성경에 대해서만은 100%라는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바꿔 말하면 예수쟁이인 필자 역시 교회나 목사님에 대해 엄청난 혼돈과 분노를 겪어 봤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당장에 “너는 예수쟁이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목사들과 예수쟁이들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필자는 교회나 목사님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역할을 하는 것에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고, 또 목사님다운 목사님을 돕고, 존경한다. 그러나, 교회나 목사님은 그 자체로서는 완벽한 성경 말씀이나 예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필자가 겪었던 아픔과 상처, 혼돈, 실망과 분노는 어마어마한 그것이었다. 특히, 해외 한인 기독교 사회의 단점을 극명하게 지닌 영국 한인사회에서 입만 열면 다른 목사님을 흉보는 목사도 만나보고, 일반 월급쟁이들이 한 달 내내 생고생을 해서 버는 소득의 몇 배를 당연한 듯 가져가는 목사도 보면서 상당히 헷갈리고 분노했었다. 다행히도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만큼은 차마 부정하거나 반항할 수 없었던 것을 감사히 여긴다.

왜 한국 예수쟁이들은 ‘교회와 목사님’을 ‘성경 말씀과 예수님’으로 동일시하는 것일까? 즉, 교회를, 목사님을 마치 성경 말씀처럼, 예수님처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숭배하는 것일까? 물론 한국 교회와 목사님들이 이 같은 분위기를 지난 수십 년간 조성해 왔기 때문이겠지만,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회와 기독교가 이렇게 공격을 받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간단히 말해 예수쟁이는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는 게 예수쟁이다. 이 기준이 부합될 때,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인식도, 예수쟁이에 대한 인식도 분명해진다.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그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수십만 성도를 거느린 초대형 교회도 교회가 아니다. 교회라는 이름만 붙은 상업용 건물이다. 목사도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그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신학을 했고, 목사 안수를 받고, 초대형 목회를 할 지언정 목사님이 아니다. 목사를 직업으로 택하고 세납의 의무를 운좋게 피한 얌체일 뿐이다. 가끔 ‘감히 네가 하나님이 세운 교회와 주의 종을...’하는 반응을 본다. 웃기는 소리다, 겉모습만 교회라고, 목사라고 다 하나님이 세웠나? 사람의 욕심과 의지로 세운 것도 겉으로는 얼마든 하나님이 세운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진짜 하나님이 세웠는지는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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