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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훌륭한 목사님들 가운데 필자는 주저 없이 손양원 목사님을 꼽는다. 필자 개인적으로 전남 순천에서 연대 군종병(군 부대 내 교회 업무 담당 병사)으로 복무를 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정훈과에서 대외비로 진행하던 여순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또 대학 때는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프로젝트 발표를 맡으면서 이래 저래 인연이 된 셈이다.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 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나환자들을 섬기는 삶으로, 또 여순 사건 때는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한 자를 양자로 삼는 놀라운 사랑을 보임으로서 손양원 목사님은 정말 인간 본성의 그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을 몸소 실천하는 기독교인으로, 또 목사님으로 지금까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호칭으로 회자되고 있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까지 내려 놓고 사회의 약자이며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나환자들을 위해 인생을 바칠 수 있는 희생과 사랑은, 또 자신의 자식을, 그것도 두 명이나 되는 자식을 살해한 자를 용서하고, 그것도 가식적인 용서가 아닌 진실한 사랑으로 양자로 삼을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은 단지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 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에 과연 우리가 이와 같은 사랑을, 예수님의 참 뜻의 실천을 우리 예수쟁이들로부터, 목사님들로부터 단 한 건이라도 목격할 수 있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와 교회, 예수쟁이는 여전히 사랑 받고, 또 우리 나라,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제 아무리 기독교와 교회를 혐오하는 안티들일 지라도 나환자의 고름을 직접 입을 빨아내고, 자식들을 살해한 자를 양자 삼는 손양원 목사님 앞에서도 그렇게 성난 모습으로 기독교와 교회를 욕할 수 있을까?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기독교와 교회, 목사님들과 예수쟁이들에게서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를 보기 전에 일단 필자 자신만 봐도 그렇다. 만약 나에게 손양원 목사님이 보인 것 같은 희생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솔직히 망설여지고 두려운, 그저 나약하고 이기적인 한 인간의 모습일 것이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게,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대 사회의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들은 어느 만큼 예수님의 뜻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게 있다. 이것은 같은 예수쟁이들 속에만 있으면 절대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이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기대이다. 군 복무 시절 군종병이 되면서 차마 담배 피우는 모습만큼은 보이기가 싫어서 담배를 끊게 된 사연이 있다. 또, 군대에서는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는 후임병에 대한 가혹한 행위나 욕도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대를 얼마 앞둔 병장 말년 시절 심심(?)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훈련을 한 번 받아보고 싶어서 굳이 안 가도 되는 일주일 기간의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 겨울 얼어붙은 산 속에서 땅을 파고 텐트를 치고 거기서 일 주일을 지내는 것인데, 다른 것은 그럭저럭 견딜만한데 산 밑 부대 연병장까지 내려가서 하는 아침 점호는 도저히 못 가겠더라. 다행히 한 명씩은 텐트를 지켜야 해서 남아 있을 수 있었는데, 사실 당시 훈련 참가자 중 필자가 제일 왕고참이었고 전역도 얼마 안 남았으니 후임병들이 다 이해해줄 줄 알고 매번 텐트를 지키며 아침 점호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에 역시 필자 혼자 텐트에 남아 잠을 자고 후임병들은 아침 점호를 내려가는데 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부끄럽게도 필자를 흉보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교회 다니면서 얌체 같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당연히 필자가 제일 왕고참이었으니 그에 대한 예우로서 가장 편한 자리를 제공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후임병들에게 단 한 번 욕이나 가혹한 짓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섭섭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이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기대하는 그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 차라리 내가 예수쟁이가 아니었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었음에도, 그 후임병들은 내게 예수쟁이로서의 그 무엇을 기대했던 것이고, 나는 그들을 실망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단지 내가 예수쟁이기 때문에 편할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자리도 양보하길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지금 우리 사회가 예수쟁이들에게 기대하는 그것과 동일하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좀 더 낮은 자리, 좀 더 약한 자리에서 사회의 정의, 평등, 사랑을 실현시켜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두 개를 가질 수 있으면 하나를 타인에게 양보하고, 한 대를 맞았으면 오히려 한 번 안아주고, A석에 앉을 수 있어도 B석에 앉아주는 희생과 사랑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과연 우리 예수쟁이들이 그와 같은 희생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필자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예수쟁이들은 이왕이면 많이 갖고, 이왕이면 좋은 것 가지려고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많이 갖고 좋은 것 갖게 되면 그것이 예수를 믿는 축복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같은 교회 내에서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교인들끼리 대접하고 대접 받으면서 그것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교회 밖에서는 예수를 모르는 이들과 똑같거나 심지어는 더 이기적이면서, 예수를 모르는 이들로부터 지적이나 비판을 받으면 그것을 예수 믿는 핍박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예수쟁이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필자는 이 같은 질문에 한 없이 부끄럽고 추잡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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