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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정의를 갖고 있을 단어인 이 ‘사랑’, 그리고 복음의 핵심인 이 ‘사랑’,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기에 예수쟁이들이 가장 열심히 실천해야 하는 이 ‘사랑’, 과연 예수쟁이에게 이 ‘사랑’은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이미 너무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예수쟁이도 아니면서 수십 억씩 기부하고 남들을 돕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는 김장훈이나 박상민 같은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그들의 역할은 정작 우리 예수쟁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지 않는가라는 고민을 했다.

물론, 단지 그들의 기부 규모나 선행, 따뜻하고 좋은 성격만 가지고 이들을 무조건 칭찬하자는 게 아니며,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큰 규모의 기부를 하고 이타적인 마음씨를 지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 몰상식한 목회자나 교회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선한 행위만으로는 구원을 못 얻는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일을 해도 사람은 결국 불완전하며 죄를 짓는다, 고로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예수님을 모르면 무조건 지옥간다’라고.

선한 행위를 하지도 않고, 사회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지도 못하면서 입만 살아서 위와 같은 식으로 떠드니까 우리가 욕을 먹는 것이다. 위의 얘기가 맞든 틀리든, 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위와 같이 얘기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김장훈이나 박상민 만큼 사회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줘 놓고서 해야 한다.

아무리 구원을 얘기하고, 천국을 떠든들, 그 신앙이 자신과 신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뿐, 사회와 세상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신앙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그저 개인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는가? 결국 사회와 세상은, 신앙만 추구하는 예수쟁이보다, 신앙은 없지만 사회와 세상에서 진짜 빛과 소금이 되는 김장훈이나 박상민 같은, 말 그대로 좋은 사람, 착한 사람들을 더욱 필요로 하고 환영할 것이다.

진짜 신앙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잘 하는 것과 동시에 이 사회, 이 세상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자부해도, 결국 그것은 신앙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이 결국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 즉 이 사회와 세상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른다고 요란하게 떠들면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반만(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하면, 결국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역시 반은(이웃을 사랑하는 것)하는 이들보다 별로 나을 게 없을 것 같다.

보통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1대 1의 관계를 잘 갖고, 세상에서 주어진 일에, 주어진 장소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 때로는 교회생활 하는 법만을 지나치게 배우고, 실천할 뿐, 그것을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사회와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것에는 너무나 무지하고, 또 실천도 미약하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쟁이들은 어떻게 사회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할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필자 역시 자신있게 사회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기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기가 너무나 부끄럽다. 일단은 우리의 신앙은 사회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저마다의 역할과 재능을 다르게 부여받은 이상, 모두가 다 자선 사업가가 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만을 살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이 예수를 믿는 우리보다 더한 사랑을 실천하고, 사회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우리보다 더 열심이라면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자신의 신앙만을 기준으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기 전에, ‘~를 믿으면 안 된고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기 전에, 일단 내가 속한 곳에서, 작게는 주변 사람들,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 좋은 친구, 좋은 이웃, 좋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교회 역시 교회 자체와 자신의 성도들만을 위해 존재하기 보다는, 이웃과 사회,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역할을 해야 한다.

낮은 자리, 약한 자리를 피하거나 무시하면서 그것을 신앙의 축복으로 여기기 보다는, 솔선해서 낮은 자리, 약한 자리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어야 한다. 낮은 자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낮아져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대형 고급 건물을 세우고, 잘먹고 살사는 사람들만 모여 부르주아들의 모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올 수가 없다. 약한 자리는 단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만 뜻하는 게 아니다. 동성애자를 향해 그것은 죄악이라고 손가락질 먼저 해서 정작 복음이 필요하고, 교회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 교회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으면 안 된다. 낮은 자들, 약한 자들에 대해서 그들의 상태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신앙의 기준을 들이대기 전에, 먼저 그들의 낮음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사랑으로 감싸 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그랬을 것처럼.

예수님이 실천하신 사랑을 조금이라도 따라하고, 우리가 속한 사회와 세상에서 낮은 자리와 약한 자리를 위해 희생하고, 사라져가는 정의와 평등을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앞장선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며, 자연스레 우리가 그렇게 사회와 세상에 유익한 역할을 하도록 만든 원천인 복음에 대해서도 접하게 될 것이다.

수 많은 목회자들과 예수쟁이들이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와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땀흘릴 시간에,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나 끄적이고 있는 필자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부끄러워 진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들을 통해 필자를 포함한 예수쟁이들은 좀 더 반성하고,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갔으면, 그래서 참된 복음의 실현을 추구했으면, 또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은 예수쟁이들에 대한 오해를 조금 해소했으면, 그래서 어쨌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인생살이가, 이 세상이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부족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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