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보로의 추억

by 유로저널 posted Jul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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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북동부 North Yorkshire 지방의 바닷가 마을 스카보로(Scarborough), 전설적인 듀엣 사이몬&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명곡 ‘Scarborough Fair (스카보로의 추억)’이 바로 이 스카보로를 배경으로 하는 노래이다. 미국 뉴욕 출신인 폴 사이몬은 영국을 여행하다가 당시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 노래를 접하고 사이몬&가펑클의 노래로 편곡했다고 한다.

지난 주 마침 Leeds 지역에서 연주가 잡혔는데, 주최측에서 편도 차비와 하룻밤 숙박을 제공한 만큼, 그냥 돌아오기가 아까워서 오랜만에 며칠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Leeds 인근에 위치한 요크(York)를 거쳐서, 스카보로에서 머무르면 좋겠다 싶어서 여행 일정을 잡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카보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으며, 그 동안 쌓였던 몸과 마음의 피로를 덜어낸, 너무나도 소중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스카보로의 추억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으니, 이제껏 영국 전역을 다녔으면서도 이번 스카보로 여행만큼 고생을 많이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출발하면서 기름이 한 칸 정도 남아있었는데, 안전하게 기름을 넣고 가자는 동승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가다가 넣을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건만, M25가 공사 중이라 차가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기름 잔량을 가리키는 눈금은 어느새 바닥을 치고, 연료가 없다는 경고등이 들어오는데,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던지라, 더구나 그 상황에서 차가 서버리는 날에는 도무지 어찌할 방도를 알 수 없던 바, 정신이 혼미하기까지 했다. 가끔 영화에서 그런 상황을 봤더랬는데, 실제 그런 상황을 접하니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실감이 갔다.

한 방울이라도 기름이 절약되라고 언덕을 내려갈 때는 중립으로 달리기도 하고, 순간 네비게이션이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고속도로를 무조건 빠져나와 근처 마을로 들어섰다. 기름이 거의 한 방울도 안 남았을 무렵, 정말 기적처럼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고, 저녁 6시 반 도착 예정이었던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다음날 연주를 잘 마치고, 요크에 들러서 그 유명하다는 요크셔 푸딩을 맛보고, 스카보로에 도착했다. 부끄럽게도 한국에서도 단 한 번도 해수욕장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스카보로의 푸른 바다와 모래사장을 밟으며 드디어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닷물은 정말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다음날은 소설 ‘드라큐라’의 작가 브람 스토커가 ‘드라큐라’의 영감을 얻었다는 위트비(Whitby)를 찾았다. 항구도시면서도 언덕 꼭대기에 오래된 교회와 공동묘지, 그리고 포격을 맞은 사원의 잔해가 음산한 기운과 함께하는 곳, 여행에서 돌아가면 그 풍경을 떠올리며 ‘드라큐라’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리라.

출발하면서 고생했던 기억을 말끔히 잊을 만큼 스카보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 런던을 150km 가량 남긴 Northampton 근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차에서 굉음이 났다. 타이어가 펑크가 난 것이다. 왕복 6차선 고속도로에서 1차선에서 80마일로 신나게 달리던 차, 너무나 놀라서 얼른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2, 3차선에 다른 차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속도가 상당했던 터라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전구 하나 제대로 갈 줄 모르는 필자인지라, 스페어 타이어를 갈아끼울 일이 막막했다. 어찌어찌하여 볼트들을 풀어내긴 했는데, 펑크난 타이어가 도무지 빠져나올 생각을 안 했다.  두 시간을 타이어와 씨름하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지나가는 차량들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역시 서 주는 차가 없었다.

다행히 한 차가 섰는데, 이 사람은 도와주려는 의도보다는 자신이 일단 차로 런던까지 데려다 줄 테니 그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것 같아서 그냥 보냈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대의 차가 서줬는데, 이번에는 착하게 생긴 흑인이었다. 아내와 어린 아기를 태우고 가다가 서 준 것이다.

이 친구도 힘을 써보더니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고, 같이 고민을 해 주었다. 운전자 협회 AA에 가입되어 있으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으나 여기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았고, 하필 차량 보험도 고장이 날 경우도 해결해주는 서비스는 등록하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경찰을 부르거나 견인차를 불렀다가는 비용이 엄청날 것이고.

그런데, 이 친구가 자신이 마침 인근에 살고 있으니 자신과 함께 가서 차량 정비공인 자신의 친구를 데려와 보자고 제안했다. 어지간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인데,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그의 친절에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그렇게 정비공인 그의 친구가 와서는 타이어를 교체해주고 비용도 너무나 저렴하게 받았다. 나 때문에 한참을 고생한 그 친구에게도 사례를 하려 했으나, 한사코 거절해서 명함을 주고 받으며 나중에 런던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하며 헤어졌다. 그의 이름은 모세(Moses), 분명 하나님이 필자를 도우라고 보낸 천사였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행복했던, 오랜만의 휴식에 달콤했던, 그리고 우여곡절 고생도 엄청났던 이번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어느새 복잡한 도시와 산더미처럼 쌓인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오늘밤 꿈에 다시 그려보는 스카보로의 추억을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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