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4년차, 눈 감으면 떠오르는...

by 유로저널 posted Sep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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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벌써 ‘영국 4년차’를 쓸 때가 되었다.

작년에 ‘영국 3년차’를 썼을 때처럼 올해 역시 ‘서른 즈음에’의 지난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읽어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 보기도 하고,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어느새 또 이렇게 먼 길을 떠나 왔다니...

지난 한 해 동안은 스스로에게 한 점 부끄럼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전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팍팍한 현실을 살아남기 위해 정말 내가 가진 최대한의 에너지를 끌어다 썼다. 최근 들어서는 나이에 안 어울리게 흰 머리가 몇 가닥 발견되면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벌려놓고 진행하다 보니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는지 자려고 누워도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기도 했다.

특출나게 뛰어난 능력이 없으니 한 가지만 해서는 살아남기 어렵고, 또 해야 하는 일들 말고도 하고 싶은 일들도 해야 하니, 그래서 회사일하고, 글 쓰고, 음악하고, 그 와중에 만나야 하는 사람들,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문득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루가 지나 있고, 한 주가 지나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언제나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 그렇게 동분서주 고군분투 했음에도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일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깊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샐러리맨들이 회식 후 노래방에서 늘 마지막 곡으로 부른다는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노래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가사 중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일 년도 버틸 거야’ 부분에서는 필자 역시 눈물이 찔끔거렸으니...

그러나,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변함없이 사랑하는 일들 역시 함께한 지난 일 년이었기에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들도 했다는 것, 그야말로 기적이다.

지난 일 년 간 많은 글을 쓰면서, 또 여러 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소중한 경험들을 얻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면 새하얗게 빈 공간, 그 곳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다보면 어느새 완성되어가는 한 편의 글, 요즘은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그것이 짧건 길건, 나로 인해 한 편의 글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있다는, 마치 내가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아무래도 필자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고 또 직접 음악을 하다보니 유난히 이 분야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많이 한 것 같다.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글로나마 조그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뿌듯하리라.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지내 왔음에도 지난 일 년은 영국에 온 이래로 가장 지독하게 향수병을 앓기도 했다. 아마도 처음 도착해서는 적응하느라, 또 자리를 잡아가느라 향수를 느낄 틈도 없이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 해는 그 바쁜 와중에도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님을 떠올리다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앞이 부옇게 되는데, 가끔 사무실에서도 그렇게 부모님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려서 난감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회사가 42층 초대형 빌딩으로 이사를 했는데, 지난 사무실과는 달리 이번 사무실은 자리에 앉으면 통유리로 탁 트인 전망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고, 높은 하늘 위로 비행기가 떠다닐 때면 역시 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곤 한다.

친구들, 친척들도 너무나 그립고, 이렇게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나 살다보면 한국에서 전성민이라는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 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두렵기도 하고 서글퍼 지기도 한다. 사람들만 그리운 게 아니다. 한국의 평범한 골목길도, 내가 살던 일산, 또 자주 다니던 음식점이나 거리들도 너무나 그리워서 인터넷으로 그 곳들을 담은 사진을 찾아보기도 한다.

외국에서 사는 게 정말 체질에 맞는다고 여겼고, 또 그토록 꿈꾸던 외국 생활이건만, 또 한 편으로는 진짜로 삶의 터전이 이제 이 곳 영국으로 자리잡아 간다는 사실이 은근히 두렵기도 하고, 의외로 한국을 너무나 그리워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이래가지고는 과연 내가 평생을 외국에서 살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한국에 돌아가서 노년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한국의 잘못된 관습, 답답한 문화가 싫으면서도, 20년 넘게 산 고향땅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인가보다.

그럼에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내가 있어야 하는 곳, 앞으로 걸어가야 할 머나먼 길이 이 곳에 있기에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을 달래고 가던 발걸음을 바쁘게 재촉한다.  

영국 4년차, 눈 감으면 떠오르는 게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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