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잃어버린 농구공들은 어디에 있을까?

by 유로저널 posted May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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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농구선수였던 이상민이 은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득 마지막으로 농구 경기를 본 적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구공을 만져봤던 적이 언제인지 떠올려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은퇴하는 이상민 선수의 나이가 어느덧 불혹에 가까운 38세라고 한다. 한 때는 농구 코트를 누비며 펄펄 날아다니던 그가 벌써 그렇게 되었다니, 하긴 중학교 시절 그의 경기를 보며 흥분했던 필자 역시 이렇게 삼십대의 직장인이 되어 있으니...

필자는 체육 선생님을 아버지로 두었음에도 부끄럽게도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잘 못했다. 특히, 공을 가지고 하는 것은 영 꽝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공교롭게도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발야구 시간에 헛발질만 연속하는 필자에게 “야, 너 아버지 체육 선생님 맞냐?”면서 핀잔을 하셨을 정도다.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잘 못했지만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헬스클럽을 다닌 탓에 힘을 쓰는 것은 정말 잘했다. (벌써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식한 게 힘만 세가지고”) 철봉 시험도 만점에 턱걸이도 전교 1등, 팔씨름도 전교 1등이었다.

여하튼,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 동네에서 학교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농구에 빠져들게 되었다. 당시 살았던 마포구 성산동, 중동 동네에는 놀이터마다 농구 골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특히 우리 동네에 있던 골대는 어린이용(?)으로 높이가 상당히 낮았다. 그래서 키가 170cm정도 되고 점프력이 좋은 녀석들은 덩크슛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우리들 사이에서는 그 골대에서 덩크슛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데, 힘 좋고 당시 작은 키가 아니었던 필자는 그 덩크슛 만큼은 기똥차게 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 낮은 골대에서 덩크슛을 해댔던 우리들의 모습이 가소롭지만, 당시 우리는 NBA보다도 진지했으며, 덩크를 잘 하는 놈은 마이클 조던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당시 농구의 인기는 정말 최절정이었다. 장동건, 손지창, 심은하가 출연했던 ‘마지막 승부’라는 농구 드라마가 등장했고, 연세대가 대학팀으로는 유례없이 농구 대잔치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며, NBA도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샤킬 오닐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연세대 농구팀에 뿅간 여자애들도 참 많았지만, 당시 남자애들은 정말 모두가 농구를 사랑했던 것 같다.

발목까지 감싸주는 농구화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우리들은 단화를 신고 농구를 하면 어딘가 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모두들 브랜드건 싸구려건 농구화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인기모델이었던 이종원이 의자를 밟고 점프하는 광고로 대박이 났던 리복 펌프는 정말 환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브랜드 신발을 거의 신어보지 못했던 필자가 불쌍했던지, 6학년의 어느 겨울날 어머니는 필자를 데리고 명동 롯데백화점에 가서 수만원이나 했던 리복 펌프를 파격적으로 사주셨다.

운동화 윗부분의 동그란 공 모형을 누르면 운동화에 공기가 주입되어 발을 탄탄하게 조이게 되는데, 농구를 할 때 그렇게 펌프질(?)을 해서 신발이 딱 맞게 되면 괜히 더 농구가 잘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땀을 흠뻑 흘리면서 운동했던 게 건강에 참 좋았던 것 같다. 농구를 한창 많이 했던 시절에는 체력장 100m 달리기 13초 기록이 나와서 운동회에서 달리기 대표로 뛰었던 적도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요즘, 어느덧 통통하게 자리잡은 아랫배가 원망스럽지만, 누굴 탓하랴...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들이 농구를 하고 있으면 가끔 지나가는 어른들이 같이 시합을 하자고 끼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들은 많아봐야 20대 중반 정도 되는 이들이었는데, 어쨌든 우리에게 그들은 어른이었다.

그런데, 이 어른들은 한 5분 뛰고 나면 힘이 다 빠져서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펄펄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그 어른들은 “너네들도 우리 나이 되봐라”며 나이 핑계를 댔다. 당시 필자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원히 그 때 처럼 지치치 않고 풀쩍 풀쩍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부턴가 점점 농구공을 잡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한 동안 농구를 보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하지 않다가, 필자 역시 20대 중반의 어른(?)이 되어서 교회 청년들과 어울려 동네 중학교 농구골대에서 오랬만에 농구를 했는데, 이게 왠걸? 필자 역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는 것이었다. 점프를 하려 해도 몸이 땅에서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 뛰다가 한 숨 돌리려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니 그 옛날 필자처럼 쉬지도 않고 풀쩍거리며 농구를 하는 중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그들 역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오르게 될 것이라는 걸...

필자가 농구를 좋아해서 아버지께서는 농구공을 여러 개 구해다 주셨다. 그런데, 당시 농구를 가장 많이 하는 장소였던 놀이터가 한쪽 편이 낭떨어지처럼 되어 있어서 가끔 공이 담장을 넘어 그 밑으로 떨어지면 공을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했고, 필자도 거기서 농구공을 여러 개 잃어버렸다. 그렇게 잃어버린 농구공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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