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

by 유로저널 posted Jun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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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끔 정말 예상치 않게 당황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 그 순간 만큼은 어서 시간이 흘러서 그 당황스러움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지나고 나면 너무나 재미있는 일들로 기억되곤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첫 열차는 타지도 못하고 두 번째 열차가 도착해서 얼른 탔는데 이게 왠걸? 빈 자리가 딱 하나 있었고, 얼른 가서 앉았다. 그런데, 필자가 앉고 나서도 승객들이 계속 탔는데,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멍하게 바닥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젊은 서양인 임산부가 한 명 타는 게 아닌가?

맹세코 그 순간 필자의 눈에 그 여성은 임산부였다. 그 순간 뭐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려 했는데, 그 임산부는 상당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순간 그 임산부의 배를 다시 보니 아뿔사, 임산부가 아니라 그냥 배가 심하게 통통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니, 다른 승객들이 모두 필자를 한 번 쳐다보고 그 여성의 배를 한 번 쳐다보더니, 어떤 사람은 필자에게 까닭모를 미소(?)를 짓고 어떤 사람은 킥킥거리고 어떤 사람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개진다.

모두들 딱 보니 필자가 똥배가 나온 여성을 임산부로 착각한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필자 역시 그 순간 갑자기 웃음이 터지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너무 웃긴 것이었다.

그 여성은 제법 젊은 여성이었는데, 얼굴이나 몸은 호리호리한데 배만 뽈록 나온 경우였다. 보통 한국인 같으면 그 배를 옷으로 커버했을 텐데, 얘네들은 살이 쪘으면 살이 찐대로 당당하게 몸매를 드러내니 필자가 임산부로 착각을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든 졸지에 젊은 처녀가 임산부 취급을 받았으니 본인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또 불쾌했을까? 그 여성은 일부러 고개를 저 쪽으로 돌리고 X씹은 표정이다. 그런데, 필자는 자꾸 웃음이 터지려는 것이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다른 승객들이 필자 한 번 보고 그 여성의 배 한 번 보고 웃는 게 정말 웃긴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웃어제낀다면 정말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웃음보는 참겠는데 어쩔 수 없이 자꾸 입이 웃는 모양이 되니 애꿎은 혀를 깨물기도 하고 온갖 슬프거나 비장한(?) 생각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는 확실하게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필자가 근무하는 직장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화장실엔 아무도 없는데, 누가 화장지를 쓰고서 세면대에 잔뜩 버려놓은 게 보였다. 큰 일을 보는 칸이 세 칸이 있는데 한 칸은 변기에도 화장지가 잔뜩 껴서 변기가 막힌 것 같았다. 누군지 참 공공의식이 부족한 놈이구나 하면서 변기가 막히지 않은 다른 칸에 들어가서 앉았다.

그런데, 볼일을 보던 중 갑자기 왠 여성 두 명이 다짜고짜 남자 화장실에 들어오더니 퉁명한 목소리로 “Hello?”를 외치는 것이다. 볼일을 보다가 여자 목소리에 놀랐는데, 일단 뭔가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Yes!”라고 대답했다.

보니까 이 여성들은 한 명은 건물 관리 매니저고 한 명은 화장실 청소부였다. 누가 변기가 막혔다고 신고를 했는지, 화장실이 엉망이라고 항의를 했는지, 확인 차 화장실에 온 것이다. 그러더니 투덜투덜 거리면서 누가 이런 짓을 했냐며 화를 몹시 내는 것이다. 옆 칸으로 들어와 변기 막힌 것도 투덜투덜.

지들 책임이니 투덜거리는 것은 뭐라 할 바가 아닌데, 중요한 것은 필자는 그 순간 볼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이 여자들 빨리 나갈 생각은 안 하고 계속 투덜투덜. 볼일을 보던 필자는 대체 어쩌란 말인가? 여긴 남자 화장실인데 왜 여자들이 들어와서 안 나가냔 말이다!

중간에 볼일을 중단(?)하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지속(?)할 수도 없고, 순간 고민이 되었다, 이 여자들이 냄새를 맡으면 어쩌나? 일단 물이라도 살짝 내려볼까? 그러면 더 이상한가? 엄청 갈등했다. 다른 남성이 화장실을 이용하러 들어오면 이들이 나갈 것 같은데, 하필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숨을 죽이고 이 여자들이 빨리 나가기만 기다릴 수 밖에.

한참을 투덜거리더니 한 여자가 여기 지금 사람 있으니까 나가자고 하면서 나갔다. 사람 있는 것을 알았다면 진작 나갈 것이지, 실컷 떠들만큼 떠들다가 나가는 주제에. 이후로는 볼일을 보다가 화장실 바깥에서 지나가는 여자들 목소리만 들려와도 긴장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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