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을 열다

by 유로저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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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이 마지막으로 보낸 밤에 술자리가 끝날 무렵 필자는 종이 몇 장을 준비해 우리들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적어 내려간 이야기들을 곱게 접어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담았고, 네 명이 다시 함께 모이는 날 개봉하자고 약속했다. 그 타임 캡슐에는 우리들이 6년 전에 그렸던 꿈과 우정이 담긴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 네 명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으며, 어느덧 뽀얀 먼지를 덮어쓴 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 2008년 1월 10일에 작성한 서른 즈음에 ‘타임캡슐’편 중에서

2008년 1월에 작성한 서른 즈음에 ‘타임캡슐’편에서 밝혔듯이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보스톤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타임캡슐을 만들었던 바 있다.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유로저널 웹사이트(eknews.net)에 들어가시면 지난 칼럼을 볼 수 있다.

타임캡슐을 만든 날짜가 2002년 5월 31일, 그리고 하염없이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한국으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과테말라로 저마다의 길을 떠났고, 삶의 영역이 엇갈리면서 네 명이 동시에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할 기회를 좀처럼 만들기 어려웠다.

필자의 한국 고향집에 간직되어 있던 타임캡슐에 쌓인 먼지가 더욱 두꺼워지던 차, 필자가 지난 번 한국을 방문하여 2002년 미국에서 헤어진 뒤로 드디어 처음으로 네 명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고, 드디어 그 타임캡슐을 열고야 만 것이다.

무려 8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된 타임캡슐, 타임캡슐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혈기왕성한 20대 청춘들이었건만, 이제 모두 30대가 되어 한층 무거워진 인생의 무게를 실감하며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신촌에서 만난 우리는 밤이 깊어가도록 너무나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반가움에 지칠 줄 모르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잔을 기울였고, 노래방에 가서 한 명씩 무작위로 타임캡슐의 이야기를 뽑아서 마이크에다 대고 낭송했다. 8년 전에 술에 취한 채 썼던 이야기들이라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기억하기 어려웠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울려퍼질 때마다 우리는 그 속에 간직되어 있는 우리의 지난 모습들을, 그리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곁에 있는 우리들의 지금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고, 행복에 젖었다.

타오르는 젊음으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시절, 자유롭게 꿈을 꾸며 미래를 그려보던 시절, 세상을 잘 몰랐지만 그래서 더 행복할 수 있었던 철없던 시절, 아마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함께 공유했던 우리들이기에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노라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져든다.

우리의 모습들은 8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져 있었고, 저마다 너무나도 다른 길들을 걷고 있었다. 8년 전 미국에서 함께 지낼 때 우리는 거의 매일 붙어 지내며 술잔을 기울이고, 함께 쏘다녔지만 이제 우리들은 현실에 쫓기며 정말 1년에 한 두 번 볼 수 있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삶은 더욱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갈 것이고, 우리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자리도 더욱 갖기 어려워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서로를 간직한 채, 언제나 다시 만날 그 날을 그리며 살아갈 것임을 믿는다.

우리 네 명 중 어느 누구도 아직 대단한 성과를 이룬 사람은 없다. 그토록 많은 꿈들을 밤 하늘 높이 띄워보내며 함성을 내질렀건만, 그 꿈을 실제로 다 이룬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어쩌면 우린 평생 그저 이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변함없는 우정, 그리고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아닐까?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꾸준히 간직하고 이어간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너무나 값진 성과를 이룬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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