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곳이면 된다 : 마지막

by 유로저널 posted Feb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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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나 주택 시장, 그야말로 경제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필자가 괜히 어줍잖게 집 얘기를 꺼냈나 싶기도 하다.

이번 시리즈를 쓰게 된 동기는 그야말로 단순했다.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집 문제나 부동산 정책 때문에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한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과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지고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하소연이 빗발치다 보니, 왜 그래야 하나 싶은 안타까움이 들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필자와 비슷비슷한 형편의 고만고만한(?) 주위 직장인들을 보면 대부분 다 필자처럼 월세로 살고 있다.

알다시피 영국에는 한국의 전세 제도 같은 게 없다. 요즘은 영국의 부모들도 자녀의 주택 구입 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영국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집을 사주거나 집을 살 때 돈을 보태주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 필자처럼 방 한 칸 월세로 사는 이들은 괜찮은데, 자녀가 두 명 이상이라 플랏(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 한 채를 월세로 사는 이들은 월급날 즈음이면 거의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월세가 워낙 비싸다 보니 고액 연봉을 받지 않는 이상 영국의 젊은 직장인들은 이렇게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당연히 저축을 많이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 주위에서 그 어느 누구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불평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왜냐면 대부분이 다 그러고 사니까.

월세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생 돈’을 집값으로 지출하게 해서 저축을 거의 못하게 하는, 상당히 안 좋은 제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심지어 주위의 어떤 분은 같은 집에 20년 넘게 월세로 살았는데, 자기가 그 집에 지금까지 낸 월세를 다 합쳐보니 그 집을 살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이라고 하면서 웃으신다.

하지만, 영국에서 월세를 사는 사람들은 비록 목돈을 저축하거나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빚은 지지 않고 살며, 그야말로 두 다리 뻗고 잔다.

한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이렇게 영국에서 월세를 사는 우리들이 초라해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시선으로는 날마다 집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내 집을 가져도 대출금 갚느라 허덕이고 집 값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그들이 더 불쌍해 보인다.

요즘 한국의 뉴스를 접하다 보니, 한국도 이제 이 월세 제도가 대세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이 월세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듯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달 ‘생 돈’이 나가서 저축이나 내 집 마련과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월세로 살면 저축을 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적어도 모두가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누군들 내 집을 갖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코 모두가 내 집을 가질 수는 없다. 평생 내 집을 가져보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은 집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역시 과연 내가 평생 내 집을 갖게 될 지 확신이 없다. 또,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알아보니 한국의 월세는 영국의 월세와는 조금 다른 듯 했다. 보증금도 너무 많고, 계약 기간도 까다로운 모양이다.

영국에서는 보통 한 달 월세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증금으로 내고, 계약 기간도 제법 자유롭다. 또, 영국에서는 방을 세놓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세들어 사는 게 워낙 보편적인 것이지만, 한국적인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또, 월세라고 하면 집주인의 횡포나 집 없는 자의 설움과 같은 것들이 연관되기 마련인데, 사실 영국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보편적이고 심각한 것 같지는 않다.

월세 제도에 대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집 주인만 배 불리는 나쁜(?) 제도라고 하는데, 글쎄, 아직 영국에서는 월세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어차피 모두가 무리해서 목돈을 마련하여 집을 살 게 아니라면, 그렇게 여유가 돼서 집을 산 이들이 월세를 놓는 것, 그리고 목돈 없이도 하루 하루 두 다리 뻗고 잘 곳이 필요한 우리 같은 이들이 월세를 사는 것은 나름 바람직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만약 한국의 월세 보편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최대한 바람직한 월세 제도가 한국에서 자리 잡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월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서 월세를 사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듯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아직 세상을 얼마 살지 않아서, 또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집,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곳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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