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 피해자는 나 하나면 족하다

by 유로저널 posted Mar 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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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은 어느 사회에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어떤 제도나 정책의 악순환이라면 사회가 의기투합하여 제도를 바꾸고 정책을 바꾸면 되는데, 문제는 그 악순환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습적인 악순환일 경우에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너무 힘들다.

얼마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의경 가혹행위, 그리고 요즘 대학교 입학철을 맞이하여 발생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신고식 논란, 더 나아가 최근 물의를 일으켜 파면 조치를 당한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을 통해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 사회의 문제까지, 나는 이 모든 것들의 본질은 결국 어두운 인간성의 악순환 때문이라고 본다.

군 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등병 시절에는 누구나 참 못된 고참들을 적어도 한 두 명은 경험하게 된다. 후임병에게 유독 악랄하게 구는, 정말 악마와 같은 못된 부류들. 그리고, 누가 봐도 정말 부당하고 어리석은 중대/내무반의 자체적인 규율들.

그런 못된 고참들과 잘못된 규율들에 혹사 당하면서 이등병들은 다짐한다, 내가 병장이 되면 꼭 후임병들에게 잘 해주고, 그 잘못된 규율들을 없애리라고.

그런데, 그랬던 이등병이 조금씩 계급이 높아져 가면서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 역시 후임병들에게 악랄하게 구는 고참이 되어가고, 또 그 잘못된 규율들이 계속 유지되도록 오히려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을 괴롭혔던 고참보다 더 악랄하게 후임병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고, 그 잘못된 규율들을 이용하고 즐기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경우, 제대하고서도 한 동안 친했던 후임병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지냈는데, 내가 제대하기 전 막 자대 배치를 받은 이등병이 있었다. 이 녀석은 생긴 것도 정말 웃기게 생긴 게, 사투리도 심하고 참 어리숙한 녀석이었다. 혹독한 내무반 생활이 어지간히 힘들었던지 가끔 실수를 저지를 때는 눈물까지 보일 만큼 여린 녀석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제대 후 친했던 후임병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들은 얘기로는, 이 녀석이 어느 정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고참이 되더니 후임병들에게 그렇게 못되게 군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당한 게 억울해서, 그야말로 본전(?)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일까?

피해자를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군대나 전의경 가혹행위는 대한민국 국방의 의무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진 끔찍한 악순환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사회에 나와서는 대부분이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고 평범한 젊은이들일 텐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악마가 되도록 만드는 것일까?

해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같은 맥락이다. 본인들이 신입생이었을 때는 선배들의 그런 강요나 횡포가 싫었을 텐데, 이제 그것들을 즐길(?) 수 있는 선배의 위치가 되니 어느새 신입생들에게 같은 짓을 강요하는 꼴이라니...

파면 당한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은 다양한 이슈들을 다룰 수 있는 복합적인 사건이지만, 그 중에서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주제와 연관된 요소도 담겨 있다고 본다.

그 방식이 잘못된 것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가르치고 모두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한 듯 계속 유지되는 것, 또 교수나 학과장에게 잘못 보였다간 그들만의 세계에서 말 그대로 매장될 수 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

그런데 아마도 그렇게 배운 이들은 본인이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자신이 배웠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것이고, 자신이 교수나 학과장이 되어 누군가를 띄워주거나 반대로 매장시킬 수 있는 위치가 되면 그들 역시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횡포를 부리게 될 것이다.

그저 계속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다 보니, 자신들이 당할 때 그렇게 고통스럽고 억울했던 것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그 자신이 다른 이에게 같은 고통을 가하는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피해자일 때는 고통스런 일이 가해자가 되면 즐거울 수 있다는...

그렇게 저질러지는 부당한 일들의 근거는 그것이 계속 그래왔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것에 있다. 계속 그래왔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당연히 본인이 그렇게 하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계속 그래왔던 것이라도, 아무리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부당한 것이라면 중단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열쇠는 바로 내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 쥐고 있다. 그 악순환의 피해자가 나에게서, 여러분에게서 끝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정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악순환은 언젠가 돌고 돌아 결국 내 자녀, 내 후손을 피해자로 데려갈 테니까.

악순환, 피해자는 나 하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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