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시조 이성계와 국사(國師) 무학대사가 어느 날 군신의 관계를 떠나서 놀자고 하였다. 먼저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나는 그대가 돼지로 보인다”고 하자 무학대사는 “저는 폐하가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하고 답하였다. 이성계가 왜 그러냐고 묻자 무학대사는 “부처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개 눈에는 개가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새는 그냥 소리를 내는데 내 마음이 슬프면 ‘저 새도 슬픈 내 마음을 알아서 슬피 운다’고 하고 내 마음이 기쁘면 ‘저 새도 기쁜 내 마음을 알아 즐겁게 노래한다’고 한다. 세상은 그냥 있는데 내 마음이 즐거우면 온통 세상이 환하게 보이고 내 마음이 침울하면 세상이 어둡게 보인다. 새는 그냥 소리 내는데 새가 ‘운다’ ‘노래한다’, 세상은 그냥 있는데 세상이 ‘밝다’ ‘어둡다’ 하는 것은 내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단종을 영월 첩첩 산중 유배지에 두고 오던 왕방연은 냇가에 앉아서 그 마음이 울적하여 ‘저 물도 내 안 가타야 울어 밤길 예놋다’ 하고 읊었다. 어린 금지옥엽 단종을 산중에 홀로 두고 오는 마음이 울적하여 그냥 조잘조잘 흐르는 시냇물이 울면서 밤길을 흘러간다고 읊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곱다’ ‘밉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곱거나 미운 것이 아니고 어떤 사물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도 그 사물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도 그 자체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모두 제 마음이 그러해서 그렇게 보고 있을 뿐이다.
내 마음에 미움이 있어 미움이 보이고 미움이 보이니까 미워하게 되고, 내 마음에 사랑이 있어 사랑스럽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이니까 사랑하게 된다. 마음에 미움도 사랑도 없는 어린 아이는 누구를 미워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른다. 미워하고 사랑하라 하여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보이는 일체, 들리는 일체, 느끼는 일체… 사람은 오감(五感)으로 인식하는 일체를 제 마음의 꼴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냥 있는 세상 만물만상을 이렇다 저렇다 시비분별(是非分別)하는 것은 제 마음이 그러해서 시비분별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의 가진 마음에서 세상을 보고 듣기 때문에 그냥 있는 세상을 있는 대로 보고 듣지 못한다. 모두 자기의 가진 마음으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있는 대로의 세상인 참을 보지 못하고 없는 세상인 거짓을 보고 있다. 눈이 있어도 참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참을 듣지 못한다. 더 어리석고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거짓 속에서 깨어있지 않으면서도 깨어있지 아니하다는 것을 모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마음으로 짓고 부수는 허상의 마음세계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