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거인이 혼자서 움막집에 살았다. 그는 늘 맨발로 다녔다. 발바닥의 굳은살이 두껍고 단단해서 신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

by 한인신문  /  on Sep 21, 201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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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거인이 혼자서 움막집에 살았다. 그는 늘 맨발로 다녔다. 발바닥의 굳은살이 두껍고 단단해서 신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또한, 옷도 입지 않았다. 짐승 가죽으로 앞만 가리고 지냈는데, 그 차림은 여름에나 겨울에나 한결같았다. 그 아랫 마을에는 많은 땅을 가진 부자가 살았다. 이 부자는 봄만 되면, 일꾼을 얻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저 거인을 일꾼으로 부릴 수 없을까?'
어느 날 부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거인을 일꾼으로 삼으려고 온갖 궁리를 다했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부자는 하인들을 시켜서, 여느 사람이 입는 옷의 한 배 반은 족히 되는 치수로 옷감을 마르고 솜을 두툼하게 넣어 바지저고리 한 벌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는 이불 보따리보다 큰 옷 보따리를 거인의 움집에 몰래 갖다 놓았다. 날씨가 쌀쌀한 초겨울 해거름이었다. 사냥을 하다가 돌아온 거인은 낯선 보퉁이를 보고 머뭇거리다가 풀어 보았다. 옷을 발견한 거인은 한동안 그 옷을 윗목에 밀쳐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에 거인은 아주 굼뜬 동작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꽤 오래 걸려 다 입었을 때 땀이 말라 오슬오슬하던 몸이 무척 포근해졌다. 그날 밤, 그는 난생 처음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다. 며칠 동안 옷을 입고 지내다 보니, 옷을 입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거인은 옷을 입고 그 해 겨울을 보냈다. 봄이 되자, 몸에 칭칭 감기는 옷이 거치적거렸다. 거인은 옷을 벗어 버리고, 다시 짐승 가죽으로 앞만 가리고 지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었는데, 거인은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난해 입었던 옷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거인은 솜옷 없이 긴긴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아득할 뿐이었다. 덜덜 떨며 마을로 내려간 거인은 부자를 찾았다. 부자는 거인을 보자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숨기느라 자꾸 수염을 쓰다듬었다.

"옷 한 벌 빌리까 해서요..."
"저런! 옷은 어디다 쓰시려고? 겨울에 눈 속에서도 옷을 안 입고 지내지 않소?"
"옛날에는 그랬습죠. 그런데 지난해 겨울에 장난 삼아 옷을 입고 지냈더니..."
"봄이 오면 농사일이나 좀 거들어 주겠소? 그러면 따뜻한 솜옷 한 벌을 거저 드리지."

거인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부자가 주는 솜옷을 받아 움집으로 돌아왔다. 그 솜옷을 입고 그럭저럭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또 봄이 되었다. 거인은 솜옷을 칡덩굴로 묶어 움집 천장에 매달아 놓은 뒤 그 길로 부자를 찾아갔다. 거인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치웠다. 부자는 밭머리에 서서 긴 담뱃대로 이일 저 일을 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참 수월하게 농사를 다 지었다. 추수가 끝나자 거인은 돌아갔다.  겨울이 다가오자 거인은 지난봄에 챙겨 두었던 솜옷을 내려 보았다. 그러나 이빨로 칡덩굴을 물어 뜯어 솜옷을 펼쳐 보던 거인의 얼굴이 하얘졌다.  습기가스며들어 얼룩덜룩해진 옷은 솜이 다 삭아 도저히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망설인 끝에 거인은 다시 부자를 찾아갔다. 거인은 옷 한 벌을 위하여 해마다 부자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거인은 더 추위를 타게 되었다. 이젠 여름에도 홑옷을 입어야 했다.부자는 거인 앞에서는 짐짓 점잖은 티를 보이다가, 등 뒤에서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인은 꾸역꾸역 일만 하느라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

세상에는 도박이나 마약 등 중독되면 위험한 것들이 많은데, 모두가 첫 맛은 달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처음의 달콤함은 낚시바늘의 미끼와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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