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은 아마도 한국을 수식하는 단어 중 하나이리라. 이미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8.4명으로 OECD 평균 자살률의 두 배를 훨씬 뛰어넘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34분에 한 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이러한 자살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집단자살 사이트의 존재나, 유명 연예인에서부터, 심지어 행복전도사라 불리던 사람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습만 본다면 어쩌면 자살은 벌써 취직, 결혼과 같은 ‘사회적 선택’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는지도 모른다.
특히 얼마 전 ‘선택받은 과학영재’들만 진학한다는 카이스트에서 올 들어 4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수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베르테르 신드롬’과 같이 나약한 성향의 젊은이들이 모방자살을 일삼고 있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자살을 범죄시하는 카톨릭이 주된 종교적 기반이 되는 나라의 경우 ‘자살’이라는 선택 자체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규범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서남표 총장의 미국식 경쟁원리 도입은 한국의 과학계를 이끌던 카이스트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지난 2006년 이후 성적 미달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부과하는 ‘징벌적 수업료’나 연구실적에 따른 경쟁적 교수사회 형성은 카이스트를 한층 더 ‘효율적’ 경쟁 체제로 내몰았다.
이미 중고교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의 정글만을 거쳐온 학생들에게 경쟁적 구조뿐만 아니라 갈등구조도 안겨준 셈이다.
누구도 학창 시절 대화와 소통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따라서 지독한 경쟁과 갈등이 혼재된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지인지도 모른다.
참된 과학이란 남을 끌어내려야 내가 사는 그런 과학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참된 삶으로 공존하는 사회가 될 때, 그 때야말로 우리가 자살을 단순히 개인적 선택으로 치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