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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재영한인 손선혜씨가 7주 동안 파키스탄에서 중국 북경까지

실크로드 북로를 따라 트럭을 타고 직접 다녀온 탐사기를 유로저널 독자들을 위하여 기고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파키스탄에서 중국 북경까지 손선혜의 실크로드 북로 탐사기 (1)


silk1.jpg 


사람들이 쉽게 가 볼 수 없는 곳을 찾아 가 보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슨생각을 하며 사는지 또 살았는지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은 어렸을 적부터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길을 떠날 생각을 할 때부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어느날 TV에서 타미르고원의 푸른초원에서 동양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장면과 함께 2000여년 전 부터 동서양간의 상거래의 길이며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고 동서양의, 문화교류의 길이었던 실크로드에 대한 역사를 얘기해 주는 것을 보고 모험심과 호기심에 불이 당겼다. 나도 이제 그 무게 12.5톤짜리의 대형트럭으로 한치의 땅도 건너 뜀이 없이 그 길을 가며 대기도 느끼고 햇볕도 살에 대보고, 사람들도 만나 눈빛도 교환하고, 그들의 음식도 먹고, 차도 함께 마시며, 정도 나누고, 그들이 사는 집에서 함께 자고, 산천을 함께 걸어 보는 대망의 길을 떠나려고 히드로(Heathrow)공항을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Islamabad)로 향한다.
8주의 기간을 예정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나는 이 저녁은 한국의 가을같은 서늘한 느낌을 주는 청명한 날이다. 의외로 비행기 안은 승객으로 가득하여 열기가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니 이내 마음이 가라앉고 다음 날 미지의 일행을 만나기는 하겠지만 혼자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에 조금 외로워진다.
이슬라마바드 근교인 라왈핀디(Rawalpindi, Pakistan)에 있는 Holiday Inn 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오는 실크로드 탐사팀의 멤버들이 처음 만나는 장소다.
이슬라마바드공항에 내리니 많은 승객들과 택시호객으로 붐비나 서양얼굴을 쉽게 찾아 행선지가 같은것을 확인하여 자연스레 택시에 합승하다. 일행을 쉽게 만나니 이번 여행이 순조롭게 시작되니 끝까지 좋을것 같은 예감이 들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만큼 느낀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루 일찍 도착한 나는 함께 할 탐사팀의 멤버들이 다 모일때까지 갖고 온 지도와 가이드 책자를 읽으며 갑작스러운 기온의 변화와 시차에 빨리 적응해야겠기에 호텔에서 하루를 쉬다. 이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몇달 전의 일이다.
우선 도서관에 가서 동양학자가 쓴 실크로드에 대한 서적을 두권 빌려 읽고 내딴에는 사전 지식을 좀 갖고 떠난다고 생각했으나 공항에서 새로 구입한 Baedeker에서 나온 ‘중국’이라는 책을 읽으니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불안해지다.
실크로드는 약 100년 전 부터 서양의 동양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서북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품목이 비단이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스웨덴의 허튼(Hutton)과 영국의 스타인(Stein)과 같은 동양학자들은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뿐만아니라 지중해의 시리아에서도 중국의 비단이 대량 발굴되어 실크로드는 시리아까지 연장된다고 했다. 이 실크로드는 주로 중앙아시아에 점재한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길이라고 해서 일명 ‘오아시스길’이라고도 한다.
세계 제2차대전후에 서양의 동양학자들 사이에는 이 길을 통한 동서문화교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실크로드를 로마까지 연장하여 장장 1만 2천 킬로미터를 동서문화교역로로 정했다. 이번 우리팀은 8500킬로미터를 대형트럭으로 그 옛날 6세기부터 1900년대 까지 카라반으로 낙타로 혹은 마차로 산도적들의 위험을 무릎쓰고 다녔던 무역로를 탐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길은 기원전 2세기의 아리아인들, 알렉산더대왕, 또 많은 고승들이 구도의 길을 닦으러 인도로 갈때 이용한 길이고 불교가 우리나라로 들어온 길인 것을 생각하면 이번 여행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행보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보고, 듣고, 배우고, 무엇인가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된다. 


silk30.jpg 


내가 71년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올 때에는 파키스탄은 인도와 전쟁 중이어서 입국은 물론 그 상공으로 비행도 불가능했다.
이번에 처음 보는 파키스탄의 길 거리는 너무도 이색적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합승버스와 비슷하게 생긴 차는 장식도 화려하게하고 온통 꽃그림으로 가득한 꽃가마와 같아 사람이 안 탔으면 화려한 영구차 같기도하다. 차도 뿐, 인도가 따로 없는 한길에는 여자들은 별로 없고 모두 코밑 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남자들이다.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 생긴 사람들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눈이 참으로 예쁘다.
호텔에서 12명과 인사를 나누다. 멤버들의 국적은 영국, 카나다, 덴마크, 이태리, 벨지움, 한국으로 남자 2명과 여자 10명이다. 두사람이 한 팀이 되어 하루의 식사를 준비하는 식사당번이 되고 쓰레기를 맡아 버릴사람, 모닥불 피우는 일을 할 사람, 트럭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고 외식을 할때 식당을 찾고 음식 주문을 할사람 등등 각자 할 일을 정하고 트럭의 좌석아래에 있는 각자의 록커(locker)에 짐을 넣다.
나는 외식 할때 식당을 찾고 음식 주문하는 일을 맡다. 이 대형트럭은  10미터의 길이에 12,5톤의 무게로 독일의 벤즈회사가 탐사를 하는 여행용으로 만들었다.
20명이 탈 수 있는 크기로 십여개의 이인용 텐트, 간이의자, 가스쿠커, 부엌에서 필요한 도구일체, 식기, 식수, 가스, 트럭의 부품들, 모래사장에 차바퀴가 빠졌을때 차를 끌어 내는데 필요한 도구, 어두운 저녁때 불 밝히는 형광등, 삽, 비상약, 그리고 자그마한 도서관은 여행안내책자외에 여러가지 읽을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날 이른 아침 트럭이 달리기 시작하니 40C의 더위도 못 느끼고 모기에 시달리는 것도 없어지다. 아름다운 산천과 가끔씩 지나가는 화려하게 단장한 짐차들, 차의 크기보다 짐의 크기가 더 커서 금방 쓸어질 것만 같아 아슬아슬하다.
그렇게 9시간 반 동안을 달려 베샴(Besham)에 도착하다. 말의 표현  그대로 눈조차 뜰 수 없는 흙바람 속을 2시간여 달린 우리는 우선 흙먼지가 아니라 흙을 씻어내는 고양이세수를 하다. 멋진 소나무를 택해서 그 아래에 텐트를 치고 휘영청 훤한 달빛아래에서 맥주를 마시며 긴 여행의 첫날밤을 흥분으로 설치다.
다음날 새벽 5시 반에 아침식사하고 6시 15분에 출발하여 인더스강을 끼고 북상이다. 40도의 더위 속에서 낮12시에 점심식사. 그리고 또 5시간 반의 긴 여정. 이렇게 여행은 강행군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피곤하고 힘든 줄을 모르겠다. 11명의 일행은 언제나 머물렀던 장소에서 떠나기로 예정한 시간보다 일찍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여행 전문가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사려깊은 사람들의 몸에 배인 태도일 것이다. 아침은 언제나 바쁜 시간이다. 전날 쳤던 텐트를 거두고, 아침을 해 먹고, 설겆이하고, 식기와 포크 나이프를 일일이 흔들어 물기를 말린후 제자리에 넣고 텐트, 테이블, 의자 등등 트럭에 짐을 다 실은 후에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인더스강의 물 빛은 석회빛이고 산골짜기에서 내려와 인더스강과 합쳐지는 물은 초록색이다. 이 두가지 빛갈의 물은 만나는 곳에서 희한한 빛을 낸다. 강가에는 바위가 많고 그 넘어로는 사막이 펼쳐지는 장관이다. 출발한지 9시간만에 그 유명한 카라코람(Karakorum)산맥에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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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연속인 Karakorum Highway는 높은 산골짜기라는 의미의 Highway는 맞아도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신작로라는 의미의 highway는 아니어서 염려스러울 정도로 좁고 양의 장처럼 구비구비 도는 길이다. 그러면서 절경이 계속 펼쳐지는 것이다. 군데군데는 무너져 내린 길로 지나가기가 위험해서 공사가 끝날때까지 두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그 옛날 이 길에는 산적도 많았다고 하고 생명을 잃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하는데 이길로 비단외에 귀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상인들이 있었고, 또 서양사람들은 중국의 문화재를 도굴하여 서방으로 실어 내 갔다니 놀라울 뿐이다.
길을 떠난지 12시간 만에 북파키스탄의 수도인 길기트(Gilgit)에 도착하다. 위그르족이 사는 지방으로 사람들의 생김새가 이국적이며 피부도 희고 의상도 파키스탄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인더스강가에 텐트를 친 때문인가 물소리에 잠을 설치다. 놀랍게도 수로가 발달되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산의 높은 곳까지 만들어 놓은 물길을 따라 땡볕 아래에서 4시간의 산행을 하다.
깊은 산에는 높은 암벽에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어떻게 그 높은 절벽에 돌을 깍는 작업을 했을까? 높은 기온에 4시간 동안의 산행이 무리여서 비타민 C가 들어있는 소금물을 마셔야했다.
폴 로(polo)경기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길기트의 작은 거리라고 한다. 이곳 파키스탄사람들이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위하여 특별히 폴로 경기를 해주다. 장소는 폭이 넓은 골목길이고 우리는 인도에 의자를 놓고 앉아 관람하다. 동양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말을 잽싸게 잘 몰면서 공을 치는 솜씨가 좋은 것이 신기해 보이다. 말타는 문화는 서양의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는 것은 잘못인 듯하다. 공을 치는 막대기도 각자 손으로 깎아 쓰는 것을 보다.
40도의 더위를 힘들어 하던 때가 바로 어제인데 카라코람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오니 밤에는 춥다. 트럭에서 마실 식수도 살겸 시장 속을 거닐다가 작은 테이블이 세개 놓인 움막같은 집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다. 갓 구어낸 빵을 인도음식과 비슷한 쏘스에 찍어 먹는 것인데 맛있다. 처음에는 주위가 하도 지저분해서 아무 것도 못 먹을 것 같았으나 이러다가는 여행 내내 외식을 못 할 것같고 이런 정도에 적응을 못하면 이런 여행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눈 딱 감고 먹다.
살구나무아래에 자리를 잡아 세웠던 텐트를 아침 일찍 거두고 인더스강가의 바위에 앉아 마음을 한가로이 가다듬다. 아침식사 후 8시에 출발하여 4시간동안 달려서 그 유명한 알리 아바드(AliAbad)의 훈자(Hunza)계곡에 도착하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절경의 눈덮힌 산들이 팔을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듯하다. 그 봉우리들은 이름하여 울타 메도우(Ultar Meadows), 라카포시 포인트(Rakaposhi Point), 디란 봉우리(Diran Peak), 골든 봉우리(Golden Peak)다. 눈 덮힌 산에 부딪혀 오는 햇빛이 너무도 찬란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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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낙원이라는 작은 마을, 훈자는 눈 덮힌 산들로 둘러 싸여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가정집처럼 생긴 우체국도 있고 랜드로버에 예쁜 카텐을 친 택시도 있다. 땅을 파고 호텔모양의 건축이 한창 진행중인 것을 보면 곧 조그만 여인숙도 생길 모양이다.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관광지같은 분위기이다. 마을의 신작로는 하나 밖에 없다. 몇몇 일행과 점심을 먹으러 그 거리에서 제일 커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니 테이블이나 의자는 없고 넓은 방안에 담요같아 보이는 헝겊이 깔려 있다. 주문한 음식은 손에 들고 먹고, 마실 물은 방바닥에 놓고 마신다. 책상다리모양으로 앉기가 힘든 일행은 벽에 기대어 거의 누운듯이 앉아 먹으며 등을 곧추 세우고 앉아 먹는 나를 보고 신기해하며 부러워한다.
랜드로버(Land Rover)차에 예쁜 카텐을 친 택시를 타고 산 밑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하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산행을 한시간 반을 하여 꼭데기에 오르니 그곳이 바로 절경의 독수리의 둥지(Eagle’s Nest)다. 워낙 급경사의 길이어서 경치의 변화가 많고 병풍처럼 빙 둘러싸인 눈 덮힌 산들 가운데에 있는 곳이라 이름이 독수리의 둥지인가 보다. 그림엽서를 많이 찍었을 법한 절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하산하는 길에 길을 잃어 결국은 5시간 반의 힘든 산행을 한 셈이다.
우리의 트럭이 주차하고 있는 캠프장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살구나무 밑에 흰 눈이 덮힌 라카포쉬 봉우리(Rakaposhi Point)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다. 이 캠프장은 남녀 화장실과 비록 찬물밖에 없지만 샤워실이 한개 있고 전기불이 항상 켜 있는 관광지답게 시설이 좋은 곳이다. 아무리 불편한 화장실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기온은 아침은 10도, 낮에는 35-40도. 캠프장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어른 아이 모두 How are you? What is your name?을 수없이 반복하며 인사를 한다. 영어로 말하고 싶어서인가 인사를 하고 싶어서인가? 춥고 척박한 땅에 수로를 내어 채소를 심고 가축을 기르며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가난을 인내와 절제로 순순히 받아 들이는 가운데 삶의 향기가 있는 곳이다. 어디를 가나 새벽이면 새소리가 들리고 닭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동서양이 같다. 한밤에 잠이 깨어 텐트문을 여니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달빛에 한 폭의 그림처럼 라카포시(Rakaposhi)의 눈 덮힌 봉우리가 빛나고 있다.
훈자에서 가까운 카리마바드(Karimabad)라는 곳은 산비탈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 뒤에는 발티트(Baltit)요새가 뾰족한 송곳처럼 우뚝 솟은 산꼭데기에 장난감처럼 올라 앉아 있다. 요새로 올라가는 길은 어찌나 가파른지 구경하러 올라가기 조차 어려운것을 보니 적도 침범할 생각이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훈자에서 한시간 남짓 달려 굴밑(Gulmit)에 도착하다. 깊은 산중에 있는 이 몇 집 안되는 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굴킨빙하(Ghulkin Glacier)를 횡단하여 산을 넘기로 하다. 멀리서 보던 눈 덮힌 산 허리에 눈이 덮혔다가 얼음으로 변한 들판을 건너 가기로 한 것이다.
조금 겁이 나지만 안내자가 두명이 동반한다니 용기가 생긴다. 그 동네에 사는 안내자, 이브라힘(Ibrahim)과 술탄(Sultan)이오고 등반이 시작되다. 나이가 있는 두 안내자에게는 오랜 산행을 한 사람들의 특유한 신중함과 여유와 지혜로움이 있다. 가파른 산길이 무척 힘들었지만 애써 호흡을 조정하며 빙하(glacier)를 횡단하는 곳까지 오니 크레바스(crevasse)라하여 빙판이 쩍쩍 갈라져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나이가 많은 안내자, 이브라힘의 설명으로 빙판에 바람이 몰고 온 먼지로 까맣게 된 곳은 검은빙하(black glacier)라 하는 것을 알게되고 몇 만년 전에 지나갔을 법한 빙하가 지나간 자리도  다시 한 번 눈여겨 보다. 갈라진 곳의 얼음도 깨서 먹어 보다. 6월의 태양은 뜨거워 모자를 써야하고 탈수현상에 대비하여 갖고 간 2리터의 물이 모자라는데 우리는 빙판을 걷고 있다. 혼돈되는 조화다.
멀리 보이는 쉬스퍼 봉우리(Shisper Peak)의 높이는 7611미터라고 한다. 산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바위도 잘 부스러지고 흙도 밟으면 쉽게 무너져 내린다. 어렵사리 몇개의 골짜기를 오르내리고 나니 그 깊은 산중에 갑자기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호수가에는 자그마한 집이 한 채가 있어 주인에게 우리들의 점심을 부탁하고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속에 누워 쉬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없는 완전한 고요다.
점심후 가파른 산을 고꾸라질듯이 달려서 내려오니 그 곳은 파수계곡(Pasu Valley). 또다른 장관이 펼쳐지고 산 아래에는 넓은 길이 잘 닦여져 있다. 미리 와서 기다리게 했던 택시인 랜드로버를 타고 훈자로 귀가하다. 귀가길에 ‘신성한 바위들’을 보았는데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에집트의 상형문자(hieroglyph) 같아 보인다. 설명이 없으니 얼마나 오래된 바위이며 무슨 뜻의 글씨들인지 모르겠다.
일행은 파키스탄에서의 마지막 밤을 호화스럽게(?) 지내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눈 덮힌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가운데에 지어놓은 현대식 고급 산장호텔에 가서 부페디너(Buffet Dinner)를 하다. 부페홀은 360도가 다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눈 덮힌 산을 바라보며 한껏 부유한 사람들인양 기분을 내며 저녁을 먹다. 일행은 어김없이 각자 갖고 온 제일 좋고 화려한 옷을 꺼내 입고 나오다. 모두들 륙색의 어느 곳에 그런 예쁜 옷을 넣어 왔는지?
아무리 피곤한 하루를 지냈어도 그 다음날 아침에는 음식을 해 먹고 설겆이하고 텐트를 걷어 모든 살림을 트럭에 싣고 8시에 출발이다. 늘 바쁘다. 파키스탄의 장관은 계속되고 2시간 쯤 달리니 산위에서 내려온 물이 얼어 고드름이 되어 길위로 터널을 만들어 놓아 트럭이 지나 가기가 어렵다. 일행은 트럭에서 내리고 트럭만 얼음을 조금씩 깨어가며 조심조심 지나가다. 산에서는 얼음이 내려오고 동시에 태양은 얼음을 녹이고 있어 길은 질펀히 젖어 있다. 아토라빙하(Atora Glacier)를 먼 발치에 보며 계속되는 눈 덮힌 산들, 바위, 산, 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흰구름과 함께 우리는 계속 달린다. 이야말로 완벽한 순간이다.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지역에 있는 마을인 수스트(Sust)에 도착하다. 중국으로 가기위해 밟는 수속절차는 트럭의 번호판을 바꾸는 등 매우 오래 걸려서 초소의 마당에서 트럭의 부엌살림을 꺼내놓고 점심을 만들어 먹다. 어디를 가나 그랬듯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는 가운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먹고 설겆이하곤 그릇들을 하나하나 흔들어 말렸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Sonhae Lee.jpg
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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