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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 중국 북경까지 손선혜의 실크로드 북로 탐사기 (5)

by eknews posted Jul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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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실크로드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가 보고 싶어한다는 맥적산(Maiji Shan)에 있는 막고굴(Mogao Ku Caves)에 가다. 막고는 돈황에서 남동쪽으로 16마일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막고굴로 가는 길은 황량한 사막의 연속이다. 돈황의 서쪽은 타클라마칸사막, 북동쪽은 고비사막이다. 막고굴은 신라의 고승 혜초와 깊은 인연이 있다.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한 ‘왕오천축국전’이 막고굴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구도의 길을 걸으며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것을 써놓은 책인데 한번 읽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9세기에 쓰여진 것을 21세기에 읽어 볼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할 일인가! 그때 그 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가 사방 92cm, 높이 1미터 84cm의 작은, 굴 번호 17에서 쏟아져 나온 3,4만권의 불전과 문서 중에서 혜초스님의 여행기를 발견 했다. 혜초스님은 고국인 신라를 그리워 하며 한편의 오언시를 썼다. 


달밤에 고향길의 하늘을 보니
뜬 구름은 시원스레 흘러 가누나
소식 적어 그 편에 부칠 수도 있으련만
빠른 바람결은 아랑곳도 않누나
내나라 하늘은 먼 북쪽 끝
이곳은 남의 땅 서쪽 모퉁이
무더운 남방엔 기러기도 없으니
뉘라서 숲(신라)을 향해 날아가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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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멀리서 보이는 굴들이 파여져 있는 암벽의 엄청난 크기에 놀라다. 모자를 썼어도 햇볕이 너무 뜨거워 트럭이 주차한 곳에서 굴 근처까지 걸어가기 조차 힘들다. 사진은 전혀 찍을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손지갑과 물병 이외에는 핸드백도 지참할 수 없다. 안내원을 고용하여 설명을 듣기도 하고 주먹만한 작은 녹음기에 설명을 녹음하다. 굴속이 어두워 벽화를 볼 때는 손전등을 사용하다. 벽과 천정에는 천여개의 부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하해같은 불심의 표현으로 천여개의 부처의 얼굴을 그릴 수 있는게 아닐가하고 생각한다. 막고굴은 천의 불상이 있다고 하여 천불동이라고도 한다. 이 굴들은 당시의 정치, 경제상황을 잘 나타내는 불교예술의 보고이다. 돈황하면 벽화, 벽화 하면 돈황이라고 하는것은 돈황의 벽화는 벽화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92개의 굴 전체를 세계의 화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량한 사막위에 꽃핀 돈황의 예술은. 참으로 독특해서 인류문화사에 또 다시 있을것 같지 않다. 첫번째의 굴은 서기 366년에 바위를 파서 만들어 졌으며 불교가 중국에 전파됨에 따라 그후 1000년에 걸쳐 1600미터(1마일) 거리의 암벽에 굴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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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대(618-907)에 굴들이 발굴되었다가 명시대(1368-1644)에는 점점 잊혀졌고. 1900년에야 오래동안 잊혀져 있던 다량의 예술품과 서적들이 승려 왕 유안루에 의해서 우연히 발굴되었다. 장구한 세월동안 승려들에 의해서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석굴의 안쪽에 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발굴된 60,000개의 예술품, 서류, 비단에 그린그림, 수예품, 동으로 만들어진 동상들은 4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들이다. 책들은 불교, 도교, 유교에 관한것들이고 문학, 철학 역사, 외교문서가 중국어,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위그르어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중국 당국은 이런 문화재에 관심이 없었고 결국 승려, 왕 유안루는 영국, 불란서, 독일, 일본의 수집가들에게 문화재를 헐 값에 팔았다. 1949년에 와서야 중국정부는 문화재를 보호해야 함을 비로서 인식하게 되었고 1987년 UNESCO는 이 석굴들을 ‘세계 문화유산’지정하여 보호를 받게 되었다.
몇백년 동안의 세월에도 492개의 석굴에는 평방 45,000 미터의 벽화와 2415개의 진흙으로 만들어진 불상, 나한상, 보살상들이 다양한 색채 그대로 남아 있고 다섯개의 목조 건물이 남아 있다. 대단한 규모이다. 당시대(618-907)에 213개의 석굴이 보건 되었는데 제일 큰 석굴의 크기는 40m의 높이에 30m 사방의 크기이고 제일 작은 석굴은 1m의 높이에 1m 사방의 크기이다. 제일 작은 불상은 10cm이다. 불상들의 모습이 인도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한국에서 보는 불상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제일 오래된 석굴로 5세기 경에 만들어진 굴번호 275를 꼽는다. 벽화의 이야기로 득안림 이야기가 있다. 내용인 즉 악행을 일삼는 강도 500여명의 길을 막기 위해 왕이 군대를 파견하여 강도들과 싸운다. 패배한 강도들을 체포하여 극형에 처한다. 옷을 벗기고 눈알을 도려낸다. 실명한 강도들은 산으로 쫓겨 가고 산속의 여래가 약초를 눈에 발라주니 광명을 되찾는다. 그들은 여래의 설법에 감동하여 불법에 귀의하여 집을 떠난다. 실명했을때 썼던 지팡이를 내 던지자 그 자리에 뿌리가 내려 득안림이 되고 강도들은 입산 수도하며 참선한다는 이야기.

석굴번호 96에는 제일 큰 불상이 있는데 33미터 높이이다. 석굴에 들어가니 어찌나 불상이 큰지 부처의 두 발만 눈앞에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 얼굴은 사각형으로 미인은 아니지만 웅장하여 위압감을 준다. 이것은 측천무후가 권력탈취기념으로 세운것이라고 한다. 여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의 힘을 빌고자 자신이 미륵의 재림이라 칭하고 그 증거로써 세운 것이다. 석굴번호 148에는 옆으로 누어있는 불상이 색 다르다. 석굴번호 329에는 유명한 벽화 ‘부다의 나라’있다. 일명 'Land of Purity'이다. 석굴의 입구에는 굴번호와 만들어진 날자와 왕조의 이름이 있다.

불교의 그림을 전공하신 스님이 돈황에 와서 벽화를 공부하고 싶다던 생각이 나서 뜨거운 해가 노여움을 풀때까지 호텔에서 그림엽서를 써서 띄워 드리다. 그분 같으면 벽화를 보시고 읽을 수 있는 것이 많아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 주실 수 있을 텐데. 저녘에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회음사에 가보니 마침 예불을 드리고 있다. 한국에서 본 절같지 않다. 우선 산속에 있지않고 마을 안에 있는 대궐집 같은 인상이다. 예불을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넉넉하지 않은 삶이나 평화가 있고 고단한 삶이련만 고매한 영혼의 순수함이 있어 보인다. 그들에게서 평화와 순수함을 동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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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책자에서 본 멋져 보이는 백마탑에 예쁜 양산으로 해를 가려주는 인력거를 타고 가다. 완전히 잊혀진 곳 같이 인적도 없고 손질도 전혀 안되어 있어 내버려진 곳 같은 데에 흰 탑이 덜렁 놓여 있다. 옛날 고승이 설법을 하러 돈황에 왔다가 먼길에 힘이 들었는지 타고 온 백마가 죽자 그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돈을 모아 세웠다는 탑이다. 그것이 서기 344년의 일이다.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탑 모양이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은 주로 돈황의 뒷골목을 택하다. 돈황에서 유명하다는 사주시장(재래시장)에서 인력거를 내려 버섯튀김을 사먹다. 식욕이 없는 것이 더위를 먹은것 같아 무공해 채소인 싱싱한 오이 도마도 수박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하기로 하다. 어찌나 더운지 기온이 40도는 될듯 하다. 호텔의 창문으로 보이는 백양나무는 나뭇잎 하나 꼼짝 않고 있어 더 덥게 느껴진다. 
서늘한 기온에 눈을 뜨니 세찬 비바람에 어제는 잎하나 꼼짝않던 백양나무가 오늘 아침에는 뿌리째 뽑힐듯 잎하나 가만히 있지 않고 온 전신을 흔들고 있다.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은 옷을 두툼히 입고 비바람속을 헤치듯 걸어 간다. 어제 산 수박으로 아침을 대신하니 물배가 부르다. 이곳은 비교적 큰 도시이니 환전을 해야 되겠는데 날치기 걱정이 된다. 은행에 가는 대신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할가 기대하며 호텔의 리셉션에 가보다. 반갑게도 어제 막고굴을 구경할때 우리일행을 따라 다니던 일본 청년을 만나다. 어디서 배웠는지 나를 엄마라고 불러서 당황했지만 밉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헤어지기 전에 나와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여간 반가워 하는게 아니다 서로 갈 길이 바쁘니 내가 은행에 갔다오는 길을 에스코트 해주며 얘기하기로 하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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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위의 글은 재영한인 손선혜씨가 7주 동안 파키스탄에서 중국 북경까지 실크로드 북로를 따라 트럭을 타고 직접 다녀온 탐사기를 유로저널 독자들을 위하여 기고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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