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7년 차, 지난 날의 내 모습은 어디에...

by eknews03 posted Oct 05,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어느덧 10, 영국 7년 차가 막 시작되었다.

 

많게는 수십 년 동안 영국에서 사신 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축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벌써 영국 7년 차가 되다니, 지나버린 그 세월의 속도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문득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던 당시의 아주 오래된 이메일들을 찾아서 하나 하나 읽어보게 되었다.

 

내가 이메일을 처음 만든 것은 군 제대를 앞둔 2001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 주고받은 그 수 많은 이메일들을 하나도 안 지우고 다 보관해왔다.

 

그렇게 찾아본 2001년도의 이메일들을 읽다보니, 그 시절의 내 모습, 내 생각, 또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락 모락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 전이다. 연초에는 정작 느끼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2011, 그러니까 2001년 이후로 10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얘기하는 까닭은 2001년이 내 인생에 있어서 참 기억에 남을 만한 해였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2001 4월에 제대를 했다. 그렇게 제대 후 5개월 동안 일산에서 종로로 매일 영어회화 학원도 다니고, 여러 학생들의 과외 지도를 맡아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그 와중에 음악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회화학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미국인 강사의 권유로 2001 9월 미국 보스톤으로 1년 가량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9 14일이 출국일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보스톤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어서, 뉴욕으로 갔다가 비행기를 갈아타고 보스톤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출국일을 불과 며칠 남겨놓고 믿지 못할 뉴스가 들렸다.

 

2001 9 11,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진, 세계 테러 역사 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하필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보려던 그 시기에 터진 것이었다.

 

당연히 출국일은 며칠 더 지연되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미국땅을 밟았으며, 어쩌면 당시 미국에서 지낸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그 시간들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영국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강렬한 동경,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미국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어딘가 더 잘났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 나는 한국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와 획일화를 강요하는 조직에서는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모험을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가진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더라면, 한국에서 내가 보고 듣고 무의식적으로 강요당한 그런 틀에 박힌 삶 말고도 또 다른 형태와 또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이메일들을 읽어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10년 전의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 사회, 세상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랬기에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훨씬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

 

비록 지금은 그 때에 비해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속된 말로 나름대로 그 때보다는 출세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잃어버린 것들도 참 많은 것 같다.

 

분명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음에도, 왜 내 마음은 그 때처럼 자유롭고 유쾌하지 못할까?

 

그 시절의 이메일에 등장하는 소중했던 사람들 가운데 슬프게도 상당수는 더 이상 소식조차 모르는 타인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무심히 연락이 끊어진 수 많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도 전성민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메일에 남아있는, 10년 전 교회에서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작성한 초대글을 보면, 지금은 그런 글을 쓸 자신이 없을 만큼 참 순수하게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내 기타실력이나 내 음악은 지금보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부족했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음악을 향한 내 마음은 그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순수해 보인다.

 

지난 10년 간 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나름대로 더 똑똑해졌다고 착각하지만, 그 사이에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면 결국 나는 지난 10년 간 더 어리석어진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가장 큰 지혜는 결국 순수했던 시절의 동심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 동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와 세상을 알아가면서 동심을 잊어버리며, 그 사회와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몰두하다 보면 결국 동심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잊혀진 동심을, 그렇게 잃어버린 동심을, 그렇게 떠나온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다시 찾고 싶어진다.

 

그런데, 먼 훗날 세월이 더 흐른 뒤, 그 미래의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는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도 또 그렇게 돌아가고픈 순수의 시절처럼 여겨지는 날이 오겠지...

유로저널광고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