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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아닌 대나무에 쓴 글씨 '죽책’

by 편집부 posted May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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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아닌 대나무에 쓴 글씨 '죽책’

지난 2017년 6월 프랑스 경매회사 타장의 경매에 대나무쪽에 글을 새긴 조선시대 죽책(竹冊) 한 점이 나왔다. 

프랑스인 소장자가 제시한 경매 시작 가격은 1,000유로(약 132만 원). 소장자도, 경매회사도 별 값어치가 없는 고미술품이나 생활용품 정도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당시 소장자는 죽책에 “조선시대 혼례 때 사용한 물건”이라는 설명을 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죽책을 판독해 본 결과 1866년 병인양요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던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곧 조선왕실 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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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여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재단은 문화재청과 협의해 “소중한 왕실 문화재이니, 한국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라고 프랑스 정부에 경매 중지를 요청했고 프랑스 정부가 다행히 경매 중지를 지시했다.

재단은 소장자와 값을 협의해 죽책을 16만 유로(약 2억 1,000여만 원)로 조정했으며, 경매 수수료와 운송비 등을 합해 약 2억 5,000만 원에 죽책을 들여왔고 이듬해인 2018년 서울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는데 6면짜리로, 6면을 모두 펼친 너비는 102㎝이고 높이는 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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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군 약탈 문화재 목록에 죽책은 들어 있지 않아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었다. 죽책의 주인공은 고종을 수렴청정한 ‘조대비’로 이름난 효명세자빈(1808~1890)이다. 

그는 1819년(순조 19년) 세자빈에 책봉됐는데 요절한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자 신정왕후로 봉해졌다. 이렇게 조선시대 왕세자와 왕세자빈을 책봉하고 존호(尊號)를 올릴 때 등 격식을 갖춰야 할 때는 종이가 아닌 대나무로 된 죽책에 기록했었다.

<기사 및 사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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