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부는…
도시에 따라 지질의 특성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지역이 바로 프랑스 중부라 할 수 있다. 겨울 스포츠와 경치를 즐기려는 이들은 해마다 알프스를 찾는다. 주목 할 만한 것은 이 지역 건축물들이 자연미와 인공미를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품격 있는 요리와 포도주 그리고 웅장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부르고뉴, 알프스 삼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프랑슈 콩테가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부유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부르고뉴는 베즐레의 로마네스크 걸작품을 비롯하여, 퐁트네와 클뤼니 수도원들을 창조해 낸 중세 신앙의 중심지역이기도 하다.
교통은? 부르고뉴는 파리에서 리옹과 마르세유를 잇는 A6도로를 이용하면 갈 수 있다. 이 도로는 낭시에서 디종까지 연결하는 A31과 교차하며 브장송에서 오는 A 36과도 연결이 된다. 디종과 마콩 등은 TGV로 파리와 제네바, 마르세유 지역과 연결이 된다. 디종에는 이 지역의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는 주요 철도 역이 있으며, 유럽지역을 왕래할 수 있는 국제공항이 있다.
*퐁트네 수도원*
현재 프라스에 현존하는 시토회 수도원 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 바로 이 퐁트네 수도원이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당시 수도사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수도원은 1118년 생 베르나르가 세웠다. 평범한 동시에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초기 고딕양식의 이 건물은 그 장엄함을 통해서 수도회 정신을 잘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수도원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은 시토회 수도사들이 은거 생활을 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이 수도원은 그 옛날 지역 귀족들로부터 재정적인 원조를 받아 날로 번성하였으나 혁명 후 제지 공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수도원의 모습을 다시 복구해야만 했는데 이는 1906년에 이루어졌다.
성의 한 켠에는 ‘비둘기 집’이라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이것은 13세기에 지어진 대규모 원형 비둘기 집이다. 부르고뉴 공작들이 애지중지했던 사냥개들이 하인들에게 보호받던 개 집 옆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 앞으로는 17세기 수도원장의 거소가 있는데 이는 수도원장이 왕실의 임명을 받았을 때 지어진 것이다. 한편 ‘수도원 교회’라 불리는 건물에서는 1140년대 이후부터 장식이나 조각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골조가 튼튼한 건축구조와 은은한 빛을 자아내고 있는 돌, 그리고 건물의 화사한 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충분하다. 건물 한 쪽에서는 기숙사도 볼 수 있다. 수도사들은 온기도 없는 이 넓은 방에서 짚으로 된 요를 깔고 잠을 잤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곳의 지붕은 15세기에 만들어 진 것이다.
또 수도사들이 약으로 쓸 약초를 가꾸었던 약초정원도 있다. 이 밖에도 수도사들과 수도원장이 지역의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하루에 한번씩 모임을 가졌던 장소인 성당 참 사회 집회소, 순례자와 가난한 유랑자들이 수도사들로부터 임시 거처를 제공받던 곳이었던 객사, 12세기의 수도사들이 명상에 잠기기 위해 산책 하곤 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을 잠시 피신했던 곳인 회랑도 찾아 볼 수 있다.
*생 베르나르와 시토회 수도사들
베르나르는 젊은 귀족이었다. 그는 시토 수도회를 112년에 발견하고 이곳에 입회하게 되는데 훗날 바로 이 인물이 수도회를 발전시키게 된다. 시토회 수도사들은 클뤼니 수도원의 지나치게 안락한 삶을 비판하며 절제 있는 생활을 하였다. 바로 베르나르가 원장으로 있을 때 수도원의 가장 엄한 규율이 생겨났고 확립되었다. 비결은 그의 훌륭한 인격과 정치가, 작가,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덕분이었다. 그는 사치스럽고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고행과 엄격한 규율을 계속해서 지켜나갔다. 그런 그가 사망한 지 21년이 지난 1174년 그는 성인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