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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외투의 추억 (11월 3주)

by 유로저널 posted Nov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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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빨간 외투를 입은 중년부인을 보았다.  외투 깃에 검은 장미꽃 모양의 브로우치를 단, 아주 멋있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아, 빨간색 외투!  나이 들어서도 저런 강렬한 아름다움을 품위있게 걸칠 수 있겠구나.  언제였을까, 내가 빨간색 외투를 처음 입어보았던 게?  맞다.  중 3 졸업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산뜻한 빨간 외투를 입게된 나는 그야말로 너무 행복했었다.  갑자기 공주가 된 기분이 바로 그런 거였을까?  중 3 졸업반 무렵에 멀리 외지에 있는 회사와 학교를 찾아 집을 떠나야했는데 가는 곳이 서울 근처의 아주 추운 곳이라서 엄마가 큰 맘먹고 딸을 위해 마련해 준 것이었다.   처음 타보는 밤기차며 처음 입어보는 빨간 외투, 오래 집 떠날 때에 어떤 소지품들을 챙겨야될 지도 잘 몰랐던 나는 공부할 책만 잔뜩 챙겼다가 엄마가 챙겨주는 여러가지 옷가지며 양말들, 속옷들을 받고서야 집 떠날 때는 그런 것들을 챙겨야 되는 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때 어린 내 마음은 드디어 나도 제법 커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돈을 벌어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서 사뭇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런 마음 부푼 나에게 그것도 첫날에 확 찬물을 끼얹은 이가 있었으니…    
고향에서부터 미리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이웃 동네 언니가 다니는 회사를 물어물어 찾아가 근무중인 언니를 면회하려고 회사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빨간 외투를 입은 아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키 큰 여자 경비원이 나를 보면서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 나이를 말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
“얘, 꼬마야 너는 집에 가서 엄마 젖 좀 더 먹고 와야겠다.”
뭣이라?  중 3졸업반 아이에게 저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이야?  얼굴에 내색은 안했지만 , 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또 곧 설이 되면 열일곱살이 되는 아이에게 엄마 젖?  저 경비원 정말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내가 이리봬도 중 3 졸업반인데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저 경비원이 내 고향에서 불리던 내 별명을 또 알았을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찌 나를 ‘꼬마’라 불렀을까?
각설하고, 처음으로 키가 140cm를 넘던 날, 그날이 바로 중 3이 되어 신체검사를 하던 날이었는데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날 보고 빙긋이 웃는 것도 모르고 좋아라고 그자리서 팔짝팔짝 뛰었던 기억이 난다.  내 키가 계속 130대만 고수하고 있었는데 1년동안 2cm가 더 커서 드디어 140이 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150cm를 넘었던 그때에 참, 지금 생각해보면 조그만 게 귀엽다고 해야할 지 웃긴다고 해야할 지…  그런 작은 아이가 키 최소 157cm를 요구하는 회사에 아무런 겁도 없이 소위 고향 언니 빽 하나 믿고 입사하겠다고 나섰으니 누가 봐도 정말 어줍잖은 일이었을 것이다.   작은 키를 그렇다고 확 잡아 늘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향 언니 빽으로도 근무조건에 꼭 필요한 키부터 탈락된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봤다.  그때 내가 빨간 외투를 입어서 더 어리게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른 아침 빨간 외투를 곱게 차려입은 부인을 보고서 내 마음 한켠에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떠오름을 막을 수 없었다.  꼭 그 외투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작은 키때문에 1년을 회사 일만 하면서,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가슴앓이를 하며 보냈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도 더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젊어지고 싶어서 빨간 외투를 선뜻 사게될 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오늘 아침 보았던 그 부인처럼 곱고 우아하게 그러나 내면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더 고운 사람으로 나이들어 갔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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