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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뽑아준 이유(7월 2주)

by 유로저널 posted Jul 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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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뽑아준 이유

한 교우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밥을 한번 같이 먹으려고 집에 불렀더니 자기집에 선물로 들어온 난 한 분과 다른 화분 둘을 나더러 키우라고 가져왔다.  하고많은 사람들중에 생명있는 식물들을 주고 갈 사람으로 나를 뽑아주어서 참 고마운 일이었다.  까닭인즉슨, 내가 식물들을  잘 돌보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기분좋은 칭찬은 따로없었다.  
난의 잎들이 제법 크기는 큰데 한눈에 봐도 영락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긴 그네는 그리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아니다.  그네의 짝지 되시는 분이 “식물도 정성을 들여야 잘 크는데…” 하면서 시들어가는 식물들에 대한 미안함인지 변명인지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지만, 어쨌거나 귀한 난과 다른 두 식물들이 여전히 살아있음이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애들 잘 키울께.  아무개꽃 보듯이 키우면 되겠지.”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식물들이 언제 물이 필요한지를 거의 본능처럼 알아채고 물을 주곤 한다.  햇빛이 잘 드는 공간에 자리를 잡아주고 물을 때맞춰 챙겨주면 잘 자라나는 식물들이 얼마나 기특하고 어여쁜지, 이것은 식물을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한 행복이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언제나 있는 그 자리서 조용히 그러나 항상 조금씩이라도 나날이 새롭게 커나가는 식물을 보고 있노라면 온 우주의 신비가 바로 그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본다.    
어느 목사님께서 쓰신 책을 보니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육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글이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걸 보고 너무 분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람의 존재 자체가 사실은 ‘영혼과 육체’로 지어져 있지 않은가.  둘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귀신 아니면 시체이지 ‘사람’은 아니다.  하여튼 영혼과 육체가 함께 한몸에 깃들어있듯이 식물과 동물 역시 따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음만은 틀림없다.  어느 하나를 저급 혹은 고급 개념으로 지칭함이 아니다.  근데, 생물시간에 배웠던 먹이사슬을 보면 식물군위에 동물군이 있어서 동물들이 더 고차원에 있는 건 아닌지?   사람이 한 입 갖고 이렇게 왔다갔다 말장난(?)을 쳐도 되나?
각설하고, 이런 모든 이유들을 떠나서 내가 정말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동물은 배가 고프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아프면 자기들의 고유 목소리를 내어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대신에, 식물은 아무런 말도 낑낑대는 소리 한 마디도 못내고 단지 온몸으로 그걸 나타낼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먹이사슬에서까지 약자인 게 분명한 식물을, 그러나 약한 데서 사실은 강함을 지니고 있는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보여주는 식물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이런 엄마를 보고 커서일까?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역시 식물을 참 좋아한다.  학교에서 자연시간에 씨를 뿌려 키운 토마토가 어느 정도 자라자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어린 토마토 세그루씩 작은 봉지에 싸서 나누어 주었다.  어떤 아이들은 ‘사양하겠습니다.’하고 그걸 받는 걸 거절하기도 했는데 자신은 식물을 좋아하니까 받아왔다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모전자전’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식물을 사랑하는 이 마음을 나는 바로 내 어머니로부터 받았음이 틀림없다.  한가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친정 엄마는 식물도 동물도 모두 다 잘 키우신다.  어린 강아지 한마리라도 엄마는 자식처럼 정성들여 돌보기 때문이다.  
자기네 어린 아이를 맡겨놓고 가기에 가장 적격일 사람으로 두사람이나 나를 뽑더라며,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것같다며 칭찬인지 청탁인지 모를 말을 흘려보내던 그네.  사실 내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달달 볶아대는지-나는 아이들이 하루 세끼 밥 먹듯이 공부하게 만들었다!-공부하지않고는 결코 못배기게 만드는 마귀할멈(!)인지 몰라서 그럴거라고 했더니 그럼 더 안성맞춤이란다.  무슨 말을 못해요, 못해!  식물 한번 잘 돌본다고 소문나더니 그게 아이들 잘 돌보는 사람으로까지 비쳐지는가 보다.   아이 키우는 책임이 더 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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