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에 살고 있는 올드보이 (2)

by eknews03 posted Feb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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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서 결국 한대수의 노래와 음반을 금지시켰고, 그는 1977년도에 다시 미국으로 쫓겨나듯 돌아가야 했다.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지만, 훗날 시대가 한참 바뀌고 난 뒤인 1990년대 후반에 비로소 그의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게 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최근 몇 년 사이 방송을 통해 접했던 그의 소식은 마냥 평탄한 것만은 아닌 듯 했다.

 

외국인 아내가 알코올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딸을 얻어 아내와 딸을 돌보느라 고생 중이었다.

 

평범한 사람 같았더라면 그 모든 상황들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법도 한데, 그러나 한대수는 그마저도 자신의 운명으로 기꺼이 감수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살 때 자신은 실컷 자유롭게 살았는데, 이제 다른 사람들은 환갑이 되어 자유를 즐길 때 정작 자신은 육아를 책임지며 자유를 즐기지 못하게 되었으니 결국 그 모든 게 공평한 게 아니겠냐 면서 그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짓는 그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가 한국에서 처음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당시 그와 함께 활동했던 가수들 중 달달한 사랑노래나 캠프파이어에서 즐겨 불렸던 노래를 부른 동년배 가수들은 지금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축적해서 그야말로 편안하고 화려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에 비해 그는 신촌의 좁은 오피스텔에서 언제나 그래왔듯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재산을 축적했을 법도 한데, 그러나 왠지 그는 그 또래 성공한 가수들처럼 기름기 흐르는 모습보다는 여전히 그렇게 무언가에 굶주린 듯 하면서도 또 동시에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은 그 자유로운 영혼 그대로가 더욱 어울려 보이는 듯 했다.

 

지난 번 한국 휴가 중 이화여자대학교 앞을 거닐다가 우연히 한대수 선배님을 목격했다. 통기타 치는 사람들은 다 선배고 후배니 나 역시 감히 그를 선배님이라고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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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을 발견하고서 나는 넋이 나간 듯 달려가서 한대수 선생님이시죠?”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유명인들을 우연히 스쳐왔지만, 이렇게 내가 흥분해서 먼저 들이댄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달라고 했는데, 한대수 선배님은 에이, 무슨 사진은...”하면서 살짝 거절하시는 듯 했다.

 

나는 얼른 굳은살이 박힌 왼손가락들을 보여드리면서 나도 기타를 치는 사람이고, 외삼촌이 해바라기 이주호이며, 선생님의 자서전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를 읽었다고 했다.

 

그러자 선배님께서는 그렇지, 나는 여전히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이야.”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그래 사진 함 찍자.”하시면서 흔쾌히 받아주셨다.

 

내가 지금 런던에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전화 번호를 적어주시면서 출국 전에 한 번 연락 하라면서 만나서 런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진짜로 선배님께 전화를 드렸고, 신촌의 소박한 삼겹살집에서 선배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선배님은 시종일관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이런 저런 얘기들 들려주셨고, 또 생전 처음 보는 까마득한 후배인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셨다.

 

대화 도중 나에게 가자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주저 없이 이병우 라고 대답했고, 그랬더니 선배님은 곧바로 이병우 씨에게 전화를 거셔서 이병우 씨의 팬이 여기 와있다면서 이병우 씨와 통화도 시켜주셨다.

 

선배님의 늦둥이 따님의 이름은 양호, 즉 한양호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생 양호하지 못하게 살아온 선배님의 인생과는 달리 그래도 따님만은 양호하게 살길 바라는 바램에서였을까?

 

선배님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양호하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고, 중간에 따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한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히피였던,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한대수 선배님은 그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였다.

 

다음 번에 한국에 나오면 선배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라디오에 출연시켜 주시겠다고 하셨고, 나는 영국에 돌아온 뒤에도 선배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스스로를 ‘Silly old man(어리석은 할배)’라며 껄껄 웃으셨지만, 내가 보기에 선배님은 전혀 어리석지 않았으며, 수십 년 전 장발에 통기타를 치면서 절규하듯 행복의 나라를 갈구했던 청년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을 간직하고 계셨다.

 

선배님은 인터뷰에서 정작 본인은 자유를 구한 적도 없고, 행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만났다, ‘행복의 나라에 살고 있는 올드보이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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