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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또 다른 역할 – Political Art

by eknews posted Nov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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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또 다른 역할 – Political Art
 

고향을 떠나 있다 한들, 조국이 당면하고 있는 참담한 사건들에서 느껴지는 애통함에 좌절하지 않을 수는 없다. 백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순신장군 동상을 둘러싸고 모여 한마음으로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밝힌 촛불은 들라크루아가 그려낸 낭만주의적 전쟁화를 떠올리게 했다. 사실상 이 촛불은 누군가를 향해 겨누는 총구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는데 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왜 우리를 이토록 분노케하는 일들이 일어났을까라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분명 정치적인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자(물론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정치적인 실패를 넘어선 일이라고 보여지지만). 그러나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할 구조적, 법적 장치들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자국의 현실에 국민들은 결국 촛불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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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살펴보면 사실 예술 또한 정치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미술사 속에서 미술사가들 역시 어떠한 측면에서 보자면 대중의 발언기구로서 정치적인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사회적인 소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전적 의미의 정치미술이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가하거나 풍자하는 형태의 미술을 말한다. 지난 미술사에서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란 당시 바스크족의 도시인 게르니카에 가해진 무차별 폭격행위에 충격을 받아 제작된 그림이다. 게르니카의 파괴는 스페인 정부군 사령관이었던 에밀리오 몰라 장군의 요청에 의해 독일공군이 자행하였는데, 스페인 공화파는 바스크족에게 자치권을 부여해주었으므로 게르니카는 자연히 독립공화국의 중심지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이 도시에 대한 유린행위는 당시 런던의 <타임즈>지를 비롯한 전세계의 언론기관으로부터 파시스트의 야만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징표라고 공격받았다. 따라서 피카소의 그림은 이 사건 자체에 부여된 유명세에 힘입어 그때부터 재난에 대한 기록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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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반나치를 주장했던 다다이즘의 대표적 작가 존 하트필드의 포토 몽타주 기법의 <제네바의 교훈: 자본이 사는 곳에서 평화는 살 수 없다>]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바람직하고 또한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면, <게르니카>는 고통상태에 대한 하나의 일반적인 연민이 표현된 작품이라고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제작하기 이전, 그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다다라는 예술가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1918년 선언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선언문에는 “가장 뛰어난 예술이란 시대가 안고 있는 수천가지 문제들을 다루어내는 의식있는 예술이며, 바로 지난 주에 있었던 폭발로 갈갈이 찢겨진 예술이며, 바로 어제 있었던 충돌사고로 잘려나간 사지를 다시 끌어 모으는 예술이어야 한다.”와 같은 매우 급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전위적이고 새로운 미술 운동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게 되었는데, 다다이즘의 실효성에 대해 영국의 유명한 비평가 존 윌레트(John Willett)는 “국가는 스스로 통치자를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한 독일은 히틀러를 선택하였고, 독일의 예술가들이 히틀러에 대하여 처절한 거부의 몸짓을 취했다 하더라도, 과연 그들이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설득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인 것이다”라고 평했다. 자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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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주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된 마오쩌둥 선전화]


정치미술은 고대로부터 존재해왔으나 시기에 따라 그 내용이나 매체가 달랐고, 권력에 충실히 순종하는 예술과 격렬하게 저항하는 미술이 공존했다. 다다이즘과 같이 권력과 정치에 저항하는 미술은 러시아의 스탈린이 등장하며 권력에 의해 공산주의와 제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문맹의 상태에 처해 있을 때, 시각적인 이미지와 구전문학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는 근 천년동안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교훈적인 우상미술로 지배되어 왔다. 따라서 교훈적인 정치미술도 그와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볼 이유가 있었던 것이며, 혁명의 이름으로 예술언어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 저둥이 신성화된 이미지를 이용한 소위 ‘마오쩌둥 양식’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미술만이 유일한 조형언어로 인정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예술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상과 감정, 그리고 태도를 주입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으며, 선전과 선동은 압도적이고 매력적인 예술형식을 취할 때 날카로운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이러한 권력자들의 신념은 대중에게 효과가 있었다. 현대의 우리나라 권력자들도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정권을 비판하는 미술이나 정권의 최고 권력자를 희화화한 작품을 만들어냈던 예술가와 작품이 비공식적으로 사장당한 일도 있었으며,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재에는 <게르니카>와 견줄 수 있을만한 영향력있는 정치적 예술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해 한 비평가는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제작함으로써 대중전달의 흐름 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삽입하여 정치의 성격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예술가의 이미지는, 공공적 인간으로서의 예술가라는 19세기적인 이상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고 비평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메스미디어에 의해 예술의 정치적 발언권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더해 사회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를 수립하게 된 이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시점에서 예술이 도덕적으로 사회를 교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자체가 이상적인 것으로 치부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한 작품이 경제적으로 월등한 가치를 쌓게 되면서부터는 정치적인 이념으로부터 분리되어버리는 시스템이 예술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오지혜의 런던 아트 나우에 보내주신 많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내년부터는 런던의 미술관, 박물관, 상업갤러리의 디렉터들과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Meet the Art People in London”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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