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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화교가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by eknews posted Nov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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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시아, 화교가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동남아시아는 수 백년전부터 역사적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와 중국인 이민자(화교)의 역사가 깊어 화교가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중국계 이민자들을 칭하는 분류를 살펴보면 외국에 살면서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화교’, 현지 국적을 지니고 있지만 중국계 사회에 참여하는 이들을 ‘화인’,  중국계 사회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본인이 중국계인 것을 아는 현지 국적자를 ‘화예’라 일컫는다. 흔히 화예를 제외한 화교와 화인만을 ‘화교’라고 부른다.

화교들은 해외에서도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인 ‘죽망( Bamboo Network, 중국을 상징하는 식물 중 하나인 대나무 군집처럼 동남아 화교들로 이뤄진 커뮤니티)’을 이루면서 살아 오고 있다.

이러한 화교들은 태국(약 940만명), 말레이시아(약 696만명), 인도네시아(약 283만명), 싱가포르(약 255만명), 미얀마 (약 164만명), 필리핀(약 135만명) , 베트남(약 97만명), 캄보디아(약 78만3천명) 등 동남아시아 전역을 비롯해 미국(약 380만명), 캐나다(약 149만명), 일본(약 67만5천명), 프랑스(약 70만명), 영국(약 46만6천명), 이탈리아(약 32만명),  호주(약 86만6천명), 뉴질랜드(약 18만명), 러시아(약 20만명),중남미 지역 (200만명 이상),아프리카(50만명 정도) 등에 넓게 거주하고 있으며, 그 수는 약 4천만 명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구의 화교들은 미국, 호주 등에서 육체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뿌리를 내렸는데, 미국 건설노동자, 설탕제조에 필요한 사탕수수 추수 노동자 등으로 근무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경우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죽망’이 두드러진다.

주간무역이 이를 분석해 정리한 내용을 유로저널이 인용해 보도한다. 

◇ 화교 동화정책 펼친 필리핀
 
필리핀과 중국의 교류는 9세기부터 시작됐다. 중세시대 동남아에서 이슬람 세력이 힘을 떨치던 때에도 필리핀 화교들은 자신들의 힘을 지키고 있었다. 1970년대, 필리핀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화교들에게 강제 동화정책을 펼쳤다. 

타이완 정부가 직접 운영했던 중국인 학교들을 필리핀 정부의 영향 아래에 놓고 그 학교들에서 중국어나 중국의 문화 대신 필리핀의 공용어인 타갈로그어를 가르쳤다. 이로 인해 많은 화교들이 필리핀 문화를 흡수하면서 문화적, 인종적으로 동화돼 현재는 스스로가 중국인이라는 자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필리핀의 중국계 인구는 대부분 필리핀 본토인과의 혼혈인이다. 그러나 지금도 필리핀 유수 기업들은 화교 가문이 세웠거나 중국계 혼혈 집안에서 나왔다. 
 
◇ 화교가 가장 많은 나라 태국
 
‘시노 타이(Sino-Thai)’로 불리는 태국 화교는 태국 인구의 14%를 차지하며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화교의 숫자가 가장 많다. 

20세기 초반에는 태국 정부가 화교의 유입을 장려했지만 후반 들어서는 화교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흐리는 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현재 상당수 시노 타이는 태국어가 모국어이며 태국 사회와 문화에 동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태국에서 역사가 깊은 화교들은 태국의 경제와 정치를 손에 쥐고 있다. 태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 70개 중 96%는 시노 타이가 운영하고 있다. 중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인 로터스도 태국 화교의 것이다.

필리핀과 태국의 화교들은 비교적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현재는 중국계의 흔적이 많이 사라진 편으로, 대부분 중국어를 하지 못하며 그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현지인들과 결혼하는 편이다. 
 
◇ 화교 정체성 지키는 말레이시아
 
인구의 4분의 1이 화교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화교들이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그 어느 국가보다 화교들이 영향력을 많이 발휘하고 강력한 ‘죽망’을 구축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로의 화교 유입은 시기별로 세 단계로 나뉜다. 처음 15세기 말라카왕국 시기에 시작된 중국인 러시는 20세기 들어 남부 중국인들이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따른 전란과 경제난을 피해 대거 몰려온 것으로 이어졌다. 

20세기 말에는 말레이시아 화교들과 결혼한 현지 중국인들의 이민으로 또 다른 중국인 러시가 일어났다.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말레이어가 아닌 중국어를 사용하고 자기들끼리만 결혼하며 아예 말레이시아 사회와 전혀 다른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경제의 주도권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화교 사회와 경제를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차별정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 화교의 나라 싱가포르
 
흔히 ‘화교의 나라’라고 일컫는 곳이다. 한때 말레이시아 연방에 속해 있던 싱가포르 주는 압도적인 화교의 수에 겁이 났던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로부터 분리 독립을 당했다. 

현 싱가포르의 중국계의 비율은 74%로 압도적이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로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싱가포르지만 아직 싱가포르의 중국계 인구는 ‘중국계’로서의 정체성을 지니며 많은 문화를 지켜왔다. 

현재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으로 사라진 많은 유교적 관습과 문화가 싱가포르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르게 싱가포르 화교들은 인교(인도계 이민자들)나 말레이 민족, 그외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 화합하며 살고 있다. 

이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싱가포르인이 될 수 있다’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의 말을 따른 것이다. 

다민족 국가를 천명한 싱가포르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를 국가 공용어로 채택해 1인당 평균 소득이 5만 달러를 넘는 세계적인 도시국가로 성장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urojournal01@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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