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지역 문화 예술 산책 (6)
지중해변 한 민족의 이야기 (4)
창조된 인간이 낳은 최초의 인간, 카인과 아벨
인간의 이야기는 하늘의 은혜로 아담과 이브가 결합하여 아이들을 낳으면서 시작된다. 이 때부터인간이 인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 낳은 두 아들을 카인과 아벨이라고 불렀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인간은 세상을 살아 가면서 착한 일을하기도 하고 악한 일을하기도 한다. 인간의 의지는 하늘의 뜻과 달라서 질투와 시기 그리고 폭력이 퍼지기 시작한다.
카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양치기 목동이였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카인은 농사하는 자였다. 카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기른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 삼아 제사드렸다” 여호와는 아벨과 그의 예물을 더 기분좋게 받았지만 카인과 카인의 예물은 달가와 하지 않았다. 사람의 아들 카인은 심각하게 섭섭함을 느끼고 질투로 노여움을 누르지 못하고 동생을 죽인다.
벵상 에밀
후줴흐 데 포흐(Vincent Émile Feugère des Forts 1825-1889)
아벨의 죽음, 대리석 조각 1866년 오르쎄 박물관
인간 최초의 살인 사건이다.
살인의 이유는 질투로 인한 노여움이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창세기 제4장에 기록된 야훼 하느님과 카인의 대화다. 주인이나 부모의 입장에서 선 자의 존재 확인과 피조물인 인간의 자기 모순과 거짓된 변명과 체념의 인간의 정신 상태의 깊은 곳에 숨겨진 무의식까지 살펴보려는 시도가 태초에 있었다.
이와 같은 대화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상징을 보여준다.
형제간의 살인 사건은 옛날이야기의 형태로 전해 내려온다 기원전 600년 전후 성서에 기록으로 옮겨진다. 기원전 600년의 시대는 바빌로니아,앗시리아, 이집트 등 고대 제국들이 지역의 패권을 다투던 때였다.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이야기는 열강의 힘에 눌린 이스라엘의 바빌로니아 포로시절과 겹쳐진다.
비극적인 형제살인의 원인에는 야훼 하나님의 편애가 있었다. “주 하느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 차별당한 카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질투와 노여움은 폭발하여 희생양으로 선택당한 아벨이 죽음을 당한다. 상대방을 질투나게 한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은 이미 창세 시절부터 알려주었다.
살인자 카인은 살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의식은 없이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며 이 범죄의 근원에는 당신의 편애가 당신의 잘못이 있다고 냉소적으로 반응하였다.
“너는 어디 있느냐”
성서가 기록한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은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에덴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던진 간결한 한 문장이었다. 이제 이 장면에서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던진 질문은 “네 형제 아벨은 어디 있느냐?”였다. 인간들이 지금도 묻는 이 질문은 창세기 시절 하늘이 묻던 질문이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 질문은 앞으로도 모든 인간들이 항상 묻게 될거다.
카인이 여호와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의 낯을 뵙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 방랑하는 자가 될지라” “오늘 당신께서 나를 이 땅에서 몰아내니 나는 당신의 얼굴을 피하여 이 땅에서 방황하리라. 그리고 나를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 나를 죽이리라” 여호와는 카인을 죽이지못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준다. 카인은 에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가문을 이루고 살게 된다.
아벨을 대신한 아들 셋(Seth)
모압 왕
메샤의 승전비(Stele de victoire du roi de Moab,Mesha) 기원 전 9세기,
현무암 115 x 60cm
아담과 이브에게는 죽은 아벨을 대신할 아들 '셋(Seth)'을 얻는다. 셋은 세노스를 낳는다. 아담과 이브의 손자 세노스 때부터 인간은 하느님을 주 여호와 라고 부르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고 성서는 기록하고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승전비에는 기원 전 842년 이스라엘 지배하에 있던 모압의 해방을 위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메샤왕의 공을 기리고 있다. 메샤왕은 이 비석에 여러 도시를 파괴하고 적들을 살상하고 이스라엘 신전들을 털어 귀한 물건들을 자기들의 신 카모쉬에게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투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패배로 기록한 것은 아니고 이방인들인 모압족속들의 소요와 불순종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전을 약탈하는 습관은 이방인들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여리고 성을 공략한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도 폭력적이고 파괴적으로 성을 탈환하고 노략질했었다.
이 숭전비의 기록은 초기 알파벳 형태로 적었다. 남겨진 기록물로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단어가 처음 등장한 기념비다.
훼르낭 꼬흐몽(Fernand Cormon,1845 - 1924)
카인(Caïn)1880년 캔버스 유화 400 x 700 cm) 오르세 박물관
꼬흐몽은 19세기 후반에 밀려오는 새로운 화풍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주역으로 아카데미와 부르쥬와가 요구하는 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혁신과 변화의 시대, 산업혁명의 시대, 새로운 예술, 세로운 정치제도가 동시에 다가와 혼돈의 시절이다.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인간 카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동시대를 그렸다.
구약성서에서 영감을 가져 왔지만 성서적인 특징을 줄이고 당대 유명한 시인이며 불멸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세기들의 전설1859”에서 이야기를 발췌하였다. 그림의 배경은 황량한 들판이다.
황량한 벌판에 드러워진 그림자는 죄인들을 추적하는 진리의 빛이 만들어 낸 소품이다. 강렬한 붓질로 붉게 물든 척박하고 건조한 땅의 색조를 드러내고 있다.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화가는 인물들의 해부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각 인물마다 살아 있는 모델을 화실로 불러 그림을 완성했다.
성서 역사 회화이며 선사시대의 회화라는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그려냈다는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다. 자료나 기록도 없는 시대를 그려내기 위하여 화가는 흩어진 머릿결과 맨발의 무리, 생존 투쟁에 지친 척박한 환경속 인간의 모습, 피가 흐르는 고깃덩어리, 누더기나 동물가죽을 걸친 원시적인 인간의 모습들을 연출해 내었다.
이 작품은 자기 동생을 살인한 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상에서 도망다니는 운명의 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카인은 촛점을 잃은 시선으로, 방향을 잃고 자기들의 식솔을 이끌고 척박한 땅에서 도망치고 있다. 아들들이 지고 있는 가마위에는 한 여인과 피로에 지친 아기들이 있다. 피가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지고 있다. 사냥꾼들이 동행하고 있다. 한 남자는 자기의 여인을 안고 걷는다. 개들은 걸음을 방해하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쫓아낸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 그려져 있다.
성서가 주는 메시지는 최초의 살인자들 카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 바울, 요셉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창조주가 어떻게 인간들과 동행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용서하여 주는 지에 대한 기록이다.
현실의 실정법이나 각 지역의 도덕적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처벌하지 않는다. 구약 성서의 하나님은 항상 준비된 용서와 생명을 살리는 공의로움이 있다. 하지만 자기 백성에 대한 편애가 지나치다는 견해도 있다.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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