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함성

by eknews posted Apr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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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함성




1960년 4월의 하늘은 슬픔을 가득 머금은 잿빛이었고 어쩌다 햇볕이 나와도 온통 피빛이었다. 

9살짜리 소녀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부끄러움과 슬픈 마음이 가득했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불과 5주 전에 소녀는 학교 대표로 읍내에 있는 어느 극장에서 --- 방첩은 우선 나의 방첩부터--- 라는 제목으로 웅변을 하였는데 그 당시 어린 나의 생각으로도 그 내용을 간추리면 자유당이 집권해야만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웅변대회를 빙자한 이승만,(자유당) 선거운동이었던 것 같다)여하튼 이제 언니 오빠들이 데모를 하는 이유가 나쁜 대통령 이승만 물러나라는 것이라니 나는 그 웅변을 하였던 것이  또한  부끄러웠다. 

또한 슬펐던 이유는 꿈도 많고 할일도 많은 학생들이 죽어가고 특히  경찰이 쏘아대었던 총알이 눈에 밖힌채 김 주열이라는  마산의 어느 고등학생 오빠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뭏튼 그해 4월 19일은 피의 날이었던 것같다. 그날 하루에만 123명의 학생들이 마구 쏘아대는 경찰의 총부리 앞에서 죽어 갔다.


그 당시 학생들의 함성은 독재의 총보다 강했다. 민주주의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거리로 나섰던 뜨거웠던 청춘의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 마침내 독재자를 하야시켰었다. 1960년 4월 19일의 사진은 오늘의 촛불시위와 그 어떤 뜨거움을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마침 오는 수요일(유로저널 신문이 나오는 날) 2017년 4월 19일이 1960년 4월 혁명의 57주년이 되는 날이니 잠시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한 혁명사를 짚어보고 넘어가야겠다. 

혹자는 말하기를 4.19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나긴 투쟁과정은 민중의 의식을 깨우고 변화시켜서 역사를 전진시키는데 큰 힘을 제공하였고 역사를 주도하는 일반국민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때 그 4.19정신은 결과적으로 20년이라는 길고긴 회임기간을 거쳐서 1980년 광주시민 민주화 항쟁을 해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4.19혁명의 근본적 원인은 종신집권을 하려고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결과를 조작하고 자유당 완장부대를 만들어서 유권자들을 위협하는 등 온갖 횡포들을 부렸던 독재자 이 승만을 끌어 내리고자 함이었다. 항거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향한 경찰의 무지막지한 제지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이 되는 상황에서 자유당에서는 정치폭력배(깡패)들까지 동원하여 더욱더 많은 사상자들이 생기고 시민들은 극도로 흥분하였다.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이 조금 지나가고 있는데 1961년 5월16일 군사혁명이 발생하였다. 


그 당시 한국지성인들의 여론을 선도하던 월간지 "思想界" 의 발행인 장 준하씨의 말에 의하면 --- 4.19혁명이 입헌정치와 자유를 얻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16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고자하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 


그렇다, 사실상 4.19가 만들어 준 자리에서 민주당은 4.19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국민생활은 점점 황페화 되어가고 사회적 부는 소수자의 수중으로 집중되었다. 그렇게 입성한 군부는 그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지 않고 정부를 장악하고 18년이란 긴세월 장기집권을 하였다(박정희 군사정부의 독재실상은 5월에  다시 논하기로 하자.

이제 지난주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면서 2주전 쯤에 질문해 온 어느 청년이 스스로 "왜?" 그냥 넘어 갈 수 없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바란다. 

왜? 박 근혜와 그 일당들과 배후 조종자들에게 혹독한 처벌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지난주에 맞은(1980년) 새로운 군부가 집권을 시작한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 났으며 1960년을 방불케하는 함성이 또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군부)는 시민폭동을 제지한다는 터무니 없는 말로 수많은 사상자를 다시 내었다. 


다시 제3군부의 그늘을 만들어서 전두환은 숨고 그런대로 시간은 흘러 잠시 문민 정부를 수년간 거쳐서 이번에는 어디 부둣가의 장사치 같은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4대강 사업이니 운운하면서 자연과 순수한 강을 다 훼손시키며 그 공사를 통한 간접적인 돈빼먹는 재미를 보았는지는 몰라도 필경에는 허수아비 박 근혜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앉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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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을 너무 많이 챙겨 먹어서 뇌가 망가졌는지 모르지만 연설문 하나도 자신의 힘으로 작성하지 못하고 어디 사람이 없어서 하잘 것 없는 일개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하잘것 없는 최 순실 같은 아줌마한테 조언을 구하고 교정을 맡기고 심지어 국정에 관계되는 업무마저 그녀의 조언을 구하고 했단 말인가?


국가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 같은 우리들의 자녀 300여명을 물속에 수장시키고도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자기는 할일을 다했고 아무 잘못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며 탄핵이 되고 나서도 반성의 모습은 전여 보이지 않고 있는 그녀와 그 주변 인물들, 소위 말하는 전 고위공직자들을 누가 있어 처단할 것인가! 

사면? 용서? 아니다, 세월호의 사고 원인규명과 박 무능이의 선거 당시 불법여부를 확실히 밝힌 다음에야 그들을 평생구속 시키던 사면을 하던 그때가서 논할 일이다. 만일 떠도는 말대로 세월호 사건의 배후에 살인마적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면 박 근혜는 물론이요 배후 조종자 등 관계자들은 그 죄값은 목숨으로 갚아야 될 것이다. 


그래야만 다시는 그런 악습이 우리 정치계에 재도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온 국민이 제각기 일상의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치밀한 재조사와 면밀한 심증을 진단하여 과감한 징벌을 해야만 온국민이 억울한 죽음을 맞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시민항쟁이나 시민 또는 학생혁명, 제 2, 제3, 4, 5, 의 4.19, 5.18 ,6월항쟁 등이 없어도 되는 공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60여년이란 세월 동안 우린 너무 많은 피를 흘리며 오늘까지 왔다. 

57년전 저기 젊은이들의 정의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 저 5.18 민주화의 광장에서 쓰러져간 저 거룩한 주검들의 함성을 잊지 말자. 


이제 다시 촛불을 들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 국가를 만들라고 대선 후보들에게 말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린 또다시 더 강한 촛불을 들고 더욱 큰 정의로운 함성을 지르며  광장으로 나가야만 된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모두 행복해 질 때까지-----.





 김레이첼 증명사진.jpg 

1072-김레이첼 사진 3.jpg


유로저널 탈럼니스트

목사

전 한국 청소년 교육연합회 대표

London College of Technical, Lecturer(Social Work)

Society of Social Worker's East London(Chai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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