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y eknews posted Apr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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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Chug, chug,chug, chug 런던을 출발하여 북쪽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앉아서 밖을 내어다보니 차창을 통해 펼쳐지는 중부 잉글랜드의 4월의 풍경은 비할데 없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노오란 유채화는 월요일 아침에 줄지어 서있는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의 어린이들 처럼 나란히 넓게 정렬되어 피어 있고 그 주변을 사각으로 감싸고 있는 상급생 선도부 언니 형아들 같은 푸름이들은(중간 키의 푸르른 나무들) 그 노오란 어린이들을 보호라도 하듯이 바로 서서 기차에  타고 지나가는 낯선 승객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듯 씩씩하다. 


기차가 선로를 타고 미끄러지듯 달리니 노란 운동장은 멀어져 가고 이제 아지랭이를 잡으려고 올라온 초록이들의(연한 초록 빛을 띈 잔디 밭) 놀이터가 나타난다. 초록이들은 그 연한 입술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무언가 말을 걸어 온다. 우리가 지난 겨울 얼마나 머-언-길을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지 아느냐고-------. 노랑이와 푸름이 그리고 초록이들과의 섭섭한 이별을 남긴채 나를 싣고 가는  기차는 또다시 철길을 따라 미끄러져 다달은 곳은 William Webb Ellis가 공을 차고 놀던 Rugby 의 본고장에 잠시 멈췄다. 이곳의 지명도 역시 Rugby라고 부르며 이 고장 사람들은 450년이 훨씬 넘은 유서 깊은 럭비의 고장임을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산다. 몇몇의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교환한 후 기차는 다시 달려간다. 얼마동안의 공장지역(프로판 가스통들이 수북히 쌓여 있고 어둑침침한...) 을 지나오니 다시 나타난 초록이들이 우리를 맞는다. 


봄이 오는 까닭.jpg


유유히 흐르는 실개천 옆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과 양떼, 그들과 함께한 몇몇의 말들 너무나 부드럽고 맛있는 샐러드를 찾아온 봄맛을 음미하며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 종종 걸음으로 달리는 듯, 나는 듯 걸어다니며 쬐끄만 고기(벌레)라도 찾아 먹으려고 로빈(Robin)의  가족들이(물새의 종류) 이리 저리 섞여 다니고 있고 가끔씩 눈에 띄는 하이얀 빛의 갈매기들도 보인다. 저놈들은 그 넓고 넓은 바닷가를 두고 무엇이 아쉬워서 초원으로 왔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의 현장인 바닷가를 조금 벗어나서 어디 다른 곳을 찾아 소풍이라도 가보자는 가족회의라도 있었나 보다.  자! 이쯤되면 4월의 산야가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들인지 도심지 아파트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왜? 어느시인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으며 오늘 달리는 기차의 차창가에 앉아서 창밖의 봄풍경을 바라보며 한없이 아름답고 새생명들의 소생함을 희망에 찬 모습으로 느끼면서도 왜? 나의 한쪽 가슴을 파고드는 아스라한 비애를 느낄 수 밖에 없을까?      


 영국의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에 의하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한다. 그의 서사시 "황무지(The Waste Land)" 의 제1부 ---죽은자의 매장--- 첫줄에서 엘리엇은 그렇게 표현했다. 황무지는 생명이 깃들 수도, 생명이 서식할 수도 없는 불모의 땅이다.  필자가 본문 서두에서 기록한 모습으로는 4월은 생명이 소생하며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계절인데  왜? 시인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감각을 잃어버리기라도 했을까?  또한, 오늘, 나는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진 초원과 꽃 그리고 새들을 보면서 싱그러운 봄바람을 느끼며 줄거워야 될 터인데 가슴속으로부터 한가닥 슬픔이 목줄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을 가져야 될까?  


시인(토마스 엘리엇)이 황무지를 쓸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세계 제 1 차대전(1914 - 1918)으로 9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간 20세기 서구문명의  현주소가 바로 황무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참혹한 전쟁을 체험한 서구인들의 삶속에서 도저히 바로서서 살아낼 용기는 없고 차라리 죽음만이 그 당시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처럼 되어버린 절망적 상황이었다. 아울러 시인(엘리엇)이 더더욱 절망을 느낀 것은 그러한 상태에서 절망이라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극도의 이기심과 차갑게 얼어붙은 황폐한 정신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하며 삶의 의미를 상실한 정신적인 황무지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하여 이 아름다운 생명이 소생하는 달임에도 불과하고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그시절의 정부와 시인 자신으로부터의 절망을 느꼈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


또한 오늘, 내가 아니 우리 한민족들이 산과 들에 곱게 피어 있는 꽃놀이에만 우리의 시선을 멈출 수 없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저 푸른 초원에 우리들의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없음은 우리 한반도에 근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민족엑게도 4월은 참으로 잔인한 황폐감을 가져다 주는 달임이 틀림 없다. 그렇기에 마냥 봄의 광경만을 즐길 수는 없다  이렇게 예쁜 몸짓으로 새생명들이 소생하는 희망의 달 4월인데도 말이다. 또 어느 다른 시인은 봄이 오는 까닭을 "눈물 없는 자들의 영혼을 위해서" 봄이라는 친구가(이 부분은 본 필자의 표현임)  눈을 뜨고 채색을 하며 이 세상으로 밀려온다고 말하고 있다.  "눈물이 없는 자" 그런 사람은 정신적 황폐현상이 심하고 가슴은 메말라서 삭막한 자들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면 그것은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그러한 현상을 가르켜서 "The Waste Land" (황무지)라고 정리해 보았다.  그것이 저 시대, 그 시대 만이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4월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보아 왔다 멀리는 1912년 4월 15일 영국의 타이타닉호(RMS Titanic)의  침몰로 1,513명이 그 생명을 잃었고 가까이 우리 곁에서는 1961년 4월 19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우리들의 아들 딸들이 독재라는 배의 선장이 쏘아대는 총칼 앞에 숨져 갔으며 2010년 3월 26일에 침몰한 천안함에서 순직한 젊은 병사들 46명의 영결식이 그해 4월 29일에 있었으며 불과 3년전 또다른 그 독재자의 딸의 시대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침몰로 인하여 꽃보다 아름답고 저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푸르른 초원보다 더욱 빛나는 우리들의 형제, 자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 키워오던 자식들 304명이 차가운 물속에 생매장 된 사건, 아직 그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원통함을 생각하면 나같이 둔감한 사람마저도 아직도 목이 메인다. 거기에다가  지난번에 열린 미국과 중국의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놓고 거론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 통칭하여 우리 한반도 식구들은 배재된 채로 남의나라 원수들끼리 논의를 하는 비참한 현실을 맞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자국의 보호를 위하여 강대국? 끼리 나를 놓고 서로 찢어 먹으려고 졔비뽑기 아니면 나누기를 하고 있는 현장에 나의 조국은 아예 참석은 커녕 그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한없는 빈족적 비애와 비통함을 생산한다. 


이 어찌 1950년대의 신탁통치안건을 돌이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 소위 강대국들의 눈에는 아직도 우리는 자주할 수 없는 나라, 민족으로 보는가?  정부의 주역들은 무얼하고 있는가!  내 한 목숨 던질 각오가 없는 사람은 정계에 발들여 놓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개인에게 있어서 삶이란 파란만장하고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때가되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내며 그리 되지 않을 때 삶은 잔인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국가도 같은 입장이 아닐까!  그러기에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국민의 대표자들은 내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잔인한 운명이 되지 않도록 생명을 내어 놓고 그 직임을 수행해야 될텐데.... 아직 필자의 눈에는 그런사람 없으니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이로구나.  




김레이첼 증명사진.jpg


1072-김레이첼 사진 3.jpg


유로저널 탈럼니스트

목사

전 한국 청소년 교육연합회 대표

London College of Technical, Lecturer(Social Work)

Society of Social Worker's East London(Chai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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