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심원의 사회칼럼

정의가 상식이 되는 세상

by eknews posted May 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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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상식이 되는 세상



정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하버드 대학에서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았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강연을 듣거나 그의 저서를 읽지 않아도 된다. 정의의 목적인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은 어떤 제도만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본질을 상실한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론이며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정의에 대한 장치를 계속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영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지만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잔디밭에 입구에 반드시 작은 안내판이 있게 된다. ‘들어가지 마시오.’ 들어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고문을 세워두는 것이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시대는 오히려 정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심지어는 정권을 잡은 여권의 당명에 정의라는 이름을 넣기까지 했다. 오히려 정의라는 말이 없을지라도 사람들은 오히려 정의가 상식이 되는 삶을 살았다. 비록 그들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주장을 모른다 할지라도 정의로운 삶을 살아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1980년 27세에 최연소의 나이데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된다. 그의 나이 29세에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라는 책을 펴낸다.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정의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샌델 교수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그 후 30년간을 하버드대학에서 그의 정의 강의는 최고의 명강의로 인정받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근거로 대학에서 논술 문제의 제시문으로 인용되어 왔으며, 수능에서도 출제되는 정의에 대한 고전 철학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어떻게 보면 존 롤스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후배이다. 샌델 교수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교과서로 배운 사람이었다. 그럴지라도 철학과 학문의 세계는 후배에 의해 역사 뒤안길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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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수의 정의에 대한 주장을 알아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정의의 규정은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정의의 규정은 달라져왔다. 존 롤스의 정의론을 배웠던 사람들의 답안과 샌델 교수의 정의를 배운 사람은 답안은 다를 것이다. 


시대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정의의 설명이 달라지는 것은 인간 세상에 필요한 존재론적인 사실을 철학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에 한계점이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은 절대적일 수 없다. 역사일지라도 그러하다. 누구에 의해서 역사가 기록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사가의 관점에 의해 부각되는 부분이 있는 가하면, 감추어지는 부분이 있거나 왜곡되는 부분이 있게 된다. 최근 정권은 전정권이 만들어놓은 국정 교과서 폐지를 명령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 정의를 부르짖고 정의가 상식처럼 실행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세상은 결과 위주의 구조이다. 과정이 부정적이든 더럽고 냄새가 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잘못된 과정들은 무마된다. 과정은 선할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이 현대 사회의 구조이다. 그래서 과정을 속여서라도 좋은 결과물을 세상에 내 놓으려 한다.


정의는 과정까지라도 선해야 한다. 영국 중부 지역의 코벤트리(Coventry)의 상징은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 이다.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를 그녀의 가녀린 삶을 통하여 증명했다. 정의는 철학적 주장이나 정치적 행사가 아니다. 사람 자체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음이 정의의 시작이다.


중세 시대 당시 코벤트리의 영주인 레오프릭(Leofric)은 백성들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영주였다. 고디바는 그 악독 영주의 젊고 아리따운 부인이었다. 백성들에게 과하게 부과되는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남편하게 간청 하게 된다. 영주는 부인의 말을 들어 줄만큼 백성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백성들을 희생시켜 착복을 해야 한다는 정치적 야망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오늘날의 백성들을 생각지 않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주나 지도자들의 생각과 같을 것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최고 권력자와 그 권력에 빌붙거나, 권력을 등에 업고 착취했던 수백억원이라는 것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고디바 역시 끊임없이 세금 감면을 요청했을 때 그의 남편은 술에 취해 부인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한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말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면 세금 감면을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고디바는 다음날 일찍 영주가 말한 대로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백말을 타고 코벤트리 시내를 한 바퀴 돈다. 정의를 실현하는 고디바를 위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백성들은 창문과 커튼을 닫았다. 모든 백성들이 밖을 대다 보지 않았을 때 톰(Tom)이라는 재단사는 궁금하여 살며시 밖을 대다 보다 시중이 쏜 화살에 맞아 눈이 멀게 된다. 그래서 타인을 엿보는 관음증을 피핑톰(Peeping Tom)이라는 말의 어근이 된다. 


고디바의 정의로운 행동이 훗날에는 관습과 상식을 깨트리는 행동을 고디바이즘(Godivaism)이라는 신종 용어로 탄생한다. 지금도 코벤트리 중앙 중앙엔 레이디 고디바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녀의 매혹적인 나체의 몸매로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의 모습을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정의가 상식이 되기 위해 자존심과 명예를 벗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존중한 결과였다. 정의가 상식이 되는 것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차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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