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51) - 바람의 기억

by 편집부 posted Feb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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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의 연가

이윽고 경철의 도톰한 손이 슬금슬금 브래지어를 헤집고 들어왔다. 영미는 가슴을 움츠리며, 파고드는 손을 찰싹 때려주었다. 그게 오히려 자극이 된 것일까, 경철의 동작이 거칠고 기민해졌다. 곧 더운 입김이 영미의 목덜미로 쏟아졌다. 벌린 입술이 다문 입술을 찾아내 기어이 덮쳤다. 영미는 몇 번 도리질을 치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문 입을 살며시 열었다. 혀가 안으로 쑤욱 들어왔다. 짜릿했다. 혀가 서로 엉키기 시작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입술이 겹쳐있는 사이에도 경철의 손은 재게 아래 위를 오갔다. 영미의 옷이 벗겨졌다. 경철도 곧 알몸이 되었다. 경철의 입술이 이번에는 영미의 가슴으로 왔다. 영미는 경철의 머리를 두 팔로 감쌌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 모양새로 눈을 감고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일로 하는 정사와 사랑으로 하는 정사의 느낌과 강도가 어찌 이리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영미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호텔에서 손님을 모실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 몸은 손님에게 맡기되 마음은 신속하게 몸을 빠져나와 침대 가장자리나 소파로 가 정사의 진행 상황을 체크해야 하는 것이다. 손님이 지금 뭘 원하는지, 서비스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지, 체위를 바꿔야 할 시점인지, 혹시 손님이 이른 시간에 절정에 다다른 건 아닌지를 파악해서 거기에 알맞은 처방을 몸에게 통보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은 늘 그렇게 초긴장 상태로 손님의 동작과 컨디션을 지켜봐야 해서, 애초부터 파트너와 더불어 즐거움을 나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경철과의 정사는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시작부터 몸과 마음이 똘똘 뭉쳐 오직 경철에게 집중했다.   
영미는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노란 민들레꽃이 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러는 눈 속에 피는 복수초 같기도 했다. 경철의 입술과 손길에 의해 자신의 몸이 향기가 분분한 꽃밭으로 변해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말로는 이루 표현키 어려운 희열에 감격했다. 경철은 시나브로 벌이나 나비처럼 날아와 꽃밭을 누볐다. 
유두를 떠난 경철의 입술이 배꼽을 거쳐 아래로 내려갔다. 입술의 다음 목적지를 예상한 영미가 몸을 뒤틀면서 다리를 오므렸지만 경철의 머리는 거침없이 사타구니를 파고 들었다. 영미는 자기도 모르게 아잉, 아잉, 앓는 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쳤다. 
영미의 뇌리에 눈에 익은 얼굴이 스쳐갔다. 저게 누구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입안에서 ‘샤넬’이라는 이름이 맴돌았다. 호스트바에서 만나 한 때 미래를 약속했었던 남자. 그도 첫날에 이런 서비스를 감행했었지. 영미는 어이가 없었다. 경철이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위를 애무하는 이 숨이 막히는 자리에 샤넬은 어쩌자고 나타나 판을 깨려는 것일까. 영미는 고개를 흔들어 샤넬을 털어냈다. 
샤넬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풍경이 채워졌다. 저만치 옹달샘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의 배롱나무 아래 옹달샘에는 뿔이 근사한 수사슴 한 마리가 물을 맛나게 핥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사슴이 고개를 들고 이편을 경계했다.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사슴의 뿔이 안테나가 접히는 식으로 사라지면서 사슴은 곧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게 경철의 모습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의 뒤편으로 드넓은 초원이 보였다. 투명한 햇살이 진초록의 초원 위로 축복처럼 쏟아졌다. 풀밭 곳곳에는 꽃봉오리를 활짝 터트린 장미가 흐드러졌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진한 장미향이 날아와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꽃이 가장 풍성하게 피어 있는 곳 한 가운데에 나신으로 누워있는 여자가 있었다. 저 여자가 대낮에 미쳤나 하고 눈에 힘을 주는 순간 영미는 그게 자신의 모습이란 걸 알아차리고는 소스라쳤다.  
경철은 마치 갈증이 난 도사견이 물을 먹는 모양새로 영미의 하체를 탐했다. 영미는 이제 자신의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에 헬륨 가스 같은 것이 채워져서 자신의 몸이 공중에 풍선처럼 날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몸이 둥둥 뜨는 느낌에 약간 어지러웠다. 뭐든 붙잡고 버티지 않으면 둥실 떠올라 우주의 구석 어딘가로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바심이 났다. 서둘러 경철의 몸을 더듬었다. 다행히 붙잡고 버티기 좋은 단단한 부위가 손에 잡혔다. 영미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아 힘껏 당겨서 눈앞으로 끌어올렸다. 내친김에 입에 덥석 물었다. 그제야 적이 안심이 되었다.  
열기가 고조되어 입이 자신도 모르게 반쯤 열렸을 때, 마침내 경철의 단단한 그것이 하체로 부드럽게 밀고 들어왔다. 세상의 모든 환희와 기쁨이 그곳으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와 발을 구르며 만세를 불렀다. 영미는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숨이 막혔다. 경철의 몸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퍽퍽 소리를 내지르며 지나갔다. 영미의 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이윽고 경철이 결승선에 다다른 경마기수 같은 포즈로 엉덩이를 연신 들썩이며 외쳤다. 나, 싼다이! 그러자 영미가 경철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소리쳤다.  
“안 돼, 오빠! 쫌만 참아!”
*
우림각 별실은 본채 뒤란에 있었다. 별실로 가는 쪽문의 문설주가 담장에 면한 데다, 문 옆으로는 가지가 무성한 육송 두 그루가 바짝 가리고 있는 형태여서 먼눈으로 보면 거기에 문이 있다는 걸 알기 어려운 구조였다. 
정아는 쪽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손을 뒤로 뻗어 꼬리뼈를 만져보았다. 오는 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제대로 찧은 후유증이 아직도 쌔하니 남아있었다. 정아는 돌아서서 왔던 길을 바라보았다. 우림각 본채에서 별실로 이어진 오솔길에는 방금 자기가 찍고 온 하이힐 자국만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그것은 네 발 달린 짐승의 발자국처럼 깊고 촘촘했다. 바람이 사선으로 휘몰아쳤다. 지붕과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눈송이가 놀란 나비 떼처럼 일어났다. 바람은 담장을 따라 휘몰아쳤다가 이내 건물의 벽을 타고 처마로 솟았다. 후두둑, 고드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아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가 슬며시 처마를 쳐다보았다. 고드름을 놓친 고와 골은 마치 틀니가 필요한 노인의 치열처럼 불편해 보였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아래로 쏟아져 내려 자신의 머리를 덮칠 것만 같았다. 저 날카로운 것들이 혹시 정수리로 떨어진다면 어찌될까. 아마도 가차 없이 두개골을 파고 들겠지. 첫 충격은 크겠지만 그것만 지나면 별 고통은 없을 거야. 약간 아릿한 느낌이 들 무렵이면 박힌 고드름이 천천히 녹기 시작할 테니 정신은 오히려 맑아질지도 몰라. 고드름의 투명한 빛깔처럼 말이야. 아, 차라리 지금 가장 단단하고 날카로운 고드름이 정확히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으면 좋겠어. 정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아까 내실에서 장 마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건 커다란 행운이야. 아무나 회장님을 모시지 못해. 이건 일종의 성은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네 사정 잘 말씀드렸으니까 가서 열성으로 모셔라.” 
정아는 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호흡을 한 다음 손을 뻗어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띠, 소리와 함께 쪽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정아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 덮인 정원이 펼쳐졌고, 저편에 아담한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에 켜진 백열등 때문일까, 집 전체에 온기가 가득해 보였다. 정아는 눈을 뒤집어 쓴 작달막한 나무들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위로는 아치 형식의 작은 다리가 있었다. 정랑은 그 다리 앞에 설치되어 있었다. 
정랑은 직사각형의 현무암을 구멍을 뚫어 양편에 세우고 거기에 서까래 굵기의 나무를 서너 개쯤 한일자로 걸쳐서 만든 이 섬 특유의 대문으로, 질러 놓은 나무의 형태를 보고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걸쳐진 나무의 형태가 병장이나 상병의 계급장 모양으로 나란히 걸려있으면 집에 사람이 없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이고, 하나나 두 개가 한쪽으로 치우쳐 내려져 있으면 주인이 멀리 나가지 않고 집 근처에 있다는 신호였다. 지금처럼 한쪽으로 세 개의 나무가 다 내려져 있는 경우는 집안에 사람이 있으니 누구든 들어와도 무방하다는 표시였다.  
정아는 나무가 내려진 쪽 현무암을 한 손으로 짚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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