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예술칼럼

예술이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자유로운 것이다. 플럭서스 3

by 편집부 posted Feb 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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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자유로운 것이다.
플럭서스3

1962년 9월1일부터 23일까지 마키우나스는 요셉 보이스와 볼프 포스텔의 도움을 받아 비스바덴에서 플럭서스 페스티벌(festum fluxorum)을 개최한다. 여기에는 히긴스, 브레히트, 백남준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때 마키우나스는 자신이 작성한 선언문을 관객들에게 뿌리는 것으로 막을 열었는데, 그것은 “부르조와 세계의 구역질나고 전문가적이고 상업적인 문화를 정화하라”로 시작하여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가들이 통일된 전선과 행동으로 가도록 그 심장부에 불을 당겨라”로 맺고 있다. 
그러나, 이 선언문의 정치적 성격때문에 참여한 다른 작가들은 다소 당황해 하기도 했다. 
필립 코너가 작곡한 ‘피아노 활동’도 또한 충격적이었다. 이 곡의 악보는 ‘뽑거나 두드리라’ ‘물건을 떨어뜨리라’ ‘음향판을 때리라’ 등의 명령어로 이루어졌다. 
Philip Corner 의 'Activities' 한 장면2.jpg Philip Corner 의 'Activities' 한 장면.jpg 
Philip Corner 의 'Activities' 한 장면

연주가 끝났을 때 피아노는 완전히 부서졌다. 그것은 피아노로 상징되는 기존의 귀족적이고 엄숙한 예술에 대한 통렬한 풍자였다. 그러나 서독의 언론은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고 보도하면서 비난을 했다. 
플럭서스의 작업은 이렇게 ‘개념미술’에 ‘해프닝’이 결합된 형태를 띄고 있다. 헨리 플린트는 플럭서스 예술을 “개념예술”로 규정한 바 있다. 여기에, “직선을 하나 그리고 그것을 따라 가라”라는 라몬테 영의 작품을 백남준이 연주한 것을 보자면, 악보와 연주, 말하자면 음악적 요소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악보가 문장으로 되어 있기에, 퍼포먼스에 문학적 성격까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백남준이 머리로 종이 위에 그린 선을 생각해보면 회화적 요소까지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관객 앞에서 신체를 이용해 연기를 한 것은 명백히 연극적 요소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플럭서스는 고급예술은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 속하는 레디메이드마저 흡수해 다시 해체시켜 버린다. 플럭서스의 작품은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이라는 글자 그대로 흐름으로써 존재한다.
플럭서스 그룹은 틀에 얽매인 채 일부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기존 예술에 반기를 들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미학보다는 소통을 중시한다. 그래서 예술과 생활의 이분법적 대립을 해소하려 한다. 
이들은 미술·음악·연극·무용 등 기존 예술의 장르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직접적으로 관객과 교류할 수 있는 복합 매체적 공연과 전위적 행위예술을 시도해왔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적 삶과 더욱 밀착되어 없어지면 아쉬워지는 그런 것이 예술이 되었다.  
예술이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자유로운 것이며 삶의 일부다. 플럭서스의 모토는  이런 예술과 삶의 조화였다. 
당시 예술은 고도로 교육을 받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아방가르드가 확산되면서 대중은 더 이상 새로운 예술 작품에 관심조차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플럭서스는 인간이 만든 예술이 인간과 분리되는 기형적인 상황에 대해서 반발했고, 예술의 인간으로의 회복 운동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삶이 곧 예술’이자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선포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적인 모습에 예술이라는 말을 붙였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유리벽 안에서 잠을 자는 모습, 그리고 죽은 토끼를 들고 3시간을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 등을 보여줬다. 
 
요셉 보이스,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1965.jpg
요셉 보이스,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1965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변기를 갤러리에 전시했으며, 백남준은 바이올린을 줄에 묶어 애완견처럼 끌고 다녔다.
 
백남준, 땅에 끌리는 바이올린,1975.jpg
백남준, 땅에 끌리는 바이올린,1975

그리고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우연’과 ‘공’(空, nothing), 즉 ‘침묵’으로 작곡가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주변에 들리는 소리를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나의 가장 훌륭한 작품, 최소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침묵의 ‘4분 33초’이다. 음악은 작곡가의 느낌과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존 케이지는 이 키워드에 관심을 보인 작곡가 얼 브라운(Earle Brown), 크리스찬 월프, 루 해리슨(Lou Harrison), 모튼 펠드먼(Morton Feldman),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David Tudor) 등과 친분을 쌓았으며, 이후 그들과 공동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이들이 바로 ‘뉴욕 스쿨’이다. 
그런데, 이 플럭서스 운동을 지금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Cover of the catalogue for Nam June Paik’s Beuys Voice shown at documenta 8,1987.jpg
Cover of the catalogue for Nam June Paik’s Beuys Voice shown at documenta 8,1987

1960년대초 “삶과 예술의 조화”를 내걸고 현존하는 모든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진정 자유로운 예술을 구현하고자 했던 이 한 무리의 악동같은 예술가들을 현재 우리가 다시 거론하는 것은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미래의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가올 예술의 전망에 대한 또 다른 밑그림으로서 플럭서스는 당대의 일시적인 양식이라기보다는 지금도 제 2, 제 3세대의 작가들로 이어져 가고 있는 이름 그대로 ‘끊임없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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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an Knížák. Flux Snakes. 1969. Designed and assembled by George Maciunas

그래서 다양한 행위예술, 공연, 페스티벌, 각종 창작물과 그 다큐멘트, 그리고 오브제, 악보, 스케치, 설치, 출판물 등을 통하여, 20세기 중·후반에 걸쳐 가장 독특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운동 중 하나인 플럭서스의 진면모를 이해하고, 보다 폭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예술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플럭서스의 예술가들은 과격한 파괴를 원하지 않았다. 기존체계에 대한 거부감을 수단으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창조하려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예술과 삶의 거리를 좁히고 관객을 수용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 포함시키고자 했다.
이런 플럭서스 본연의 정신을 생각하면서, 예술가든 예술가가 아니든, 우리 모두 개개인의 가능성들을 그들처럼 다양하고 유동적인 채로 열어 놓고 사는 것이, 지금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하나의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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