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와인칼럼

[ 임주희의 살롱 뒤 뱅 ] #4 바보 도멘 피에르 베네티에

by 편집부 posted Apr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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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주희의 살롱 뒤 뱅 ] #4
바보 도멘 피에르 베네티에


한국의 한 소믈리에로부터 북부론의 “피에르 베네티에Pierre Bénetière”라는 도멘의 와인을 한 병 사서 보내달라는 지령을 받았다. 낯선 도멘이었지만 흔쾌히 알았다고 하고는 검색에 들어갔는데 어라, 정보가 거의 없다. 그때부터 6개월에 걸친 나의 피에르 베네티에 찾기가 시작되었다.
공식 웹사이트도 없고 인터넷 와인 쇼핑몰 및 오프라인 매장도 늘 품절이다.
뭐 하는 도멘인가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오래된 기사가 몇 개 있어 유령 도멘은 아닌 듯한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전화번호로 전화해보니 없는 번호란다. 미심쩍은 이메일 주소를 발견하고 혹시나 해서 방문이 가능한지 메일을 보내봤다. 며칠을 기다려도 답변이 없어 실망하던 차에 “그래, 오세요.”라는 짧은 답장이 왔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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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도멘의 파란 대문과 우체통 >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산 넘고 물 건너 북부론 코트 로띠 지역의 생 클레흐 레 호쉬라는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 이르니 이런 곳에 도무지 와이너리 같은 게 있을 것 같지 않다. 외벽 광고물이 부착되어있는 건물 주위를 한참 돌다가 혹시나 해 파란 대문 집 앞 우체통을 보니 작게 피에르 베네티에라고 쓰여 있다. 와, 프랑스 와이너리들 간판 찾기 힘든 건 유명한데 이건 정말 너무했다. 살짝 열린 대문을 밀고 들어가 쭈뼛쭈뼛 마당에 서 있었더니 인기척을 듣고 우직한 인상의 아저씨가 한 분 나오신다. 피에르 씨다.
호탕하게 인사하고 마당 왼편 창고로 들어가신다. 창고의 정체는 와인 양조실, 그 안에는 알코올 발효용 스테인리스 탱크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출고될 와인 상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대야 담긴 와인 잔 3개를 무심히 물로 한번 헹궈 들고나와 마당 정면으로 보이는 반지하 와인 숙성실로 따라오란다.
돌로 만든 반지하의 어두컴컴한 숙성실엔 대략 40여 개의 오크가 줄지어 있고 바닥엔 자갈이 깔려있어 걸을 때마다 자글자글 소리가 난다. 한구석에 세워진 오크통을 테이블 삼아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피에르 씨는 북부론에서 3헥타르 미만의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마케팅이나 홍보 같은 건 모르고 그냥 우직하게 30년을 와인만 만든 와인 생산자이다.
동네 식당이나 바에 납품하는 테이블 와인을 만들었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제대로 와인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의 나의 28세 때 북부론 와인의 거장인 도멘 들라스Domaine Delas에서 포도 농사를 익히고 그 후 조지 베르네George Vernay에서 포도 농사와 양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1990년 작은 밭을 사서 처음으로 자기 포도 농사를 시작하고 1995년 첫 빈티지 와인을 출시하였다. 2003년부터 자연스럽게 네츄럴 와인을 실험하여 지금은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하여 와인을 만들고 있다.
피에르 씨는 현재 2가지 퀴베의 코트 로띠 레드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하나는 코흐들루Cordeloux, 다른 하나는 돌리움Dolium이다. 코흐들루는 기본 등급으로 화이트 품종 비오니에를 약 5% 혼합한다. 돌리움은 북부론에서 도멘 이기갈의 유명한 밭 라 튀흐크La Turque와 붙어 있는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농사가 잘 된 해에만 만드는 퀴베이다.
제 작년까진 샤토 그리예 가까운 콩드리우의 작은 밭을 임대해서 화이트 와인도 만들었는데 작년에 밭 주인이 은행 빚에 못 이겨 밭을 처분하는 바람에 화이트 와인 생산은 중단했단다.
먼저 오크통 안에 숙성 중인 2017년 빈티지 와인 2종류를 배럴 테이스팅 했다. 

1. 코흐들루Cordeloux 2017, 코뜨 로띠
시라 95%에 화이트 품종인 비오니에를 5% 섞었다. 붉은 과일을 한입 가득 베어먹는 듯하다. 내가 감탄을 연발해대니 아직 엄마 배 속의 아기 같은 상태라 진짜 와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2. 돌리움Dolium 2017, 코트 로띠
위에서 언급한 좋은 해에 좋은 밭의 포도로만 만든 퀴베이다. 100% 시라로 만들었다. 숙성 중인 오크통에서 기다란 스포이트로 조금 뽑아내 맛본 와인은 신선한 붉은 과실 향과 더불어 고소한 견과류 향이 향기롭다. 벌써 우아함이 여기저기 뚝뚝 묻어난다. 
그리고 이어서 병입한 코흐들루 퀴베 2종을 테이스팅했다.

3. 코흐들루Cordeloux 2015, 코트 로띠
2015년은 날씨가 완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균형감이 예술이다. 시원한 산미에 시라 품종의 특징인 제비꽃 향이 굉장하다. 아직 어린 타닌이 10대 소녀같이 풋풋하다. 섬세한 나무 향, 견과류 향들로 복합미가 넘친다.

4. 코흐들루Cordeloux 2013, 코트 로띠
2013년은 2015년보다 더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잘 익은 붉은 과실 향이 지배적이고 타닌이 더 힘이 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포도송이 전체를 이용해 양조했다고 한다. 섬세한 2015년에 비해 까칠한 풀 바디를 하고 있어 몇 년 숙성 후엔 훨씬 더 멋있어질 듯하다. 

이렇게 굉장한 와인을 만드는 사람인데 와인으로 돈 벌기 시작한 지는 6개월 남짓 되었단다. 도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마당 한구석의 간판도 없는 그의 양조장이 그의 와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생활고와 함께 보냈을 그의 지난 시간이 눈에 어른거린다.
원래부터가 마케팅이니 홍보니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셈도 서투른 사람이다. 와인 판매는 전적으로 부인에게 맡겼다고 한다. 본인은 그저 밭일이나 하고 와인이나 만든단다. 
사실 수년 전 체질에 안 맞는 홍보라는 걸 해보려고 지역 와인 시음회에 참가해봤단다. 기자들이 맛보고 기사 한 줄이라도 써 주려나 싶어서. 근데 그 기자라는 양반들이 유명한 도멘 서너 군데만 테이스팅하고 사진 찍고 그냥 가더라는 것이다. 친자식 같은 와인을 행사 무료 시음용으로 오픈했는데 그들의 행태를 보고는 홍보에 대한 마음을 접었단다.
그래도 웹사이트라도 하나 만드시지 하니 어차피 누가 더 알아줘도 팔 와인이 없단다. 지금 미국 쪽으로 나가는 물량과 파리의 와인 숍에 소수 나가는 물량 대기도 벅차서 누가 자기 와인을 더 찾는 것도 골치 아프다는 말투다. 
그리고는 와인 라벨에 “Marie & Pierre Bénetière”라고 적혀있는 게 사실 엄청난 판매 전략이란다. 마리Marie라는 부인의 이름을 앞에 써서 주로 경제권을 쥐고 있는 여심을 공략할 목적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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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환하게 웃는 피에르 씨 >

우직하게 뚜벅뚜벅 앞만 바라보고 걷는 사람의 뒷모습은 짠하다. 구멍이 숭숭 난 셔츠를 입고 아이 같은 눈망울로 신나게 자신의 와인을 설명하는 피에르 씨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보같은 피에르 씨와 아름다운 그의 와인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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