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의 저자 이찬구 박사를 만나 듣는다.
환웅, 단군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환웅의 상징새는 수리부엉이임을 5500년 전 홍산옥기로 밝힌다
최근 신간‘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의 저자인 이찬구 박사(62)는 동양철학 전공자이면서도 역사에 관련한 논문을 발표하거나 강의를 꾸준히 해왔다.
또한, (사)겨레얼 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아 겨레의 얼을 한국 내를 비롯해 해외동포 사회에 전파하고 심는 데 그 열정이 뜨거운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정치권과 일부 식민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새로운 건국절을 제시하면서 한국민들의 역사관이 심히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개벽사)’이 출간되면서 우리 한민족들에게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 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어 유로저널이 저자인 이찬구 박사를 직접 만나 유로저널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수리부엉이가 한민족의 새임을 강조하고 있는 이찬구 박사
유로저널:
이번에 출간된‘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은 역사와 철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 서적에 대한 특징을 한마디로 말해주세요
이 찬구 박사:
맞습니다. 역사이면서 철 학이 같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토템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른바 홍산문화의 옥기 유물을 토템으로 조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인류학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유로저널:
토템이란 무엇입니까?
이 찬구 박사:
문자가 없는 선사시대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의 하나가 토템 분석입니다. 특정한 동물이나 식물을 부족의 상징 토템(totem)으로 삼고, 그 부족원은 그 토템을 서로 같은 조상으로 믿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곰이나 범도 토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템은 일종의 신앙형태의 하나로 볼 수 있죠. 곰을 토템으로 한다는 말은 곰을 조상신으로 모시는 것과 같지요.
유로저널:
『삼국유사』에는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동물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신앙과 같은 토템이라는 말이군요. 이번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까?
이 찬구 박사:
저는 이번에 새토템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동안 곰부족의 웅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새토템에 대하여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로저널:
새토템은 누구를 상징하나요?
이 찬구 박사:
『삼국유사』라는 책에는 환웅과 웅녀 역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환웅이 새토템의 주인공인 동시에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유로저널:
저자가 환웅을 새 토템족의 지도자로 본 근거는 무엇인가요?
이 찬구 박사:
오래된 고문헌인『산해경』(「해외서경」)에 웅상(雄常)을 혹은 낙상(雒常)이라고 한 구절에 주목하여 웅(雄)자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웅(雄)을 곧 낙(雒)으로 본 것인데, 이 때의 낙이 ‘수리부엉이’라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수리부엉이가 환웅의 토템 새라는 것입니다. 또 상(常)은 나무를 의미하므로 웅상(雄常)은 솟대와 같이 새와 나무가 결합된 신수(神樹)로서 『삼국유사』에서 말한 신단수와 같은 의미라고 할수 있죠.
출판 : 개벽사
저자 :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대전대 철학박사)
유로저널:
그러면 그 웅이 환웅임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우리나라 국내 문헌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나요?
이 찬구 박사:
고려말 이암이 쓴 『단군세기』에 있습니다. 웅상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데, 웅상(雄常)이 곧 환웅(桓雄)의 상이라고 밝혀주었기 때문에 『산해경』의 웅은 곧 환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로저널:
잃어버린 우리역사를 찾는 것과 같은 기적이군요.
이 찬구 박사:
역사에 기적은 없지만, 웅상이라는 말의 발견은 저에게는 기적이었습니다.
유로저널:
환웅의 수리부엉이와 중국에서 발굴된 5~6000년전의 홍산(紅山)문화와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이 찬구 박사:
수리부엉이가 환웅의 새라는 관점에서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옥기들을 주목했습니다. 환웅의 시대와 홍산문화의 시대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홍산에서는 수많은 옥기가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 새형상의 옥기가 있고, 특히 부엉이 옥기(玉鴞)를 유의하였습니다. 부엉이 옥기는 요서(遼西) 일대 곳곳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우하량유적을 비롯하여 나사대(那斯臺)유적, 호두구(胡頭溝)묘장, 동산취(東山嘴)유적, 오한기(敖漢旗)유적 등에서 골고루 나왔습니다.
요서의 광범위한 범위에서 환웅을 상징하는 부엉이가 출토되었고, 그 부엉이가 새토템으로 숭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로저널:
그동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웅녀 곰의 후손이라고 배워왔는데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합니까?
이 찬구 박사:
제가 토템의 관점에서 분석한 결과 우리 조상은 환웅의 새토템족과 웅녀의 곰토템족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민족이라고 봅니다. 우리 민족의 기원은 아버지 새토템족과 어머니 곰토템족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유로저널:
그 연대는 얼마나 됩니까?
이 찬구 박사:
올해(서기 2018년)가 단기로 4351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00~5500년 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로저널:
그동안 우리 상고사를 일본사람들이 신화라고 하여 단군신화로만 배워왔는데, 실존역사라는 뜻인가요?
이 찬구 박사:
홍산문화 중에 우하량유적이 있는데, 이미 여신묘(女神廟) 사당에 새토템과 곰토템을 모시고 숭배한 자취가 발굴되었습니다. 그 시기가 대략 5500년 전입니다. 그곳이 우리 민족의 역사시원이며 고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그럴만한 근거가 있나요?
이 찬구 박사:
여신묘에서 나타난 우하량유지의 토템(Totem)문화는 한국의 단군신화에서 언급된 환웅, 웅녀, 단군의 이야기와 일치합니다.
특별히 우하량유적은 여신의 신권(神權)을 중심으로 새(鳥)와 곰(熊)을 토템으로 숭배한 것과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제단과 천제(天祭)문화를 남겼습니다.
이는 한국의 고유문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유로저널:
중국사람들이 우리의 주장을 인정할까요?
호두구 묘지에서 출토된 부엉이
이 찬구 박사:
지금 중국 학계는 홍산문화에 대한 황제(黃帝)귀속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990년도 후반에 중국 정부는 소위 홍산문화의 요하문명을 자국 역사로 수용해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은 중국 문명의 뿌리다”라고 주장하고, 여기에 “중국인은 곰의 후예이다”라는 말로 황제를 곰신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짜맞추기 공정을 가한 것이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의 결론입니다.
그런 중에 모든 곰족은 황제의 후손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과 중국황제도 한국 곰족(웅녀)의 후손이라는 한국측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는 이찬구박사가 제시한 부엉이새와 비슷한 옥기를 BC 3500년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유로저널:
곰신화의 주인을 놓고 한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 찬구 박사:
곰토템 신화가 어느 민족이 앞서냐는 것인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곰신화의 상대토템을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곰토템과 함께 새토템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지요. 새토템족을 역사적 의미로 해석하면 환웅은 조이족(鳥夷族)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황제는 환웅보다 한참 뒤에 태어났으니까요.
유로저널:
우리민족은 곰족이 아니고 조이족이라는 말인가요?
이 찬구 박사:
환웅의 태백산 신시로부터 우리 민족의 첫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환웅의 조이족이 단독으로 살았을 때도 있지만, 나중에는 웅녀가 이끄는 곰족과의 연합을 통해 한층 발전된 문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신시문화는 우하량유적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나중에 고조선 건설의 물적, 인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의 본류는 조이족이지만, 점차 주변을 포용하며 연합민족으로 발전했습니다. 연합민족을 오랫동안 지속해왔기 때문에 결국은 단일민족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유로저널:
그러면 우리가 그동안 잘못 배워온 단군신화라는 말을 재해석할 수 있게 되었나요?
이 찬구 박사:
역사는 끊임없는 재해석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환웅과 웅녀가 만나 결혼했다는 신화적 이야기는 사실은 환웅의 새토템부족과 웅녀의 곰토템부족이 결합(연합)하여 새 나라를 세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고 역사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본래 신화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닙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단군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신화라는 말을 도입했는데, 그 말이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러면 이제 그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새 역사를 써야하지 않나요?
이 찬구 박사:
역사 서술이라는 것이 금방 무엇을 발견했다고 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연구를 거듭하여 모두가 맞다고 수긍할 때, 역사 교과서로 반영될 수 있겠죠. 역사에도 협동이 필요합니다.
유로저널:
시민의 역사의식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나요?
이 찬구 박사:
중요한 것은 시민의 깨어있는 역사의식입니다. 시민들이 자기 역사를 지키고, 자기 역사를 살리는 일은 역사학자들의 역할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서술하는 주체는 역사학자들이 아니고, 시민들, 국민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민주화의 과정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역사광복이라고 봅니다.
민주화, 산업화는 달성했다고 자평합니다. 그러나 해방 7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역사광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로저널:
왜 어렵다는 것입니까?
이 찬구 박사: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국민의 얼을 가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눈과 귀를 가려놓은 것은 바로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얼이나 정신은 더 알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식민사학의 적폐이지요.
유로저널:
앞으로 역사복원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찬구 박사:
옛 신화를 통해 사라진 의식을 되찾는 것은 역사를 복원하는 인간의 위대한 작업입니다. 엘리아데는, 신화는 거룩한 역사, 즉 태초에 일어난 원초적인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을 통해, 우리의 옛 역사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신화의 부활은 환웅 신시에 대한 역사의식의 재생과 복원을 의미합니다. 이제 신화의 검은 악령은 물러가고 새 역사의 광명이 찾아올 것입니다.
유로저널:
오늘의 현실은 어떠 합니까?
이 찬구 박사:
때마침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은 우리 문화의 근원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산문화의 새토템인 인면조가 고구려를 거쳐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재등장하고 우하량유적의 3단 원형제단이 개막 무대에서 재현된 것이 지닌 원형성·상징성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활 용품 중에 부엉이 상징 물건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게 합니다.
유로저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 찬구 박사:
신시홍산문화연구원(가칭)을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우리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뜻있는 동포여러분의 참여와 성원을바랍니다.
유로저널:
장시간 감사했습니다.
이 찬구 박사:
감사합니다.
유로저널 인터뷰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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