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로 존재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현실 그 이상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낼 수 있는 것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생각의 공간에서 먼저 가상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그 시나리오의 출발은 완벽하지 않다. 단어 몇 개, 몇 줄의 문장이나 사진 한 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시작된 씨앗이 영화로 열매를 거두게 되면 그 열매의 영화는 또 다른 영화를 낳게 된다.
처음 시작은 어설프게 상상의 세계를 표현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기초하여 더 완벽한 현실 그 이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로 간혹 현실세계와 영상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를 혼동하기도 한다. 슈퍼맨 영화가 등장했을 때 동네 아이들은 형형색색의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하늘을 나는 흉내를 내야 했다.
동심일수록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마음이 굳어지게 되면 영화를 보면서 꾸며진 이야기라며 마음에 들이질 않으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개봉 되면 제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는 재해석된다. 영화 뿐 아니라 인간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다.
자기가 피곤하면 세상이 피곤하게 보이는 것이고, 자기 배가 고파야 타인이 배고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위치는 지극히 작다. 작을 뿐 아니라 존재 자체도 기억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작고 나약한 존재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는 자기중심적이다. 그렇게 해석된 자기중심의 세계는 실상 가변적해석일 뿐이다. 가변적해석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관찰에서 비롯된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해석하여 결정짓는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라면 자기 비좁음에 대한 표출일 뿐이지만, 크고 작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그런 철학의 늪에 빠져 있다면 그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곤경에 처할 수 있게 된다.
가변적 해석은 닫힌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물이나 사건을 듣기 전에 이미 자기 판단으로 답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듣기 전에 이미 판단했고 말할 것을 결정한 상태라면 세상에서 가장 비좁은 우물에서 왕노릇 하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가변적인 지식일 수 있다. 확실하게 믿고 알았던 것이 마음이 넓어지고 지식이 확장되었을 때 고립된 사고에서 비롯된 거짓임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열린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생각이 지금은 옳지만 언젠가는 알고 있는 지식에 함정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을 향해선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자기 확신과 그 확신이 가변적지식이라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적절하게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비좁은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지식은 어떠하든 자기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 생각은 상상의 나라다. 그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 기초 과학이 되고 영화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늘을 날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 잠간만 하곤 그만둔다. 그런데 그 생각을 지속적이면서 논리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다. 결국 인류는 그 사람의 생각이 현실화 된 비행기술시대에 살게 되었다. 삶에서 한계에 부딪힐 때 인간은 상상의 세계로 접근한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임이 분명하지만 그 세상을 통해 현실적인 도움을 받고 힘을 얻기도 한다. 그 상상이 현실화 되는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상상 자체에만 머무는 경우가 더 많다. 살다 보면 버거운 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하여 상상의 세계가 위축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먼 곳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삶을 옥죄어 온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다. 다 아는 듯 하지만 모르는 것 같고, 그러면서 모르는 것 같으면서 다 아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족이 가장 큰 힘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사람은 짐이 되지 않는다. 고통의 소식을 전해 들어도 안타까운 마음만 전해 주면 된다. 그러다 기회가 되면 작은 물질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멀리 있는 사람일수록 안타까움과 동정심은 있지만 마음에 짐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가족은 싸우면서도 늘 마음에 짐이 된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해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 그러면서 사랑하면서 때론 원수처럼 서로를 피해야 하는 것이 가족 구성원이다. ‘김형협’ 감독의 <아빠는 딸> 영화가 바로 그런 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본작가인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장편소설 <아빠와 딸의 7일간> 내용을 영상화 한 작품이다. 주인공 원도연(정소민)은 17세의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여고생이다.
그의 아빠 원상태(윤제문)는 47세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영화는 아빠의 속옷과 딸의 속옷을 함께 세탁한 것에서 시작한다. 딸은 엄마에게 불평한다. 아빠의 옷과 함께 세탁한 것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모아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상태임을 나타내지만 아빠는 그런 딸을 이해할 수 없어한다. 아빠가 딸에게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다.
"공부만 하는 게, 그게 그렇게 힘들어?
너 아빠가 밖에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르지?"
그런 아빠의 반복된 잔소리에 딸의 반응한다.
"아빠도 내 인생한번 살아보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야."
아빠는 아빠대로 자기 생각에 늪에서 딸을 이해하려 했고, 딸은 딸대로 자기사고로 아빠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미움의 골이 깊어져만 간다. 외할아버지의 위독한 상황을 듣고 시골로 내려갔을 때 아빠와 딸은 심하게 다툰다.
그러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사람의 몸이 바뀌는 상상이 현실화 된다. 아빠의 몸이 딸이 되었고, 딸의 몸이 아빠가 된다. 일주일간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면 원상 복귀되는 설정이다.
딸이 된 아빠는 학교로 가고 아빠가 된 딸은 아빠의 직장생활을 바꿔서 하게 되면서 진정한 아빠를, 진정한 딸을 이해하게 된다. 딸이 된 아빠는 시험성적이 나쁘게 나왔지만 오히려 아빠가 된 딸은 직장에서 여고생 마음을 사로잡는 화장품 판매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예외일 수 없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타인이 거할 공간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가장 사랑하고 이해해야 할 가족들이 서로 다투고 미워한다면 내 생각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하고, 타인이 공간이 주어진 상상의 나라를 만들어 함께 살아야 한다.
아빠가 딸이 되고, 딸이 아빠가 되어 살아보는 역지사지는 비좁은 자아를 넓히게 하는 행복한 상상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