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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가 안완기의 알고 가자 

꽁꼬흐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 (2)


광장의 조각

광장의 상징물도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를 대변하듯이 처음에는 '루이 15'세 기마동상이 세워졌다가, 1792년 8월 11일, 이 광장의 주인이던 루이 15세의 동상이 철거되어 제철소의 용광로로 들어가고 그 자리에는 '르모 François-Frédéric Lemot' 조각가의 '자유의 여신'이 새워지면서 이 광장을 '혁명 광장'이라고 명명한다. 


[크기변환]Concorde (2).JPG



[크기변환]Concorde (5).JPG

나폴레옹 시절에는 자유의 여신을 철거하고, 프랑코 왕국을 세운 '샤흘르마뉴' 대제의 동상이 설치되었고, 왕정복고 시절 '루이 18세'는 자신의 형인 '루이 16세'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순교당과 작은 성소를 포함한 동상 건립을 계획하고, 동생인 '샤흘르 10세'가 1826년 공사를 시작하지만,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사가 중단된다.


잃어버린 상형문자를 해석하여 찬란한 문명을 찾아준 '샹폴리옹'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1831 이집트의 부왕 '알리 Méhémet Ali'가 '룩소르 신전 Temple de Louxor' 앞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프랑스에 선물하는데, 혁명정부 말기에 광란의 공포정치로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 이 광장에 어떠한 정치적 사건도 연상시키지 않는 오벨리스크를 1836년 10월 25일 20만 명의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재의 자리에 세운다. 


1848년까지 최초의 건축가 '가브리엘 Gabriel'의 설계의도를 존중하면서 광장을 새롭게 단장하는데, 포도와 밀을 수확하는 모습이 조각된 분수와 '핸 Rhin' 강과 '론 Rhône' 강을 상징하는 조각이 돋보이는 분수에서 피어나는 무지개 사이로 보이는 에펠탑이 인상적이다. 또한, 프랑스 8대 주요도시의 여신상들이 프랑스의 발전을 위하여 회의를 하는 조각이 광장을 에워싼다.


[크기변환]Concorde (6).JPG


[크기변환]Concorde (8).JPG



단두대는 누가 만들었을까?

프랑스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단두대!! 단두대의 기원은, 본래 이탈리아에 존재하던 것으로 두 개의 나무 기둥 사이에 초승달 모양의 날카로운 칼날이 떨어지며 사람의 목을 자르는 장치를 개조한 것이다. 


당시, 칼 또는 도끼로 목을 자르는 참수형이나, 마차 바퀴 또는 말이나 소에 묶어 죽이는 참시형, 목을 메다는 교수형보다 죄인을 고통 없이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당시의 대중들이 '국가의 면도칼 Rasoir national' 또는 '과부 Veuve'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이 고성능(?) 기계를 공식적으로는 '루이제트 Louisette' 또는 '루이종 Louison'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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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의 '헌법 의회'에서 총무를 맡은 '기요땡' 의사의 자질에 늘 못마땅해하던 한 신문 기자가 비꼬는 투로 이 기계에 '기요띤느 Guillotine'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란다.


 "죄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에 상관없이, 같은 종류의 위법행위는 같은 종류의 형벌로 처벌하여야 한다. Les délits du même genre seront punis par le même genre de peine, quels que soient le rang et l'état du coupable "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고통 없이 평등한 죽음을 주장하던 '기요땡 Guillotin' 의사는, '정형외과 아카데미'의 사무총장이던 외과 의사 '앙뚜완 루이 Antoine Louis'가 고안한 기계를 사형수들의 목을 자르는데 이용하자며 1789년 11월 28일 '혁명위원회'에 선보인다. 즉, 발명한 것이 아니고, 소개한 것. 혁명정부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빨리 처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크기변환]Concorde (16).JPG


1791년 6월 3일, '헌법 의회'는 '모든 사형수들은 머리를 자를 것이다.  Tout condamné à mort aura la tête tranchée' 라는 법령을 포고하고, '기요땡' 박사와 '앙뚜완 루이 Antoine Louis'에게 이 기계를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


독일 기술자 '또비아스 슈미트 Tobias Schmidt'의 제안을 수용하여, 초승달 모양의 칼날을 마름모꼴로 바꾸면서 악명 높은 단두대의 모습이 완성되어, 개선된 최신식(?) 기계는 '비세트르 Bicêtre'에서 양과 시체들을 이용하여 임상 실험을 거치고, 당시 최대의 절도범이던 '펠르띠에 Nicolas-Jacques Pelletier'가 1792년 4월 25일 첫 번째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행운( ?)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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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예로운 최초의 손님과 최신식 기계를 보기 위하여 모인 구경꾼들은 순식간에 손님(?)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악인에게는 너무 과분한 처사라고 불평이 대단하였단다. 


1793년부터 1794년 사이에 공포정치가 진행되면서 각 도청마다 단두대를 하나씩 설치하였고, 파리에는 죄인이 많았는지 여러 곳에 설치하였다. Place de Grève, Place du Carrousel, Place de la Concorde, Place de la Bastille, Place de la Nation, Champ de Mars 전국에서 약 200,000 명의 목을 자르는데 지대한 공( ?)을 세운 단두대는 전체 높이 4.5 m, 칼날 높이 2.25 m, 무게 580 kg의 모습이다.


[크기변환]Concorde (23).JPG


휴머니스트이며 의사로서 삼부회의에 평민대표로 참여하였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정부의 위원이기도 하였던 '기요땡 Guillotin' 박사가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서 죽었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판치는데, 1814년 3월 26일 파리의 자택에서 천수를 다 누리고 76세로 자연사한다.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던 단두대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것을 죽는 날까지 억울해하면서… 


[크기변환]Concorde (28).JPG


(다음 편에 계속)


안완기  프랑스 테마여행, '알고가자' 대표

이메일: algogaza82@gmail.com

홈페이지: www.algoga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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