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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방의 추억 (독일 손병원님 기고)

by 편집부 posted Dec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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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방의 추억


한국에서 가장 많은 다방 이름은 별 다방이 아닐까 싶다. 


재래식 다방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자취를 감추면서 현대식으로 변해 다과 점이나 음식점에서도 커피를 팔고 자판기가 나오고 집에서도 커피를 내리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논 두렁에서도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세상이다. 당시의 다방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적합했다. 


연인들은 서로에게 마음의 별이 되어 부르기 쉽고 외우기 쉬워 깔끔한 별 다방이다. 별은 꿈이 있는 단어이다. 


다방에 들어서면 한복 입은 마담이 좋은 화장발로 웃으면 맞이해 준다. 다방 마담은 그 다방의 얼굴이기에 항상 우아한 웃음과 단정한 몸매여야 다양한 손님 층을 아우른다. 


탁자 위에는 팔각성냥갑이 검은 뚝 고무줄에 대롱대롱 메 달려있다. 다방전화를 이용하기란 매우 힘들다.


손님들이 장거리 전화를 할까 봐 방지하여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만 연결해준다. 


커피를 시키면 잠시 후 레지가 설탕 그릇을 가져간다. 손님들은 설탕에 커피 물 탄 듯이 설탕을 듬뿍 듬뿍 넣으니 이해가 간다. 


자리 좋은 곳은 동네 사장님이나 큰 소리 잘 치는 백수들 차지이다. 손님들은 사장님 선생님 일색이다. 다방 메뉴 판이 있지만 손님들은 거의 커피를 시킨다. 70년대의 커피값은 300원 정도였다. 쌍 화차에 달걀 노른자 띄운 것도 맛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가까운 삼거리에 별 다방 간판이 앙증맞게 걸려있었다. 자주 이용하다 보니 대우받는 단골이 되었다. 마담이 없을 때는 반숙이 나오고 커피값은 거의 공짜였다. 고맙고 미안해서 레지들에게 군것질거리 한 봉지씩 갖다 주면 유효기간이 오래간다. 생리현상처럼 먹으면 나오게 되어있다. 


음료수는 곱빼기가 없기에 "커피를 수북이 부어오면 내가 값을 배로 주지" 간결한 농담을 걸면 호감과 관심을 끌게 된다. 온갖 손님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레지에게 편히 대 해줘야 점수를 딴다. 


실내에서 가장 많은 걸음을 하는 직업이 다방레지이다. 다리가 힘드니 툭 하면 빈자리에 앉는다. 쉬기 위해 달갑잖은 손님과도 마주앉는다. 마담은 늦게 출근하기에 일찍 다방에 들어서면 하품하는 레지들이 많다. 


다방에 대한 1968년도 방화가 한편 있으니 아네모네이다. 남 주인공(신성일)은 다방에서 항상 카운터 앞자리에 앉는다. 그 날도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정면을 응시한다. 언제나 그러한 행동이라 레지들이 마담 (엄앵란)에게 "언니, 저 손님이 언니를 좋아하는가 봐" 그 다음부터 마담은 그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진짜 자기를 쳐다 본다. 


시간이 흘러 흘러 호기심과 야릇한 감흥에 몸이 단 마담이 "손님, 왜 저를 쳐다 만 보세요, 한 마디 말씀이라도 해 주셔야지요" 표정 없이 조용히 "아, 저는 마담을 쳐다보는 게 아니라 뒤에 걸려있는 그림을 본다오. 세상 떠난 애인은 모나리자 그림을 참 좋아했다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면서 영화 주제가 아네모네사랑의 노래가 다방을 가득 메운다. 애잔한 손님에게 마담은 연민의 정을 토하며 사랑하는 줄거리였다. 


아네모네는 꽃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속절없는 사랑에 비통해했던 주인공의 꽃말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펄 시스터즈가 커피 한잔을 불러 일약 톱 스타 반열에 오른다. 여고를 갓 졸업한 자매들이 사랑도 모른 체 오, 내 사랑아, 부르는 게 엄청 부담되고 어색했다고 커서 술회했다. 


1972년 극장무대에서 찻집의 고독을 부르다 테러 당한 나훈아는 그 사건 이후 거의 그 노래를 부르지 않다가 작년 공연 무대에서 모처럼 불렀다. 


월남전이 한창일 때의 실화 한편을 소개한다면 - 첩첩 산골에서 농사만 짓던 총각이 군입대 하여 파병되었다. PX에서 난생처음 커피를 마셨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냐, 그 이후로 커피 광이 된다. 어느 날 커피를 마시다가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혼자만 즐기면 쓰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선물로 커피를 보내드려야지. 


깡통 커피를 사 놓고 그림편지를 쓴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지라 그림 편지를 쓴다. 가운데 커 다란 무쇠 솥을 그리고 밑동에서 장작으로 불을 피운다. 무쇠 솥 위에 광목 헝겊을 펼치게 하고 깡통 커피가루를 그 위에 쏟아 붓는다. 


그림 편지를 받아본 부모님이 아들의 선물에 기뻐 마지않는다. 


저녁 식사를 물리고 그림편지대로 하여 커피를 끌 인다. 김이 모락모락 인 다음 한 국자 떠서 맛을 보니 여간 쓴 게 아니다. 인상을 쓰다 느끼는 바가 있었다. 보약은 입에 쓰다더니 미제 보약도 입에 쓰구나. 그러나 저걸 다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옳지, 내가 마을사람들을 불러 같이 마셔야지. 


얼마 후 이웃들이 줄줄이 모여들었다. 미제 보약 자랑을 하니 "전쟁터에서 보약을 다 보내니 그 놈 참 효자야 효자" 덕담을 나누며 보약을 마셔보니 엄청 쓰다. 공짜는 양잿물도 큰 걸로 먹는다고 너도 나도 양재기로 마셔댄다. 다 마시고 다들 집에 돌아가니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열 달 후 온 동네에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나왔다. 


파리 한 마리가 커피 잔 주변을 멤 돌다가 커피 잔에 빠지면서 하는 말 "이제 내가 세상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죽는구나" 


여객기 내에서 목적지에 다다랐다고 기장이 안내 방송을 한다. 그리고 마이크를 끄지 않은 체 부 조종사와 잡담을 한다. "이 보게 이제 비행도 다 끝나가니 커피 한 잔과 아가씨가 생각나네" 기내 승객들이 한 바탕 웃어대자 여 승무원이 눈치채고 급히 조종실로 달려간다. 승객이 하나 벌떡 일어서서 큰 소리로 "아니 그냥 가면 어떡해 커피도 들고 가야지" 


남편 살해 사건이 났다. 살인죄로 잡혀온 여자에게 형사가 묻는다. "돈도 좋지만 남편의 보험금이 더 좋으냐" 여자가 한 숨쉬며 "아 글쎄 그날따라 커피 좋아하는 남편이 자꾸 커피 더 달라고 졸랐어요" 독이든 커피였다. 


커피열매는 볶는 과정에서 갈색으로 변한다. 생산지마다 수확연도마다 맛을 달리한다. 불의 세기와 시간조절에 따라 커피 맛과 향이 다양해진다. 


커피이름은 모두 이탈리아 말 이다. 커피 문화를 개발한 덕분에 유세를 떨만하다. 커피 이름에는 저마다 뜻이 담겨 있다. 커피에 어떤 내용물을 넣고 넣는 순서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커피에 관한 한 텃새가 심하고 자부심 강한 이탈리아에 드디어 작년 10월 초에 스타벅스가 밀라노에 제1호점을 개장했다. 


코카콜라가 올 여름에 스타벅스 다음으로 큰 영국의 커피 전문체인 코스타를 사들이고 하는 말 "우리는 이제 따뜻한 음료수도 판다" 


커피가 한창 팔릴 때 꽁피라는 말이 무서웠다. 악덕 업자가 커피에 담배꽁초 물을 넣어 섞은 꽁피커피. 


다방 레지가 외래어인 만큼 레지의 어원이 다양하다. 좁은 공간을 자주 내왕하는 레지들의 궁둥이는 손님들에게 심심풀이 용이 되기도 했다.


"아 거 궁둥이가 커서 마시다가 부딪혀 커피 쏟을 뻔 했잖아" 한대 툭 친다. 그것 가지고 왜 화내냐고 툭 친다. 여자는 궁둥이가 커야 요강에 안 빠져. 오늘따라 예쁘다고 툭 친다.


다방레지는 대체로 고향을 떠나 힘들게 살아 정에 약하고 외로움을 잘 탄다. 집적거리는 한량들을 자주대하여 받아 치는 강한 면도 있지만 마음은 여리다. 


레지들은 커피포트를 잔과 함께 보자기에 싸서 주문 배달을 나가기도 한다. 다방에서 유행가를 즐겨 듣던 시절도 추억으로 응어리진다. 


재래식 다방은 1990년대 CD가 생산 시작할 즈음부터 명성과 역할을 잃어간다. 당시 만남이라는 유행가가 히트칠 때 오래 틀은 LP 판에 하필이면 바늘이 < 돌아 > 뒤에 걸려 그 음절이 반복되니 손님들이 와락 웃고 떠든다.


문 앞에서 손님 접대하든 마담이 고개를 돌려 카운터에 있던 미스 김에게 "야아, 니 ** 걸렸다. 얼른 빼라" 소리치니 손님들이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음악다방에서 더벅머리 총각이 DJ 할 때는 손님들의 신청 곡과 사연을 들려줬다. 


관세청의 작년 무역 통계에 의하면 커피의 시장규모가 11조 원을 넘었다. 연간 일인당 약 512잔을 마셔 총 소비된 커피잔 수로는 물경 265억 잔이나 된다. 기호식품에서 일상 음료수로 가는 추세이다. 

커피 최대 생산국은 단연 브라질이며 최대 소비국은 핀란드로서 1년에 일인당 12kg정도 마셔 된다. 


나는 커피에 밥 말아먹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한 적 있었는데 여럿 의학상식과 경험에 의하면 하루에 3 잔이 적당하다고 여긴다. 


음식이나 욕심에 지나침은 과유불급을 원칙으로 삼아야 뒤탈이 없다. 


몸에 좋다고 맹신하고 과하면 되려 화를 부르게 된다. 


99 섬 가진 자가 1 섬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100 섬 채우면 다음에 꼭 사단이 난다. 


마음의 여백(餘白)이 가치 있다. 다방에서 정담 나누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무엇을 할까? 


다방에서 아침마다 나오든 모닝커피를 만들며 옛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이름하여 별 다방의 추억


손병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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