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처한 인간을 표현한 것이다
'1947-48-W No.1'은 클리포드 스틸 부인이 1986년 뉴욕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에 기증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스틸은 거대한 흑백 공간에 적색, 황색, 청색 물감 터치를 가했다. 그는 1945년부터 정기적으로 뉴욕에 거주했지만 화가로서의 형성기에는 미국 서해안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961년에는 메릴랜드 주에 정착했다.
그의 성숙기 회화는 주로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하여 표현한 무정형의 뾰족한 윤곽이 있는 형태가 특징이다. 스틸은 그의 추상화에서 연상되는 의미를 부인했지만, 회화의 구도에서 미국의 서부 광야가 암시된다는 설이나 조형의 직립성이 환경에 처한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Clyfford Still, 1947-48-W No. 1, 1947-48
2011년 세계적인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 작품들이 뉴욕 경매시장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AFP통신의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바로1980년 타계한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클리포드 스틸의 작품 '1949-A-No.1'이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6170만달러(약 700억원)에 낙찰되었기 때문이었다. 소더비는 이 때 "'1949-A-No.1'은 가장 위대한 20세기 미국 미술작품 중 하나"라고 밝혔다.
Clyfford Still, 1949-A-No.1, 1949
스틸의 다른 작품 '1947-Y-No.2'도 이 때 경매장에서 3140만달러(356억원)에 팔렸다.
그러나 클리포드 스틸은 사실 살아 생전 대부분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경매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Clyfford Still, 1947-Y-No. 2, 1947
스틸은 자신의 작품만을 반영구적으로 전시 할 것 등 다양한 조건을 걸어, 한 도시에 작품을 무상 제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가 죽은 후 30 년이 지난 2011 년에야 콜로라도 덴버시가 박물관을 완성하게 되었다. 박물관의 건축을 맡은 브래드 클럽필은 스틸의 그림들이 은은한 자연채광 아래 전시될 수 있도록 건물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Clyfford Still Museum
2011 년 11 월 당시 소더비 경매에 한꺼번에 그의 작품 4 작품이 나오고, 가장 큰 작품에6170만달러(약 700억원)의 값이 붙은 것은, 바로 4 작품을 팔아서 다름 아닌 이 미술관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최근에도 클리포드 스틸 박물관 측은 박물관 운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스틸의 작품 몇 점을 뉴욕의 말보로우 갤러리에 수백만달러 거액을 받고 팔기도 했다.
총 2900만달러를 들여 추상 표현주의 화가였던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의 이름을 딴 클리포드 스틸 미술관이 2011년 1250 Bannock St.에 문을 열었던 당시에, 덴버 시장이었던 마이큰 핸콕은 이 미술관은 20세기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 꼭 들러 감상하는 덴버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상당한 기대를 표해었다.
Clyfford Still Museum
그리고 실제로 이 미술관은 덴버시의 로어 다운타운의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시빅 센터 인근의 구조물들, 덴버 공립도서관, 덴버 미술관 및 해밀턴 전시관에 이어 다운타운에 또다른 명소가 되어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스틸은 자신의 작품을 대부분 고스란히 간직한 상태에서 1980년 암으로 숨졌다. 이에 따라 100여점의 그림과 300여점의 소묘를 상속받은 스틸의 부인 패트리시아는 남편의 작품을 영구적으로 전시할 곳을 조심스럽게 물색해왔다.
20개 가까이 되는 도시들이 스틸의 작품 컬렉션에 군침을 흘리며 러브콜을 보내왔고, 2004년에 마침내 패트리시아는 최종적으로 덴버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도 2005년 사망했다.
Clyfford Still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 1904~80)은 노스 다코타 주에 있는 그랜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회계사였고 가족들은 이듬해에 워싱턴 주로 이주했으며1910년에는 캐나다의 알버타 남부로 다시 이주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으며 색, 빛, 사물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화가가 될 소질을 나타냈고 음악과 문학, 시에도 관심이 많았다.
1925년 스물한 살 때 그는 뉴욕을 처음 방문하고 그 소감을 일기에 적었다. "나는 먼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으로 가서 내가 모방한 적이 있었던 대가들의 그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들을 보고 실망했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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