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심원의 사회칼럼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38): 태양의 눈물 (Tears of The Sun)

by 편집부 posted Feb 18,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Extra Form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38): 태양의 눈물 (Tears of The Sun)


감독 안톤 후쿠아 
주연 부루스 윌리스(월터스, 대위) 모니카 벨루치(레나, 의사) 
개봉 2003년 4월

39-1.jpg


세상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해 왔다. 인류는 선과 악의 레일에 놓인 열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선은 악을 만들어 내고 다시 악이 존재함으로 영웅을 만들어 낸다. 이 땅에 선만 존재했다면 결코 인류가 기억하는 영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을 소멸하는 과정에서 다음세대에 기억될 만한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인이요 저술가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악은 선의 한 모퉁이라는 의미로 "우리의 적은 우리의 조력자"(Our antagonist on our helper)라 주장했다. (에드먼드 버크 지음 /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인용) 인류 역사는 영원한 선도, 영원한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영웅들을 만들어 냈다. 시대의 영웅이 있다는 것은 시대의 악이 존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9-2.jpg

2012년에 출간된 김훈 선생님의 책, <칼의 노래>는 이순신 영웅사상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교과서에 잠들어 있던 화석화 된 장군을 현대인이 살고 있는 시대의 현장 속에 살아 있는 이순신으로 부활시켰다.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악역을 해 준 일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9년 11월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인명사전>을 편찬했다.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인물들을 가려내기 위해 8년간이라는 오래 시간동안 연구한 결과 3,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250만 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심도 있게 확인할 결과 4,389명의 친일 파 명단을 공개했다. 

39-3.jpg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여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 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평가했다."는 것이 친일파 규정에 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이었다. 일본과의 과거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할 과업일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인명사전을 편찬한 것만으로 일본과의 과거 청산이라 하기에는 다른 아픔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 든다. 이는 지극한 개인의 힘이 과시된 집단의 생각일 뿐이다. 친일파 명단에는 자칭 민족을 사랑했다 자부하던 인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의 기준, 악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의문과 혼란을 가져오는 연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이 존재했던 시절, 지금은 그 악은 우리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웃 국가로 부상되어 있다. 영웅의 탄생은 악을 향해 던진 그들의 분노였다. 의사 안중근이라는 영웅은 그들의 악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악이라 칭했던 자들에게 영웅은 최고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영웅의 기준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만들어 졌다. 현대는 그러한 영웅을 거부하는 시대이다. 더 이상의 악의 존재를 만들어 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력한 의미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악도, 정치적인 악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종교들이 서로를 인정하려 하고 정치적 마찰도 줄여가는 것이 큰 그림으로 보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2003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태양의 눈물>은 시작과 함께 “더 이상의 영웅은 없다.” 는 명제로 대 서사시는 시작된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영웅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영웅이 존재하는 한 악의 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다. 선과 악의 양면성의 상호보완적 역사라 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의 유전 소유권을 둘러싼 내전으로 선량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곳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은 내전의 위협에서 자국으로 신속한 이동을 한다. 그러나 위협과 상관없이 부상당한 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한 미모의 의사와 신부, 두 명의 수녀를 구출하기 위해 최정예 특공대를 내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들을 구해 오라는 특명을 받는다. 또 다른 영웅을 만들어 내기 위한 그들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한다. 영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나이지리아는 단지 악역을 맡을 뿐이다. 그 영웅 사상은 어떻게 보면 미국의 우월성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는 영화에 담겨진 메시지일 뿐이다. 

39-4.jpg

영화의 마지막은 '에드먼드 버크'의 글로 끝을 맺는다. "악의 승리에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선한 자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악이 무엇이며, 또한 선은 무엇인가? 영화에서의 악은 나이지리아의 민주 경선을 통해 대통령이 된 '사무엘 아즈카'를 끌어 내리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야쿠부' 장군을 지목했다. 악이 존재할 때 마다 그것을 악이라 칭했던 선의 집단이 존재해 왔다. 그 선의 집단은 대부분 강대국들이었다. 모든 전쟁 영화에 그렇게 선의 나라는 찬란한 영웅을 만들어 낸다. 관객들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흐려져 있다. 영웅은 대부분 스크린 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혈투로 인한 멋진 연기는 영웅사상을 통하여 선의 나라를 만들려는 음모는 잠재워진다.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교육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그것의 옳고 그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육체가 그것을 습관적으로 따라 갈 뿐이다. 선을 행하는 자든, 악을 행하는 자든 같은 선상에서 행할 뿐이다. 선을 지칭하는 집단에 서 있을 때 박수갈채를 받겠지만, 악을 지칭하는 집단에 원치 않게 소속 될 때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선의 기준과 악의 기준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개인 홀로 만들 수 없기에 집단의 힘을 키우고 그 집단으로 하여금 악을 규정하게 된다. 악이 구분되면 그 악을 구분한 집단은 당연 선의 집단이 되어 왔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은 모든 국가나 문명의 집단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선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뿐이다. 하나님이 선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악의 집단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악하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인간은 악하지 않다. 악함에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본질이 선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 인간은 선하신 하나님 안에서 선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과 하나 됨으로 인간은 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선으로 말미암아 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으로 말미암아 선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선하다 주장하는 가진 자들의 집단은 하나님조차 자신의 전유물로 만들었다. ‘월터스’(브루스 윌리스) 대위는 작전을 실행하면서 나이지리아에는 이미 ‘하나님이 떠났다.’는 고백을 한다. 이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내기 위한 대사일 뿐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우월사상에 온 것이다. 내전의 소용돌이 깊숙한 지역에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헌신하는 의사와 신부, 간호사는 그들 나라의 선한 양심의 대표자들이다. 그러나 짐승과 같은 사람들은 그러한 선한 양심을 죽이려 한다. 당연 선한 나라는 짐승과 같은, 하나님이 버리신 그 나라에서 그들을 구출해 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39-5.jpg

이 땅에 더 이상의 영웅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악의 축을 만들어 내야 하는 또 다른 아픔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는 영웅주의 욕망이 가득하다. 태양의 눈물은 이 시대의 영웅주의에 받아야 하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태양이 눈물 흘릴 수 있는가? 태양에는 물이 없다. 눈물은 물이다. 그 물은 돌이킴이다. 회개하고 있다는 행동이다. 태양이 눈물 흘린다. 무엇 때문인가? 강자들의 영웅주의 때문 아니겠는가? 그들이 영웅이 되기 위해 힘없는 자들은 언제나 희생제물이 되었다. 악의 축으로 몰려 선량한 민초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 된다. 그러나 영원히 그들의 잘못은 속죄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태양에 눈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태양이 눈물 흘릴 수 없다는 사실, 이 땅이 존재하는 한 영웅주의는 계속하여 존재할 것이라는 서글픈 암시를 전해 준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박심원 문학세계 
- 카카오톡 아이디: seemwo
유로저널광고

Articles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