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예술칼럼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by 편집부 posted Mar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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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예술 칼럼 (204)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1.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jpg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그림 속 남자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거대하고 신비로운 자연 앞에 선 작은 인간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는 "지금의 나로 있기 위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몸을 맡겨 구름과 바위와 나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겠다.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는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프리드리히는 항상 산책용 지팡이와 스케치 도구를 들고 숲을 거닐며, 늘 혼자 고독하게 자연과의 밀회를 즐기곤 했었다. 

그런데 그는 왜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것일까? 이 그림이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때까지 그림 속에서 뒷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뒷모습은 앞모습에 비해 더 많은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표정과 생김새를 지운 채 오로지 차갑고 단호한, 침묵이 역설적으로 문자화, 언어화 시킬 수 없는 말들을 발산한다. 이것은 입에서 나오는 실제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뚫고 바위에 오른 한 남자가 지팡이에 기대어 안개바다 위로 솟은 산과 바위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고뇌하고 있다. 이것은 소외나 군중 속의 고독 등의 단어를 연상시키고 사색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여겨져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저 남자는 누구이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일까? 

그림을 들여다보면 가까운 곳에 있는 인물과 바위는 어두운 색으로 자세히 묘사했고 멀리 있는 안개와 산과 바위는 흐릿해지며 회색으로 변하게 하는 원근법을 쓰고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의 복식은 19세기초를 반영하고 있지만, 주제는 오히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전반기의 실존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2. 19세기의 자연

19세기 전반은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하여 도덕과 이성을 중시했던 신고전주의에 반발하고 직관, 감성, 상상력을 특히 중요했던 낭만주의를 따르던 시기다. 화가들은 영웅적인 투쟁에 대한 그림, 풍경화, 야생동물화 등을 통해 이성적인 객관주의보다 감성과 직관에 의존했으며 자신의 정열이 이끄는 대로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영국에서는 화가 윌리엄 터너가 눈에 보이는 사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느껴지는 자연의 움직임을 빛과 색채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변화 무쌍한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고 그 유기적인 역동성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애를 썼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1840.jpg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이 때, 독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풍경화의 영역에서 당시의 독일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종교적 정열과 함께 독일 민족 특유의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범신론적 풍경화가 발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의 정신을 광활한 자연을 대면한 인간의 낭만적 정서와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감정을 담아 수많은 풍경화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Caspar David Friedrich, Seashore in Moonlight, 1835-36.jpg

Caspar David Friedrich, Seashore in Moonlight, 1835-36


그의 풍경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관계에 대한 내적 통찰을 함께 드러내 준다.


Caspar David Friedrich, Moonrise over the Sea, Alte Nationalgalerie, 1822.jpg

Caspar David Friedrich, Seashore in Moonlight, 1835-36


그는 자연을 항상 변화를 겪는 인간에 비해 변치 않는 이상과 영원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자연에 숨겨진 신적인 의미를 찾아내 인간이 그 의미를 나눠 가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Caspar David Friedrich, Moonrise over the Sea, 1821.jpg

Caspar David Friedrich, Moonrise over the Sea, 1821


Caspar David Friedrich,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1819-20.jpg

Caspar David Friedrich,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1819-20



3. 조용한 아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 Self Portrait, 1810.jpeg

Caspar David Friedrich, Self Portrait, 1810


프리드리히는 1774년 당시 스웨던 영토였던 포어포메른 주의 그라이프스발트라는 발트 해안의 항구도시의 한 마을에서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고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교육을 받은 조용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양초 및 비누 제조 사업을 했으며, 루터교 신자로 엄격하고 완고한 인물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어린 시절에 가족의 죽음을 연이어 경험했다.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 다음 해에는 누이를 잃었다. 

그리고 13살 때는 스케이트를 타다 빙판이 깨져 물속에 빠진 그를 남동생 요한 크리스토퍼가 구하려다 익사했으며 뒤이어 17세 때는 누이 마리아가 병으로 죽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계속되는 가족들의 죽음과 아버지의 엄격한 양육 방식이 그를 조용한 아이가 되게 했다.   

7세 때 어머니가 죽은 후 형제들과 함께 가정부의 손에서 자랐고, 가족들의 죽음 이후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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