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와인칼럼

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12) - 두개의 시음회를 대하는 제각기 다른 자세 (1)

by 편집부 posted Mar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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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열 두번째 이야기

두개의 시음회를 대하는 제각기 다른 자세 (1)


독립적인 포도 재배자들의 포도주 전시회(salon des vins des vignerons indépendants)와 메독, 

소테른 그랑크뤼 초청 시음회(Rendez-vous 1855 destination Grands Crus Classés) 참석 후기


편안한 바지와 자켓,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그리고 운동화차림으로 아직은 쌀쌀한 삼월의 봄바람을 맞으며 배낭 하나 둘러매고, 보르도 중심에서 좀 떨어진 커다란 상설 전시장(Bordeaux lac)에서2019년 3월8일 부터 10일까지3일간 <독립적인 포도주 생산업자들이 생산한 포도주 전시회>(salon des vins des vignerons indépendants)에 참가하였다. 

수 많은 와인을 시음하는 기쁨도 컸지만, 이 전시회의 장점은 무엇보다 직접 생산자들과 대면하면서, 그들이 정성껏 생산한 와인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시음과 동시에 질문도 하고 즉각적으로 구입도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정겨운 분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01 와인전시회 입구.jpg02 와인잔과 안내책자.jpg

와인전시회 입구 & 와인잔과 안내책자


올해로 보르도에서 진행된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하는 이 와인 전시회는 올해 상반기만 따져도, 1월은 렌(RENNES 19회) ,2월 스트라스부르그(26회), 3월 리옹 (13회),파리(26회), 4월 니스(9회), 노정 쉬르 만(Nogent-sur-Marne ,7회)등 프랑스 전역 주요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있다.


와인 뿐 아니라, 사과로 만든 씨드르(Cidre)나  피노 데 샤항뜨(Pineau des charentes,꼬냑과 발효 전의 포도즙을 섞어 만든 술) , 꼬냑(Cognac),아르마냑 (Armagnac)등 지역을 대표하는 술 모두를 포함하여 총 321개의 부스가 설치되었고, 와인생산자들은 시음자 또는 잠재적 구매자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와인을 피력하기에 여념이 없어, 항상 그렇듯 전시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프랑스 전역의 거의 모든 와인 생산지역을 다 포함하는 그 321개의 전시부스를 다 돌며, 각 지방의 모든 와인을 다 맛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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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전시회 풍경


그렇다면 삼일이라는 기간동안 이런 종류의 시음,전시회를 합리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

일단 한 500ml정도의 물 한병을 챙기고, 입장권을 6유로를 주고 산다. 

이 입장권은 3일동안, 두사람에게 유효하다. 그러나 대부분 입장권을 사서 들어오는 사람보다는 사전에 이 박람회에 참가하는 와인 생산자들이 전에 와인을 구매한 적이 있거나 친분이 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박람회 시작 며칠 전 부터 이메일을 통해 입장권을 보내준 것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입장권 한 장당 2인 입장 가능)이걸 종이에 프린트해서 입장전에 제시하거나 휴대폰에 저장해 가지고 가면 입구에서 확인후, 일반적인 초청의 경우에는 INAO (Institut National des appellations d'origine) 지정 표준 시음 잔을 주고, 만약 와인 전문가라는 소정의 증명 서류를 제시하면 전문가용 와인잔과 안내책자를 선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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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전시장 약도


04 와인 전시장 약도.jpg

물론 박람회장 벽에 각 부스의 위치와 정보가 크게 붙어 있지만 와인 마니아라면 이 안내책을 보고, 시음이나 구매를 원하는 부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여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선을 최소화 시키면서 이동하면 훨씬 효과적이고 알차게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와인 부스들은 레드,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디저트 와인 등등이 한 라인에 뒤섞여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디저트 와인 먼저 시음하고, 이어서 샴페인 맛보고, 바로 레드와인, 그다음 화이트 와인을 시음하고 대책없이 취하게 되는 불상사(?)를 연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광경을 심심치않게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효과적인 와인의 시음 순서를 생각 할 때, 서양 요리의 만찬 순서를 유추해 보거나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합리적인 순서대로 와인 시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05 와인 60세.jpg06 보졸레 가메.jpg07 mAOP. Saint-pourçain.jpg

와인 60세 & 보졸레 가메 & mAOP. Saint-pourçain


아페리티프(apéritif)라고 불리우는 식전주로 많이 쓰이는 스파클링 와인(샴페인, 크레망) 을 필두로, 가벼운 해산물이나 생선, 흰 살을 가진 가금류와 궁합이 좋은 화이트 와인(가볍고 드라이 하고, 산도가 높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붉은 살의 고기류와 곁들이는 레드와인(타닌이 적고 향이 단순한 것 부터 묵직한 타닌과 복합적인 향을 가진 와인의 순서로 진행한다.)에서 탄닌감과 바디감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마지막으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디저트와 곁들이는 단 맛이 특징인 와인들(vin moelleux, vin liquoreux등), 더 나아가 소화까지 생각한다면, 꼬냑(cognac)처럼,포도를 기반으로 만든 알콜 도수가 높은 증류주로 시음을 마무리한다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와인이 전시된 시음장에서 계획적인 와인 시음을 한다는 것은, 가볍고 날렵한 단색의 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이어서 가벼운 색과 묽은 농도로 먼저 색칠을 한 후, 어두운 색으로 명함을 표현하고, 세필로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해 완성된 균형미 있는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같다는 것이 나만의 느낌일까 ?



그러나 3일이라는 시간을 꼬박 출석할 자신이 없거나, 무계획을 선호하는 일반 와인 애호가가면, 그냥 편안하게 전시회장을 걷다가, 유난히 사람이 많이 모인 부스가 있다든지 , 자기가 좋아하는 원산지(appellation)의 팻말이 보인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음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평소에 와인잡지나 대중매체를 통해 소개된 와인 품평회에서 특별한 수상내역이 있는 와인을 눈여겨 봐뒀다가, 운이 좋아 그 와인이 전시되어 있으면, 시음해보는 것도 상당히 좋다.


얼마 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와인 잡지를 보다가 가메(Gama y)품종으로 만든 보졸레(Beaujolais)지방의 모르공(Morgon)이라는 곳에서 생산된 어떤 와인이 전세계 가메품종 와인 품평회에서 일등을 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이미 리옹의 유명한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그 와인을 꼭 맛보고싶어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안내책자를 살펴봤더니, 그 와인이 전시되어 있었다. 

생산자인 프랭크씨의 친절한 설명과 배려로, 미국에서 온 구매자들과 함께, 여러가지 와인들을 시음하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줬더니, 사진이 너무 맘에 든다며, 프랭크씨는 말도 안되는 싼 가격으로 와인값을 깎아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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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드 샤브리에 와인들과 와인메이커


보르도에서 사는 관계로, 다른 지역의 와인은 상대적으로 적게 마시게 되어, 이런 기회를 통해 다른 지역의 토착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시음하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다. 

프랑스의 정원이라고 불리우는 루아르지방에 속한, 생 뿍성(AOC Saint-pourçain)이라는  약간 생소한 지역의 토착 화이트와인 품종인 트르쌀리에(Le tressallier)로 만든 한 화이트 와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작은 잎을 가진 흰꽃과 서양 배의 향기와 미네랄한 느낌을 주면서 ,알리고테(aligoté)품종같은 산미를 지녔으나 풍부한 향때문에 그것이 다소 누그러져 멋지게 표현되었던 처음 접해본 그 와인을 시음하는 동안 나는 곧바로, 한국의 '간장 게장'을 떠올렸다.둘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일것이다.



만약에 시음보다 구입이 목적이라면, 첫날 원하는 와인과 빈티지를 정해놓고, 적어도 둘째 날 오전까지는 구입을 마치는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는 와인이 빨리 품절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친절하기때문에  마지막 날에 찾아가라며, 구입한 와인을 보관해 주기도한다. 구입한 와인을 들고다니며 시음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질좋은 와인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팔리고 있어서 많은 프랑스인들이 수레를 끌고 다니며, 몇 박스 씩 와인을 사서 비축 해 두고 1년 내내 꺼내 마신다.



2015년 부터 이 와인전시회에 꼬박꼬박 참가하다보니, 이제는 제법 아는 사람들도 많아져, 일 년동안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 반가워 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부스사이 사이를 돌아다니며 시음에 열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손짓을 한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해였던 1992년 빈티지의 랑그독 후씨용 지방의 디저트 와인을 사년 전 구입할 때 알게된 와인 생산자이다. 한쪽에 고이 모셔두었던 1959년 빈티지의 ,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들었다는 와인(VDN: Vin Doux Naturel)을 나에게 꼭 맛보여주고 싶어 불렀단다. 6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그 와인은 아직도 푸르른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귀한 와인을 나에게 시음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그가 고마왔다.



베르주락(Bergerac)이라는, 보르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피에르 까를씨를 알게 된 것은, 보르도 소믈리에 학교 교재에 그가 만든 와인 사진이 실려서, 호기심이 동한 내가 ,그의 와인들을 시음하러 갔던게 계기가 되었다. 근데 일고보니, 그는 한국과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가진 프랑스인이었다. 

90년대에 철도 떼제베(TGV)를 한국에 도입하던 시기에, 그와 관련해 책임자로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많이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문화도 많이 알고있었고, 더구나 최근에, 그의 조카가 한국인과 결혼을 했다며, 너무나 반갑게 나를 맞아주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그의 와인들을 시음할때,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젊어서는 기업가로 파리에서 살다가, 은퇴해 파리의 집을 처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와인 생산자로 제 2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 너무 행복하단다. 

2010년 빈티지의 까를씨의 한 레드 와인은, 머루같은 검은 과일, 부드러운 모카의 향과 유칼립투스향을 뿜어대며, 그의 미소같이 따뜻하고 그의 인상처럼 중후한 그를 닯은 와인이었다.



3일동안의 긴 시음회가 끝이나고 비록, 검게 변한 혀와 보라색으로 착색된 치아가 훈장처럼 남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세월을 따라 와인과 함께 숙성해가며, 서로를 보듬는 정겨운 이 시음회의 내년을 또다시 기약해 본다.         


(다음 회에 계속)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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