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심원의 사회칼럼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42) 우아한 세계

by 편집부 posted May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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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42)


우아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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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한재림


주연 : 송강호(강인구) 오달수(현수)


개봉 : 2007년 4월 5일

 

영화는 때론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하는 타임머신이 되어 준다. 흥행이 목적인 상업영화이긴 하지만 십 수 년이 지났을지라도 현대 감각에 뒤처지지 않고 새로운 감흥을 선물해 준다. 영화제작자는 십 수 년 후, 혹은 그 이후의 세상에서도 독자들이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드리 햄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할 시기인 1953년에 개봉된 흑백 영화지만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한재림 감독,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 역시 시간이 더해 갈수록 사랑을 받고 있다. 조폭이 주인공이지만 생활고에 허덕이며 인간미가 넘치는 조폭이어서 정감이 가는 영화다. 사람은 다 같은 존재다. 직업이 어떠하든,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현실 세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주어진 세계에서 꿈을 꾸게 꾼다. 막연한 꿈이 아니라 우아한 세계를 꿈꾼다. 그 세계는 무엇인가? 우아한 세계는 환경에 있지 않다. 꿈이 우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아한 사람이 꾸는 꿈이 결국 우아한 꿈의 세계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한편의 시상이 떠오른다. <품위 있는 삶>에 관한 것이다.

 



품위 있는 삶


 


아 !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사람에게는 격(格)이 있다.


사람이라 하여 다 사람이겠는가?


어떤 이는 존귀한 삶을 살고,


어떤 이는 천하게 느껴지는 삶을 산다.


아 ! 내 인생은 과연 어디에 속한 것일까?


무수히 바라보는 저들에게


내 인생은 어떻게 느껴지는 것일까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품위 있는 생각을 해야 하며


내 작은 세포 조직이


품위 있게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 드넓은 바다에 엉성한 낚시를 드리운다.


낚시에도 품위가 있다


천한 낚시가 있으며


거룩한 낚시가 있다.


인간의 삶에도 천함이 있고 거룩함이 있다.


품위 있는 삶


그것은 내 인생의 영적 상태이며


그 상태는 내 인생의


걸음걸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한편의 영화가 내 삶의 품위를 점검해 주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송강호 배우를 좋아한다. 화면에 비춰지는 그의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영화는 가급적 보게 된다. 우아한 세계 역시 내 인생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영화라는 매체는 참으로 신비롭다. 영화는 영화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비쳐진 사건들에 대한 개인적 소화력으로 재탄생되어 말을 건넨다. 사람에 따라서 영화는 교훈적이 되며, 단순 흥행 오락에 동조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흥행 영화는 흥행 영화대로,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실패한대로 교훈을 얻게 되며, 그 교훈은 내 안에 버려진 보석 알갱이들을 실로 연결한 거룩한 작품이 되게 한다. 이는 영화에 나타나는 예술성, 작품성, 영화의 문화적 현주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본 것을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 깨달음을 적어 내는 것이 내 인생의 영화관이다. 그래서 때로는 거룩함에서 더러움을 보기도 하고, 더러움에서 거룩함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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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우아한 세계는 조폭세계를 다룬 영화이다. 주인공 강인구(송강호)는 조직의 넘버3 위치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 역을 소화해 낸다. 잔인한 조직 폭력적 영화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이며 조폭의 이미지를 파괴한 탈 조폭 영화다. 다른 조직폭력을 다룬 영화처럼 난투극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무시무시한 문신을 한 채 웃통 벗은 사람들도 등장하지 않으며 검은 옷을 입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장면도 찾아 볼 수 없다. 강인구가 사용한 무기란 자신을 제거하려는 같은 조직 2인자 격인 노상무의 하수의 공격에 저항하려는 연필 깎기 용 칼과 무작위로 던진 초코파이 상자뿐이며 싸울 줄 모르는 일반인 40대의 평범한 가장이며, 칼을 무서워하며, 싸움을 두려워하며 우아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지극한 인간적 이야기다.

 


 사람마다 삶의 방법은 다르다. 아니 달라야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 세상은 거대한 육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입이면, 모두가 손이면, 모두가 발이면, 모두가 코면 어떻게 육체가 살아갈 수 있겠는가? 세상에 필요한 직업들도 그러하다. 직업은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 직업을 통하여 그 사람을 평가할지라도 그렇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는 많은 모순이 숨겨져 있다. 젊었을 때부터 바르고 거룩한 직업관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기생하듯 돋아나는 것으로 직업을 계획성 없이 삼는 것이 아니라, 다듬고 뽑고 깎아 내어 얻어지는 직업이 비로소 바르고 거룩한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직업은 내게도 유익하지만 국가에도 유익을 주는 직업이 되는 것이다. 모든 직업, 모든 삶 그 자체엔 우아함이 있다. 그 우아함은 잡초와 같이 스스로 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깎고 다듬어야 우아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대함이 주어진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에서 누런 종이봉투에 쌓인 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런 땅에 떨어져서도 여전히 위대함을 이룩해 낸다.” (해럴드 살라 / 하나님께 목숨건 사람들 p94)

 


 

자신의 인생을 다듬는 사람은 사막에 떨어졌을 지라도 그곳에서 품위 있는 삶, 우아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직업은 그렇게 자신을 다듬는 과정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주인공 강인구라는 인물은 우리 안에 꿈틀 거리는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욕망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기 싶다. 그러나 욕망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취하고 싶은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이 나쁜 것을 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성경에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나온다. 그들은 함께 새로운 땅을 향해 낯선 땅으로 여행을 한다. 그들은 한 평야에 임시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의 양들은 그 숫자가 불어나 두 가정이 함께 거할 수 없게 된다. 아브라함은 그 조카 롯을 불러 언덕에 오른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보여주며 땅을 택하라 한다. 롯은 동쪽을 택한다. 그곳은 푸른 초장이었고 서쪽은 광야였기 때문이다. 롯이 동쪽을 택하여 간 곳이 소돔 고모라 성이었다. 그렇게 간 롯을 향하여 삼촌은 나무라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은 좋은 것을 택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이러한 본성이 없었던 것일까? 그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황무지를 택한 것은 롯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사랑 앞에서 인간의 본성은 잠시 고개를 떨어뜨린다.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을 택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기본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 정의하기도 하는 것이다.

 


강인구는 인간 본성에 충실한 사람 중 하나라 해도 틀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는 가족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영화의 포스터가 말해 주듯 조직에 몸담은 가장의 꿈을 다룬 영화다. 그의 꿈은 작고 지극히 소박하다. 수돗물 잘 나오는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며, 큰 것이라면 아들딸에게 인정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의 딸은 자신의 직업을 못 마땅히 여긴다. 그것은 역시 어머니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다. 그의 부인은 조직에서 손을 뗄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한다. 조직을 정리하지 않으면 이혼 하겠다 협박까지 한다. 결국 그의 딸과 제주도의 친정집으로 결별선언을 하고 떠나게 된다. 강인구는 변함없이 딸이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사 들고 찾아가서 뼈있는 말을 한다. 자신과 결혼한 것이 깡패인줄 몰라서 결혼했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인간의 심리가 그대로 묻어져 나오는 대사다. 사람이 결혼하면 여성은 남편을 향해 소위 바가지라는 것을 긁게 된다. 그것은 남편의 사회생활과 관련되어 있다. 결혼하였다고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급상승되는 것은 결코 아닐진대 부인의 생각은 급상승되리라 생각하고 그 생각이 충족되지 않으면 쉼 없는 잔소리로 남편을 옥죄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자는 부인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즉 ‘나 때문에 고생한다고’ 고 생각한다. 여성은 남편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표현하여 남편으로 하여금 위축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물론 이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이 부부들을 만나본 이들의 이야기를 요약해 놓았을 뿐이다. 인구의 부인도 그러하였다. 조직에 몸담고 있음을 알면서 결혼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아무 대책 없이 청산하라 한다. 인구는 아내의 이야기가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결국 인구는 아내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조직에서 손을 떼기도 결심한다. 그러나 그것이 올무가 되어 더 깊숙이 조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조직을 떠나고 싶었던 그가 가족들의 우아한 삶을 위해 조직에 깊숙이 몸을 담그게 된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 소위 그는 기러기 아빠이다. 그는 불법을 행하며 음지에서 가족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 과연 우아한 삶이란 무엇일까? 아내와 아이들은 캐나다의 중산층 이상의 고급 저택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보낸다. 기러기 아빠 인구는 라면을 끓어 먹으며 아들의 모습, 아내의 모습, 딸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킨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먹던 라면 그릇을 집어 던진다. 박살난 라면 그릇을 다시 주워 담는다. 그러면서 비디오를 보고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해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세상에 우아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추구하는 우아한 삶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뿐이다. 욕망은 나쁘지 않다 하였다. 욕망은 거룩이라는 용기에 들어 있을 때에만이 안전하다. 한 개인의 욕망이 나라를 삼킬 수 있으며 한 인간을 풍선 물 듯 물고 물면 나중에 터져 버리듯 그렇게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 영화 속의 강인구는 내게 말을 한다. ‘너의 욕망이 거룩한 용기에 담겨 있는가?’ 자막이 올라가면서 그 물음은 지속되었다. 자막이 모두 올라간 후에 이젠 화면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내 인생은 인구에게 답을 전해 주지 못했다. 나 역시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품위의 또 다른 표현은 욕망일 뿐이다. 다만 소망이 있음은 그 욕망이 거룩이라는 용기에 담겨야 함을 깨닫고 그런 삶을 위해 생을 걸고 몸부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리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박심원 문학세계 
- 카카오톡 아이디: seem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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